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권분립 원칙 따라 어떤 개입도 불가능… 靑답변 ‘주목’
지난 25일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탄 차량이 서울 종로경찰서를 나와 검찰 유치장으로 향하자 시민들이 조주빈의 강력처벌을 촉구하며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미성년자 등을 협박해 성착취 불법 촬영물을 만들어 공유한 ‘n번방’ 사건 담당 재판부에서 서울중앙지법 오덕식 부장판사를 제외해달라는 내용의 청와대 국민청원에 30만명 넘는 인원이 동의했다. 이는 청와대가 답변해야 하는 ‘20만명 이상 동의’ 기준을 넘어선 것이다.
이에 따라 어떤 식으로든 청와대가 반응을 내놓을 예정인 가운데 일각에선 ‘사법부 권한 침해’ 논란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선도 감지된다.
‘n번방’ 담당 판사 오덕식을 판사 자리에 반대, 자격 박탈을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29일 오후 4시까지 37만7000여명이 참여했다. 청원인은 청원글에서 “오 판사는 수많은 성범죄자에게 벌금형과 집행유예로 너그러운 판결을 내려 국민이 크게 비판했던 판사”라며 “제발 그를 이 법정에서 볼 수 없게 제외해달라”고 요청했다.
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
최근 텔레그램 ‘n번방’의 연장선상에 있는 이른바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이 구속되면서 국민적 공분이 치솟은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조씨는 아직 검찰 수사 중이어서 재판에 넘져지지 않았고, 오 판사는 그와 유사한 다른 ‘n번방’ 관련 사건 재판을 맡고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 법원의 사건 배당은 ‘무작위 전자 배당’ 형식이어서 해당 법원장은 물론 최고 사법기관인 대법원조차 개입할 수 없다는 점이다. 오 판사 스스로 사건에서 손을 떼거나 검찰 또는 피고인 측에서 법관 기피신청을 내 받아들여지거나 하는 등 ‘특단’의 사유가 없으면 재판부 구성 변화는 힘들다.
청와대가 ‘국민청원 결과를 감안해 재판부 구성을 변경해달라’고 대법원에 요청하는 것은 더더욱 큰 문제가 된다. 헌법상 삼권분립 원칙을 어기고 청와대가 사법부를 상대로 ‘월권’을 저지르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일례로 2018년 5월 청와대가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에 전화를 걸어 “삼성전자 부회장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한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파면하라”는 내용의 국민청원 결과를 전달한 사실이 알려져 ‘위헌’ 논란으로 비화한 바 있다. 그 또한 청와대가 청원 내용에 답변을 해야 하는 ‘20만명 이상 동의’ 기준을 넘겨 참여 인원이 23만여명에 달했을 때 벌어진 조치였다.
법원 내부는 물론 재야법조계와 법학계에서 모두 “청와대가 일 처리를 잘못했다”는 질타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법원과 마찬가지로 행정부 일원이 아니고 독립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얼마 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검찰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 과정에서 저지른 인권침해를 조사해달라’는 취지의 청원이 게시되고 20만명 이상이 동의하자 청와대가 이 내용을 공문으로 만들어 인권위에 보낸 것이다.
당장 인권운동사랑방, 다산인권센터 등 15개 인권단체가 공동성명을 통해 “인권위는 청와대가 조사를 지시하는 하부 행정기관이 아니다. 인권위의 독립성을 침해한 것”이란라고 비판했다. 인권위는 청와대 공문을 반송해버렸고, 청와대는 공문 발송 자체를 취소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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