텔레그램 CEO에 영문메일 보내 / “개발 취지와 달리 성범죄 악용 / 책임 있는 태도 보여달라” 촉구 / n번방 수사 알리는 시민방범대도 / 코로나 사태로 국제 공조는 차질 / 텔레그램 본사·서버 파악 어려워 / 조주빈 “30여개 방 운영 관여” 진술
성착취 영상물을 제작·유포한 ‘박사방’ 사건에 대한 시민의 분노가 높아지면서 이를 직접 해결하고자 하는 시민운동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텔레그램 본사에 협조 메일을 보내고, 같은 시간에 회원 탈퇴를 요청하는 등 시민들의 실력 행사가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 관심이 쏠린다.
1일 이주여성인권포럼에 따르면 이 단체는 최근 ‘n번방 사건에 관해 드리는 편지’를 텔레그램 최고경영자(CEO)인 러시아인 파벨 두로프에게 보내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검열받지 않을 자유’를 내세우며 만들어진 텔레그램이 n번방, 박사방 등 성착취 사건 가해자의 범죄 창구로 사용되자 사건의 진상을 알리고 수사 협조를 요청하겠다는 취지다. 영문으로 쓴 메일을 텔레그램 공식 계정을 통해 보내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단체가 공개한 편지에는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는 도구를 만들고자 한 텔레그램 개발자의 원래 취지와 달리, 가해자는 미성년자가 다수인 피해자를 위협하고 협박해 성적 노예로 사로잡는 데 활용됐다”며 “텔레그램은 범죄자가 저지르는 성범죄, 개인정보 침해, 위협과 협박을 방조하지 않는다는 단호한 메시지를 보내주기를 촉구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운동을 주도 중인 김현미 연세대 교수(문화인류학)는 “텔레그램은 독재정권의 억압에 맞서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했다”면서도 “전 세계적으로 성착취나 무기·마약 밀매의 방식으로 악용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책임감 있는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설명했다.
앞서 텔레그램 성착취 범죄의 문제점을 전 세계적으로 알리는 ‘n번방 텔레그램 탈퇴 총공(총공격)’도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졌다. 익명의 주도자들은 지난달 말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같은 시간에 텔레그램을 동시 탈퇴할 것을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제안했다. 탈퇴 사유를 “Nthroom-We need your cooperation(n번방-우리는 텔레그램의 협조가 필요하다)”이라고 적어 사건의 실체를 알리려는 목적이다.
n번방 사건과 관련한 정보와 관련 정보를 한데 모아 만든 ‘n번방 시민방범대’도 등장했다. 지난달 29일 개설된 이 웹사이트는 대학생 4명이 개발했다. 사이트는 n번방 관련자의 정보와 적용 죄목, 검거현황을 소개하고 있다.
이번 사건 수사를 위해서는 범행이 이뤄진 텔레그램의 협조가 필수적이지만 국제 공조는 차질을 빚고 있다. 경찰청은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회의에서 각국의 협력을 요청하려 했지만 전 세계 코로나19 유행으로 회의가 무기한 연기됐다. 경찰은 구글, 트위터 등 글로벌 IT기업과는 이미 협력체계를 구축했지만 텔레그램은 본사와 서버가 소재도 파악하지 못했다.
각국 수사기관의 신상정보 등의 요구를 거부해 온 텔레그램이 이번에도 협조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전망도 나온다. 임종인 고려대 교수(정보보호대학원)는 “이번 사건은 아동 상대 성범죄라는 국제적 공분을 사는 사건인 만큼 우리의 의사표현이 필요하다”면서도 “내부적으로는 관련 범죄자를 강력히 처벌할 법안을 마련하고, 사이버범죄 방지협약에 가입해 국제적 공조를 요청할 명분을 마련하는 게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성착취물이 SNS에서 다시 유포되는 것과 관련해 게시글 100여건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서울중앙지검 디지털성범죄 특별수사 태스크포스는 이날 ‘박사’ 조주빈(25)씨와 공범자 사회복무요원 강모(24)씨를 상대로 범행 경위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 조씨가 관여한 성착취물 유포방이 30여개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조씨는 “텔레그램 방을 만들었다가 없애는 방식으로 단기적으로 (채팅방을) 운영하며, 총 30개 가량의 방에 관여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가담자 전원에 대한 처벌 의사를 거듭 밝혔다. 추 장관은 이날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 범죄는 끝까지 추적해서 다 밝히겠다”며 “마지막에 잡히는 사람은 가장 가혹한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까지 ‘박사방’ 회원 중 20∼30대 남성 3명이 경찰에 자수했다.
이종민·이도형 기자 jngm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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