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번방 솜방망이 처벌에 분노…‘n번방 시민방범대’ 누리집 열어
검거 현황, 국민청원, 커뮤니티 반응, 관련 기사 실시간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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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을 협박해 성착취 동영상을 제작하고 유포한 텔레그램 엔(n)번방 사건에 분노한 20대들이 ‘n번방 시민방범대’(방범대)를 만들고 엔번방 사건에 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한데 모으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29일 문을 연 방범대 누리집에는 ‘n번방 관련 국민청원’, ‘가해자 검거 현황’, ‘n번방 파생방 목록’, ‘디지털 성범죄 관련 법안’, ‘관련 최신 뉴스’ 등이 담겼다. 검거 현황에는 ‘박사’ 조주빈(24)씨 외에도 엔번방을 홍보하거나 엔번방 자료를 유포하고, 또 다른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성착취 영상물을 제작하고 유포한 닉네임 ‘와치맨’, ‘켈리’, ‘태평양’ 등 가해자들의 범행 내용과 혐의가 상세히 적혀 있다. 구속 및 검거 인원은 포털에 올라온 언론 보도를 통해 개발자들이 일일이 기록한다. 관련 뉴스도 실시간으로 반영된다.
방범대 누리집은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인 20대 청년 4명이 뜻을 모아 만든 결과물이다. 한양대학교 에리카캠퍼스 산업경영공학과에 재학 중인 이아무개(22)씨, 개발자 업무 경력이 있는 군인 김아무개(21)씨, 인하대학교 소프트웨어융합공학과에 재학 중인 양아무개(23)씨, 숙명여대 미디어학부에 재학중인 선아무개(20)씨 등이다. 이들은 엔번방 사건에 큰 충격을 받고 사건 해결을 위해 “뭐라도 하자”는 마음으로 뭉쳐 이 누리집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씨는 31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엔번방에 입장한 회원수가 수십만명이라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 그보다 훨씬 많은 수의 시민들이 분노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엔번방 사건을 보면서 지금껏 있었던 성범죄 사건들이 떠올랐다. 소라넷 운영자에게 징역 4년이 선고됐고, 버닝썬 사건도 한순간에 사그라들더니 승리가 입대했다”며 “잔혹한 성범죄가 이슈가 된 이후 대중의 관심이 시드는 과정을 그동안 지켜봐 왔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 이 방범대를 결성했다”고 말했다. 개설 직후 화제가 된 방범대 누리집은 29일부터 이틀 동안 페이지뷰 3만3000뷰를 기록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방범대의 누리집 주소와 함께 ‘#n번방시민방범대’ ‘#n번방은_묻히지않아’ 해시태그를 함께 언급하는 캠페인도 진행 중이다.
무엇보다 이들을 분노하게 만든 건 그동안 사회가 디지털 성범죄를 가볍게 여기고 처벌 역시 가볍게 해왔다는 사실이었다. 이씨는 “지금까지 쌓인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가벼운 판결들이 이번 사건을 미리 막지 못했다고 생각한다”며 “국회에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형량을 늘릴 수도 있었고, 그걸 사법부에서 예외 없이 적용만 시켰다면 이렇게 수많은 피해자가 나오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개발자들 중 유일한 여성인 선씨는 피해자를 돕고 싶어 방범대 활동에 나섰다. 정보 통신 관련 전공인 다른 3명과 달리 미디어를 전공하는 선씨는 어떻게 하면 피해자를 돕는 방식으로 방범대를 운영할 수 있을지 기획하는 역할을 맡았다. 누리집 맨 위에 ‘한국성폭력상담소’와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 연락처를 적은 것도 선씨의 아이디어였다. 선씨는 “피해자 가운데 미성년자가 많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성인으로서 내가 지켜주지 못한 건 아닐까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며 “이 사건의 해결을 위해 무엇이든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선씨 역시 성범죄에 대한 가벼운 처벌에 분노했다. 그는 “미국에서는 최소 15년형을 받는 성착취 영상 범죄가 우리나라에서는 고작 징역 1∼2년에 불과한 것에 너무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처벌 수위가 약하니까 범죄가 반복되는 것”이라며 “시민들뿐만 아니라 경찰, 재판부 등 처벌 주체도 우리 사이트를 보고 심각성을 느끼고 제대로 된 형벌을 내려주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직장 생활과 학업을 병행하는 양씨와 군복무 중인 김씨, 그리고 이제 막 개강을 한 대학생 2명까지 4명의 자발적인 힘만으로 방범대 운영을 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아직 검거되지 않은 가해자에 대한 정보나 관련 청원에 대한 제보도 계속해서 들어오는 상황이고, 이 와중에 새로운 서비스 개발에도 머리를 싸매고 있다. 커뮤니티에서 엔번방 관련 언급수가 떨어지지는 않았는지, 가해자 검거 추이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등을 시각화해 보여주는 콘텐츠를 기획해 엔번방에 대한 시민의 관심을 놓지 않을 수 있는 방법도 고안하고 있다고 한다. 사용자 수가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서버 임대료 등 비용 부담을 할 상황에 놓였지만 비영리로 운영하는 만큼 광고 등 수익 추구를 할 생각은 없다고 한다. 이씨는 “아직까지는 돈을 들이지 않고 운영하고 있지만 지금 추세라면 서버 임대료 등을 내야 될 상황이 올 수도 있을 것 같다”며 “다른 방법을 찾거나 네 명이 돈을 모으거나 해서라도 이 사이트는 가해자들이 모두 처벌받을 때까지 비영리적으로 계속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방범대의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 “우리 사이트는 모든 가해자가 제대로 된 처벌을 받으면 없어도 되는 사이트예요. 당장 내일이라도 모든 가해자가 검거돼 처벌을 받아서 우리 사이트에 기록할 게 하나도 없게 되는 게 우리의 목표입니다.” 선씨가 당차게 말했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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