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달 1일부터 휴직” 개별통지서
노동자들 휴업수당도 없어 막막
청와대·외교부 “대책 마련 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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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노동자 4000여명이 한-미 방위비분담금 협상의 ‘볼모’가 되어 4월1일부터 강제 무급휴직에 내몰릴 벼랑 끝 위기에 서 있다.
지난 25일부터 주한미군에서 일하는 한국인 노동자 8500명 가운데 4000여명이 ‘“4월1일부터 종료가 통지될 때까지 무급휴직에 처한다”는 개별 통지서를 받았다. 무급휴직이 현실화된다면 주한미군 주둔 60여년 역사상 초유의 사태다. 이는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가 올해 한국이 부담할 방위비분담금을 지난해 1조389억원의 5배가 넘는 50억달러(약 6조원)로 올리라는 무리한 요구를 할 때부터 예고된 재난이기도 하다. 분담금 협상은 지난해 타결됐어야 하지만 한-미의 의견 차이가 여전히 커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지난 17~19일 협상에선 무급휴직 사태를 막기 위해 한국 정부가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의 임금을 우선 부담할 테니 인건비 부분부터 먼저 타결하자고 제안했으나, 미국이 공식 거부했다. 인건비부터 타결할 경우 한국을 압박할 카드가 사라지는 것을 미국이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미국이 한국인 노동자들을 ‘볼모’ 삼아 방위비 대폭 인상을 받아들이라고 한국을 압박하는 상황이다.
외교부는 이달 말까지 전화와 이메일, 대사관을 통해 미국과 협상을 계속하며 무급휴직까지 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통보된 날짜가 나흘 앞으로 다가오면서 기약 없는 강제 무급휴직의 공포가 4000여명의 노동자들을 짓누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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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한국인노조의 손지오 사무국장은 “우리한테는 코로나19 확산보다 무급휴직이 더욱 두렵다”며 “휴업수당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이렇게 막막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들은 휴업수당을 비롯해 한국 노동법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 이들 임금의 88%는 한국 정부의 방위비분담금에서 나오지만,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소파) 노무 조항에 따라 이들의 고용주는 한국 정부가 아닌 주한미군이다. 노동자들은 4대 보험도 꼬박꼬박 납부하지만, ‘미 합중국의 군사적 필요에 배치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한국 노동법 규정에 따른다는 소파의 규정을 주한미군이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어 한국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노조는 파업권도 제한되고, 부당해고와 부당징계도 빈번하게 일어난다고 호소한다.
주한미군한국인노조는 그동안 미국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이며 ‘한국인 노동자들을 볼모 삼은 무리한 방위비 인상 요구를 중단할 것’을 요구해왔다. 아울러 우리 정부도 당장 생계가 막막해질 위기에 처한 4000여명의 노동자들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청와대는 26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어 노동자들을 위한 대책 마련을 강구하기로 했다. 다만 정부는 고용주인 주한미군 대신 임금이나 휴업수당을 지급하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자들은 주한미군이 생명·안전·보건·임무수행의 필수인원을 기준으로 무급휴직자를 선정했다고 했지만, 같은 사무실에서 같은 일을 해온 동료들 사이에서도 무급휴직자와 근무자가 나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선정 기준에 위화감도 크다고 말한다. 한국인 노동자들은 주한미군 기지 내 행정, 전투지원, 의료, 보건, 홍보, 통역, 전기, 가스, 수도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주한미군노조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부가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제도적 개선 방안도 마련할 것을 요구한다. 노조의 손지오 사무국장은 “정부가 한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실질적인 대책을 수립해줄 것이라 믿는다”며 “나아가 한국인 노동자들이 방위비분담금 협상의 볼모가 되는 사태가 재발하지 않고, 주한미군이 국내법을 준수하도록 불합리한 소파 조항을 개선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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