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동안 이어진 ‘박사방’회원의 과거 스토킹 범죄
가족 살해 협박했지만 징역 1년2개월 솜방망이 처벌
출소 뒤엔 재범…피해자는 국민 청원에 고통 호소
스토킹방지법 5차례 발의됐지만 상임위도 통과 못해
“국회의원들의 안일한 사태 인식 때문” 비판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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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창이 뚫고 지나가는 그 날까지 계속된다”(2015.12.2)
“부모님 주민번호랑 전화번호도 알아냈으니 건드리면 재밌겠네. 아버지는 ○으로 시작해서 ○으로 끝, 어머니는 ○로 시작해서 ○로 끝”(2017.4.9)
“내가 자살해서 살인사건으로 만드는 한이 있더라도 네○은 꼭 족쳐서 지옥으로 같이 끌고 들어갈 거다”(2017.8.2)
“말로 해결하면 진작에 끝났을 걸 살인으로 해결하려고 하네! ”(2017.12.24)
고등학교 때 담임교사의 개인정보를 빼내 스토킹한 ‘박사방’ 일당 강아무개(24)씨의 판결문에는 소름 끼치는 문자들이 가득했습니다. 그는 2015년부터 상습협박 혐의로 구속되기 직전인 2017년까지 피해자 ㄱ씨에게 모두 16차례 협박 문자를 보냈습니다. 협박은 문자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2017년 4월9일 저녁에는 ㄱ씨의 집을 찾아가 빨간색 글씨로 “조각낸다. 토막 낸다. 갈아버린다. 죽인다. 갈아 마신다. 튀겨낸다. 찢는다. 도려낸다. 학살한다”는 내용의 에이포(A4) 용지 6장을 출입문에 붙여놨습니다. 함께 남겨둔 편지에는 “이사 가도 소용없다. 언제든지 세상 끝에서라도 찾아낼 준비가 되어 있다. 정말로 칼만 있으면 도륙을 내고 싶다. 갈수록 분노가 극에 치밀고 있다. 이제는 살인쯤 저질러도 아무렇지 않으니 무응답으로 넘어갈 생각하지 마라. 언제, 어디서 살인, 방화, 납치, 자살을 시도할지 모르기 때문에 지금 신경 쓰지 않으면 영영 되돌릴 수 없음을 경고한다”고 적었습니다.
스토킹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경기도의 한 병원 원무과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던 강씨는 2017년 12월22일 병원 업무용 컴퓨터에 ㄱ씨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해 ㄱ씨가 이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그뒤 병원 보존서고에 가서 ㄱ씨의 채용 건강 신체검사서 종합건강검진 문진표를 꺼내 복사해 나왔습니다.
훔쳐낸 개인정보는 바로 범행에 사용됐습니다. 강씨는 이튿날인 2017년 12월23일 다시 피해자의 집을 찾았습니다. 이 집은 같은해 5월 강씨가 협박편지를 보낸 곳과 다른 곳이었습니다. 이사를 한 집을 다시 알아내 찾아간 것입니다. 이곳에서 강씨는 출입문에 빨간색 사인펜으로 “I'll kill you, my suicide or your genocide”(너를 죽일 것이다. 내 자살 혹은 너의 학살) 등의 글을 적었습니다. 또 ㄱ씨의 채용 건강 신체검사서 사진에 스테이플러 심을 여러 개 박아 출입문 앞에 놓았습니다. “전화번호를 동시에 2개를 사용하더라도, 주민번호를 바꾸더라도, 차를 바꾸더라도, 배우자의 성별, 국적, 그리고 외모까지 바꾸더라도 어디든지 쫓아갈 수 있다”라는 내용의 편지도 남겼습니다.
강씨의 범행이 알려진 뒤인 지난 28일 피해자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박사방 회원 중 여아살해 모의한 공익근무요원 신상공개를 원합니다’라는 청원글을 올렸습니다. 이 청원글에는 그동안 피해자가 겪었던 고통이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고통과 불안을 참다 못해 그 사람을 고소하게 되어 2018년 1월부터 2019년 3월까지 복역을 하게 되었지만 수감 중에도 계속적으로 협박 편지를 보냈습니다. 경찰서에 가서 진술하는 것조차 심리적 부담이 너무 크고 정신적으로 힘이 들어 더 이상 고소하지 못하였습니다. 출소하기 이틀 전 이사를 했고 하루 전 핸드폰 번호를 바꾸었습니다. 근무하는 학교도 바꾸었고 어디로 옮겼는지 모르게 하고 싶어 두 번째 개명을 하였고 개명한 이름으로 학교를 옮겼습니다. 주민번호도 6개월에 걸쳐 심의를 받아 바꾸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끝난 줄 알았습니다. 이제 모르겠지 못 찾아내겠지 하면서 5개월이 지났을 즈음… 아파트 우체통에 새로운 저의 주민번호와 딸 아이의 주민 번호를 크게 적은 종이를 두고 갔습니다. 그 사람의 소름 끼치는 글씨체를 여기서 또 보게 되다니… 누가 한 명 죽어야 끝나겠구나… 절망하고 또 절망하였습니다.
(중략)
출소를 하자마자 구청에 복무를 하게 된 것도 하늘이 무너질 일입니다. 우리 가족의 안전을 송두리째 빼앗아갔습니다. 개인정보 유출과 협박으로 실형을 살다 온 사람한테 손가락만 움직이면 개인정보를 빼 갈 수 있는 자리에 앉게 하다니요. 60년 넘게 잘 살아오던 저희 부모님도 이름과 주민번호를 바꾸었고 평생 살던 지역에서 이사를 가셨습니다. 온 가족이 ‘마지막이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해보자’고 하면서 힘들게 노력했던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져버렸습니다. 어떻게 책임지실 건가요.
일러스트 son of yo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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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와 그 가족까지 죽이겠다고 협박한 잔혹한 범죄의 대가는 고작 실형 1년2개월이었습니다. 2018년 3월30일 수원지법은 강씨에 대한 판결을 내리면서 아래와 같은 양형 이유를 작성했습니다.
▲불리한 정상
“피해자가 주거지를 옮기는 등 피고인의 협박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였으나 인터넷을 통하여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해킹하는 방법으로 집요하게 피해자를 추적하여 범행을 계속하고 피해자의 부모, 자녀까지 협박의 대상으로 삼는 등 죄질과 범정, 법익 침해의 정도가 중대함. 2013년에도 피해자를 협박하였다는 범죄사실로 소년보호 처분을 받은 전력이 있음에도 재범함. 정신의학과 치료를 받아왔으나 그 효과는 미미하다고 보임.”
▲유리한 정상
“범행 인정하고 반성함. 아스퍼거 증후군으로 인한 정신병적 상태가 범행에 다소 영향을 미쳤다고 보임”
솜방망이 처벌을 받은 뒤 지난해 3월3일 출소한 강씨는 다시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했습니다. <한겨레> 취재결과를 종합하면 강씨는 지난해 12월13일 ㄱ씨에게 다시 문자를 보냅니다. “우리나라 법 좋네, 너 죽이면 5년이니까, 니네 사돈에 팔촌까지 다 죽이고 심신미약으로 3년 살면 되겠지?”, “니 ○○○(시어머니)가 ○○○(이름)이고 ○○○○○○-○○○○○○○(주민등록번호)지?” 등의 문자를 보냈습니다. 가족들을 모두 해치겠다며 강씨가 보낸 문자가 더 있지만 내용이 차마 참혹하여 공개하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ㄱ씨는 개명을 하고 휴대전화번호와 주민등록번호도 바꾸고 이사까지 했지만 강씨의 스토킹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형을 마친 강씨는 경기도의 한 구청 가정복지과에서 사회복무요원 잔여기간을 보내면서 ㄱ씨와 그 가족의 개인정보를 모두 빼냈습니다. 병무청과 구청이 사회복무요원의 전과 기록을 공유할 근거가 없었기 때문에, 구청은 강씨의 과거 범죄사실을 알 수 없었습니다. 피해자를 보호할 제도가 공백으로 존재했던 것입니다.
문제는 법원의 솜방망이 처벌과 국가기관의 무심함에만 있지 않습니다. ㄱ씨의 고통은 스토킹을 범죄로 보지 않고 있는 우리 사회의 인식의 공백이 불러온 비극입니다. 그동안 시민사회에서는 ‘스토킹 방지법’ 제정을 끊임없이 요구해왔습니다. 현행 법제도에서는 스토킹을 협박 등으로 우회해서 처벌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 강씨의 범죄도 상습협박으로 처벌받았을 뿐입니다. 20대 국회에서 스토킹 방지법은 모두 다섯 차례 발의됐지만, 1건도 상임위를 통과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20대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임기만료로 폐기 위기에 놓인 스토킹 방지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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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방지법이 통과되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형량 때문이 아닙니다. 스토킹 범죄는 처음에는 낮은 단계에서 점점 더 심각한 수준으로 발전합니다. 강씨가 처음에는 문자 등으로 협박을 하다가 이후 피해자의 아이까지 해치려고 400만원을 실제 ‘박사’ 조주빈(24)씨에게 전달한 것처럼 스토킹은 강력범죄로 발전할 가능성이 큰 행동입니다. <한겨레>가 2018년 3건의 스토킹살인을 추적해 연재한 ‘스토킹살인은 편견을 먹고 자란다’(▶관련기사 보기) 기사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납니다. 하지만 지금은 현행법 위반에 이르지 않는 스토킹은 처벌할 수 없습니다. 스토킹이 협박이나 명예훼손, 혹은 살인 등 처벌 가능한 범죄로 이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스토킹 범죄의 피해자는 여성만이 아닙니다. 남성 역시 스토킹의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지만 이 경우 협박으로 여겨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를 맡은 서혜진 변호사는 그래서 스토킹 방지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스토킹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아요. 여성 뿐 아니라 남성도 똑같아요. 다만 특히 여성이 스토킹 대상이 되었을 때 ‘아가씨 좋아서 그러는 거 아니냐’는 말을 아직도 많이 하죠. 스토킹이 범죄화가 되지 않은 영역이기 때문에 이런 인식이 생기는 거에요. 그래서 스토킹하는 사람은 구체적 협박의 언동이 없거나 폭행 등 현행법 상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면 자신이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아요. 이 문제가 몇 십년 동안 반복되어 온 거죠. 그래서 스토킹이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범죄라고 보지 않아요.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을 하다보니 수사기관과 법원도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그러다보니 수사기관이 무언가 적극적인 행동을 취했다가 형사사건도 아닌데 왜 개입하냐며 가해자가 문제제기하면 할 말이 없는 상황입니다. 가해자 처벌도 중요하지만 피해자 보호가 즉각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도 스토킹 방지법 제정이 필요해요. 현재는 수사기관이 피해자를 도와주고 싶어도 할 수 있는 게 없는 측면도 있어요. 범죄면 피해자 보호 조처라도 할텐데 현행법상 범죄가 아니기 때문에 근거가 없는 거죠. 입법의 공백 상태가 너무 오래 지속되고 있습니다. 스토킹을 처벌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는 어느 정도 만들어졌다고 봐요. 그런데 국회가 처리를 안하고 있어요. 이런게 민생법안이 아니면 무엇이 민생법안인지 모르겠네요. -서혜진 변호사
스토킹이 범죄로 규정되면 강력범죄로 이어지기 전에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할 수단이 생깁니다.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5건의 스토킹 방지법 중 가장 최근인 2018년 3월14일 발의된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안’(추혜선의원 등 10인)에서는 스토킹을 “당사자의 의사에 반하여 당사자나 그 가족이 생명, 신체의 안전에 위협을 느낄만한 행위”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 법안에선 구체적으로 10가지 행위를 스토킹으로 듭니다. 피해자의 집에서 계속 그 사람을 지켜본다거나 사귀자고 지속해서 요구하거나 가해자가 피해자를 감시하고 있다고 짐작하게 하는 행위 등이 모두 스토킹에 해당합니다. 또 피해자에게 원치 않는 선물을 계속 주거나 피해자에게 특정한 사진을 끊임없이 보내는 것 역시 스토킹으로 간주합니다. 물론 이런 행위가 범죄가 되는 것은 피해자가 원치 않는데도 반복된 행위로 안전에 위협을 느낄 경우에 한정됩니다. 기존에 협박이나 명예훼손, 경범죄처벌법 등에 해당하지 않지만 충분히 위협적인 행동으로 인식된다면 처벌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스토킹”이란 당사자의 의사에 반하여 당사자나 그 가족이 생명, 신체의 안전에 위협을 느낄만한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는 것을 말한다.
①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접근하거나 미행하는 행위
② 주거지·근무지·학교 등 피해자가 일상적으로 활동하는 장소 및 그 인근지역에서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지켜보거나 통행로에 서 있는 행위
③ 면회나 교제 등 의무 없는 일을 행할 것을 요구하는 행위
④ 피해자의 행동을 감시하고 있다고 짐작하게 하는 사항을 알리거나 또는 피해자가 자신의 행동이 감시당하는 것을 알 수 있는 상태에 두는 행위
⑤ 피해자의 명예를 해하는 사실을 알리거나 피해자가 자신의 명예가 훼손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상태에 두는 행위
⑥ 전화·편지·모사전송기·컴퓨터통신 또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2조제1항제1호의 정보통신망’을 이용하여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거나 특정한 사진·그림·문자 또는 영상을 보내는 행위
⑦ 스토킹행위자 본인이나 제3자를 통하여 특정 물건, 그림 또는 사진 등을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보내거나 특정한 장소에 두는 행위
⑧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이용하여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피해자를 위한 물건을 주문하거나 서비스를 신청하거나 제3자에게 이러한 행위를 하도록 하는 행위
⑨ 피해자 주변사람 등에게 피해자와 관련된 거짓의 사실, 사진 또는 영상을 유포하는 행위
⑩ 그 밖에 피해자 또는 피해자와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이 생명, 신체의 안전에 위협을 느낄만한 공포나 두려움을 주는 등 자유로운 생활형성을 침해하는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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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방지법이 제정된다면 피해자 보호도 법적 절차에 따라 이뤄질 수 있습니다. 법에는 “지방자치단체는 스토킹으로 인한 피해자의 보호·지원과 효과적인 스토킹 피해방지를 위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스토킹피해자지원센터를 설치·운영”할 수 있고 법원이 “스토킹행위자가 피해자에게 접근하는 행위의 제한”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스토킹 방지법은 또다시 아무런 논의 없이 20대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분노를 감추지 못했습니다.
스토킹 방지법이 꼭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여러번 했죠. 그런데 국회의원들의 태도가 ‘굳이 그런 것까지 필요하냐’였어요. 그런 국회의원들의 안일한 사태 인식 때문에 스토킹 방지법이 제정되지 않고, 결국 여성들은 일방적인 불안감에 떨 수밖에 없어요. 스토킹은 생명손실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행동인데도 국회의원들이 그걸 잘 이해 못하는 것 같아요.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
언제까지 더 많은 피해자가 홀로 공포에 떨어야 할까요. 텔레그램 ‘박사방’이 드러낸 참혹한 성착취 범죄뿐 아니라 스토킹 범죄에 대한 제대로 된 대책도 반드시 마련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정환봉 장예지 기자 bonge@hani.co.kr
[한겨레 인터랙티브 뉴스] 스토킹살인은 편견을 먹고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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