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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을 찾기 위해 가까운 시기에 일어난 유사 사건 두개만 살펴보자.
2019년, 여성단체들의 꾸준한 문제제기와 경찰의 수사로 성매매 후기·알선 사이트들의 실체가 일부 드러났다. 경찰이 밝힌바, ‘밤의 전쟁’이라는 사이트는 70만 명의 회원 수에 1일 접속 인원만 10만 명, 200여 개의 성매매업소 광고와 성매매 후기 글 21만 건, 모태가 되는 사이트까지 합하면 회원 수 110만 명가량에 이른다고 한다. 운영자들은 2600개가 넘는 성매매업소로부터 매월 30만~70만원을 광고비로 받아 3년간 광고비로만 약 210억 원의 불법수익을 취득했다고 한다. 수많은 불법 촬영물이 성구매자들을 유인하는 마중물로 사용되었고, 여성들을 성적으로 학대한 사진과 글 수십 만개가 성구매를 상호 독려하기 위해 올라와 있었음에도, 관리 총책과 운영진 몇 명만 구속되었다. 그나마 이들 또한 불과 징역 1년 또는 징역 8월의 실형을 선고받았을 뿐이다. 당시 재판부는 성범죄를 ‘인터넷 광고’라고 보면서도 ‘전파력 및 위험성’ 등을 인정했지만, ‘범행을 반성하고 있으며 동종 범행이나 벌금형보다 무거운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는 점 등을 고려’해 양형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유사한 시기 국제공조수사로 드러난 다크웹 아동 포르노 사이트, ‘웰컴투비디오’ 사건. 2015년 개설된 ‘웰컴투비디오’는 회원 수만 128만 명, 유통된 파일 총 25만개, 중복된 영상을 제외하면 17만개로 세계 최대 규모라 한다. 수사기관들은 8테라바이트에 이르는 아동 성학대·성착취 영상물을 압수했는데 피해 대상에는 6개월 영아에서 10세 아동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사이트 운영자는 23살 한국인 남성 손정우였고, 사이트 최초 개시일 당시 그는 불과 19세였다. 손씨는 평소 모아두었던 아동 성학대·성착취 영상 3055개 10GB 분량을 마중물 삼아 2015년 사이트를 열었고, 이후 2018년 3월 체포될 때까지 315비트코인, 드러난 액수로만 4억 여원을 벌었다고 한다. 그는 1심에서 ‘나이가 어리고, 초범이며, 범행을 시인하고, 결혼, 부양가족 등의 이유로 취업을 제한해서는 안 될 사정이 있다’며 집행유예를 선고받았고, 2심은 원심의 형이 너무 가벼워 부당하다면서도 징역 1년6월을 선고했을 뿐이다. 그는 곧 출소한다.
일러스트 | 이아름 areumlee@khan.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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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의 어마어마한 인적·물적 규모, 끔찍한 범죄 내용과 가늠조차 어려운 피해 정도, 그럼에도 가해자들에 대한 과도한 감정이입과 사법부의 이해불가능한 판결 등 명백한 공통점 이외에 더 무서운 사실은, 물질/비물질, 실재/가상의 경계가 무너진 곳에 성폭력, 음란물, 성매매라 불리던 것들이 재정렬되고 연결되어 무지막지한 성착취의 현실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강제와 자발, 주체와 대상 간 경계마저 허물면서 성적 착취물을 만들고 공유하고 수익을 창출하며 서로 독려하며 다시 성범죄를 저지르고, 이를 업로드하고 공유하고 소비하고 다시 돈을 버는 시스템이 완전히 구축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현상은 정보통신기술의 발전과 플랫폼의 다양화 때문인가. 디지털경제 혹은 정동경제라 불리는 경제시스템의 전환 때문인가. 때로는 공창제도, ‘윤락행위’, 성매매로, 때로는 ‘빨간책’과 야동, 포르노나 음란물로, 때로는 남초 사이트의 게시물과 단톡방 성희롱으로, 때로는 불법촬영으로, 딥페이크(합성영상 편집물)로, 리벤지 포르노(당사자의 동의나혹은 인지 없이 배포되는 사이버 성착취물)로 겉모습만 달리한 채 면면히 이어졌던 여성거래와 성폭력의 유구한 관행, 이를 남성들의 놀이문화, 술문화, 오락거리로 당연시하고 즐기고 공감하고 묵인해 온 사회, 통제할 수 없는 ‘보편적’ 남성성욕의 산물이라 주장하다가도 특정 괴물의 소행이라 분리하는 모순을 한 번도 성찰해 보지 않은 무사유. 이 모두가 ‘밤의 전쟁’, ‘웰컴투비디오’, ‘텔레그램 n번방’의 탄생과 성착취 구조의 근본적 원인 아닌가.
수백만 시민들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남성들에게 요청한다. ‘악마’와 ‘평범한 남성’ 간 간극을 애써 벌리려 주범 조주빈의 생애과정과 행적을 샅샅이 뒤지며 심리적 특이함에 범행을 귀인하려는 위선적 시도를 멈추고, 고상한 논리로 경제구조와 성착취 구조를 분리하는 태도를 멈추고, 여성을 마음대로 품평하고 교환하고 맛보고 요리하고 씹어 먹어온 그 오랜 남성 성문화와 이와 긴밀한 연결된 이윤구조를 이제 함께 박살내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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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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