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차별 표적 삼는 디지털 성범죄 / 학교알림장 등 요구 신상 확보 뒤 / “나체 사진·영상 안 주면 공개” 협박 / 사실 알아챈 부모 개입 피해 막아 / n번방 내부고발자 “아동 영상 공유” / 미성년자 울린 ‘제2 갓갓’ 다수 추정 / 경찰 “참여자들 신상파악에 집중” / 文대통령 “회원 전원 조사… 엄벌”
텔레그램 성범죄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초등학생까지 메신저를 통한 디지털 성범죄의 표적이 된 정황이 포착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성착취 동영상을 제작해 공유한 ‘n번방’ 사건에서 운영자는 물론 이 방 회원 전원에 대한 엄중한 수사를 지시했다.
23일 세계일보의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12일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 카페에는 ‘n번방 텔레그램 기사를 보고 경험담을 올린다’는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의 초등학생 딸 A양은 모바일 게임 아이템을 사기 위해 온라인으로 문화상품권 판매자에게 연락했다가 성범죄의 위험에 노출됐다.
자신을 10대 남성이라고 밝힌 문화상품권 판매자 B씨는 신원 확인이 필요하다며 A양에게 학교 알림장 앞·뒷면의 사진을 찍어 보내게 하는 수법으로 신상정보를 확보한 뒤 이를 볼모로 나체 사진을 찍어 자신에게 전송할 것을 요구했다. 피해자가 이를 거부하자 A양이 다니는 학교의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고 해코지를 하겠다고 위협하며 나체 영상을 찍어 보내줄 것을 거듭 강요했다.
다행히 A양은 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부모의 개입으로 별다른 피해 없이 상황은 마무리됐지만 하마터면 아동 성착취 범죄의 표적이 될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A양의 어머니인 글 작성자는 “n번방 기사를 읽고 당시 경험이 떠올라 큰 충격을 받았다”며 “딸이 협박이 무서워 영상을 달라는 요구에 응했으면 어떻게 됐을지 소름이 돋는다”고 말했다.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를 성적으로 착취하는 내용의 영상물을 공유하는 ‘n번방’ 사건의 핵심 피의자인 일명 ‘박사’로 지목되는 20대 남성 조모씨. 연합뉴스 |
텔레그램 n번방에서는 실제로 초등학생이 성착취 범죄의 피해자가 되는 일이 일어난 것으로 파악된다. 텔레그램 성범죄 내부고발자인 김재수(25·가명)씨는 23일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갓갓’(n번방 운영자의 아이디)이 운영하던 n번방에서는 12살 정도로 보이는 어린 여자아이가 가학적인 성행위를 당하는 영상이 올라와 공유되기도 했다”며 “아직 알려지지 않았을 뿐 트위터 등에도 어린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제2의 갓갓’들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이버수사대 한 관계자는 “아직 해당 수법(알림장을 촬영하게 해 신원을 확인한 뒤 협박)으로 피해를 본 사례는 없지만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해 그런 식의 비슷한 수법이 엄청나게 많다”며 “그런 일을 겪는다면 즉시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n번방’ 사건과 관련해 “(경찰은) ‘박사방’ 운영자 등에 대한 조사에 국한하지 말고 ‘n번방’ 회원 전원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고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이 밝혔다. 문 대통령은 “아동 청소년 16명을 포함한 피해 여성들에게 대통령으로서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국민의 정당한 분노에 공감한다”면서 “정부가 영상물 삭제뿐 아니라 법률 의료 상담 등 피해자들에게 필요한 모든 지원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문 대통령은 무엇보다 “‘n번방’ 사건 가해자들의 행위는 한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 잔인한 행위”라고 규정하며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순식간에 300만명 이상이 서명한 것은 이런 악성 디지털 성범죄를 끊어내라는 국민들 특히, 여성들의 절규로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경찰은 이 사건을 중대한 범죄로 인식하고 철저히 수사해서 가해자들을 엄벌에 처해야 한다”며 “특히 아동·청소년들에 대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서는 더욱 엄중하게 다뤄달라”고 지시했다. 해외 온라인 메신저인 텔레그램에서 이뤄진 성착취 영상 공유방의 시초는 ‘n번방’으로, ‘박사방’은 그 연장 선상에서 만들어진 방이다.
이날 서울지방경찰청은 성착취 영상물을 보기 위해 ‘박사방’에 참여한 이용자들의 신상을 파악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박사방 회원들 역시 단순한 방관자가 아니라 집단 성폭력의 공범이라는 여론을 잘 파악하고 있다”며 “법에 근거한 처벌이 이뤄질 수 있도록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여성단체는 텔레그램 성착취물 공유방 60여곳의 이용자가 최대 26만명(단순합산)에 달한다고 추산한다. 이 중 박사방 회원은 최대 1만명인 것으로 전해졌다.
민갑룡 경찰청장도 이날 서면 간담회에서 “자체 모니터링과 여성 단체 제보 등을 통해 텔레그램과 ‘디스코드’ 이용 불법 음란물 유통 사례를 수사 중”이라며 “해외 법집행기관 등과 긴밀히 공조해 적극적으로 수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어 민 청장은 “경찰청 사이버안전국에 ‘글로벌 IT기업 공조 전담팀’을 신설해 해외 SNS 기업들과도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군도 ‘n번방’ 사건과 관련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군 관계자는 이날 “현재 수사를 진행 중인 경찰에서 군 쪽으로 문의가 들어온 것은 없다”면서 “군에도 연루된 사람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경찰이 관련자를 확인해서 군에 이첩하면 각 군에 통보해 수사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지원·김달중·박병진 기자 g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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