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서 '태평양 원정대' 운영...성착취물 유포한 혐의
반성문 및 탄원서 제출 이유, 감형 목적이라는 지적도
미국, 아동 음란물 범죄자 99.1% 징역형 선고
전문가 "우리나라 전반적인 양형 기준을 바꿔야"
지난 25일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의 성 착취물을 제작 및 유포한 혐의를 받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탄 차량이 서울 종로경찰서를 나와 검찰 유치장으로 향하자 시민들이 조주빈의 강력처벌을 촉구하며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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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수완 기자] 미성년자 등 여성을 협박하고 성 착취물을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유포한 일명 'n번방' 사건 관련 혐의를 받는 '태평양'(텔레그램 닉네임) 이모(16) 군이 법원에 반성문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태평양' 뿐만 아니라 '와치맨','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이 피해자들의 신상정보를 알아내는데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진 한 모 씨도 수 차례 반성문을 제출했다.
'n번방' 사건 연루자들이 줄줄이 반성문을 제출하다 보니 일각에서는 반성이 아닌 오로지 감형을 받으려는 일종의 가짜 반성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는 현재 우리나라 양형 기준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 'n번방' 사건 피의자들 잇따라 반성문 제출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 군은 법원에 반성문을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n번방' 유료회원 이 군은 박사방에서 운영진으로 활동하다가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2월까지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약 2만여 명이 가입된 '태평양 원정대'를 별도로 운영하며 성착취 영상을 유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서 'n번방' 전 운영자인 일명 '와치맨' 전모 씨도 지난해 11월부터 이달까지 최소 12차례에 걸쳐 반성문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전 씨에 대해 징역 3년 6개월을 구형하기도 했다.
전 씨는 작년 10월 인터넷에서 불법촬영물 웹사이트를 운영한 혐의로 기소됐다가 n번방 사건에 연루됐다는 정황이 포착돼 추가 기소됐다.
지난 9일 청소년성보호법상 강간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한모 씨도 19일부터 30일까지 주말을 제외하고 매일 반성문을 재판부에 제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씨는 다음 달 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1부(부장판사 김연학) 심리로 첫 재판이 예정되어 있다. 한 씨는 조주빈이 피해자들의 신상정보를 알아내는데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텔레그램 n번방 방지법'(개정 성폭력처벌법) 규탄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디지털 성범죄 근절과 강력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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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성문 '양형'에서 참작 근거…솜방망이 처벌 우려도
일각에서는 이들의 반성문 제출이 감형 목적에서 비롯된 계획적인 행동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반성문을 제출하면 재판부의 양형 과정에서 일부 참고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법원은 반성문·탄원서, 피해자와의 합의를 비롯해 피고인의 개인 사정 등을 양형 근거로 참작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 피고인들은 감형 및 선처를 목적으로 반성문을 제출해 솜방망이 처벌을 받기도 한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지난해 선고된 성범죄 관련 하급심 판결 중 법원 종합법률정보에 등록된 137건의 양형기준을 분석한 결과, 3분의 1 수준인 48건이 '피고인의 반성과 뉘우침'을 감형 요소로 꼽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가운데 이 군은 현재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처벌이 감형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행 소년법에 따르면 18세 미만 소년범은 사형이나 무기징역에 해당하는 중범죄를 저질러도 최대 20대까지만 선고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시민들은 "사법부 관대한 처벌이 문제", "디지털 성범죄 양형 기준 없어" 등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n번방' 관련 청원에 동의했다고 밝힌 직장인 A(27) 씨는 "텔레그램 박사방 관련 공범들이 하나둘 반성문을 내고 있다고 들었다"라며 "왜 외국처럼 엄벌을 내리지 못하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 지난해 다크웹 사례만 봐도 한 가정의 가장이라 감형해주고 이게 말이 되냐"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주부 B(56) 씨는 "어른들이 지켜줘야 할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한 범죄다"라며 "청소년이라고 감형해주는 어이없는 일이 일어나질 않길 바란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이번 기회에 성범죄 양형기준을 확실하게 세워야 한다고 본다"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직장인 C(39) 씨는 "매해 성범죄자들의 솜방망이 처벌이 논란이 되고 있는데 왜 바뀌지 않는지 답답할 따름"이라며 "이번 n번방 사건 관련 법원의 판결이 관건"이라고 전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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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경우 아동 음란물 범죄자 99.1% 징역형 선고
다른 나라의 경우 성범죄자에 대한 양형 기준이 확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양형위원회의 2018년 보고서에 따르면 아동 음란물 범죄자의 99.1%가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또한, 소지의 경우 기본 형량 범위가 41개월에서 51개월로 정해져 있으며, 나아가 피해 아동의 나이, 인터넷 유통이 포함됐는지 여부, 영상의 개수 등에 따라 형을 더하도록 하고 있다.
전문가는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양형 기준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손정혜 변호사는 지난 25일 YTN 라디오에 출연해 "보통의 경우 검사 구형대로, 또는 그 이하로 선고하는 것들이 많다 보니 아직도 실무적으로 구형량도 약하고, 선고형도 약한 거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라면서 "특히 기존에 너무 솜방망이 구형을 해왔다는 비판에 직면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일단 우리나라는 외국에 비해, 특히 아동·청소년 음란물에 대해서 법정형이 매우 낮다. 그러다 보니 도덕적 결여가 심각하다. 범죄의식이 별로 없고, 죄책감을 별로 느끼지 않는 범죄자들이 다수 양산되고 있는 실정"이라며 "이는 전반적인 양형 기준을 바꿔야 하는 문제다. 성범죄 사건에서 10년 이상을 구형하기 사실상 어려운 측면들이 있어서 전반적으로 올려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검찰 내부에도 그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들이 있어 국민들의 관심이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김수완 기자 suw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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