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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든든한 원작과 의지, 그것밖에 없었으나 끝은 화려했다.
소신으로 밀어붙인 JTBC ‘이태원 클라쓰’가 4,9%(닐슨코리아 / 전국유료방송가구 기준)에서 16.5%까지 치솟는 시청률에 힘입어 박수를 받으며 퇴장했다. 토요일 밤 화려한 이태원 거리처럼 클라쓰가 빛을 발했다.
22일 최종회는 원작 웹툰과 동일한 흐름으로 진행됐다. 원작을 보지 못한 일부 시청자들은 조이서(김다미)의 납치를 두고 ‘왜 이야기가 그쪽으로 빠지냐’고도 했으나, 웹툰의 흐름을 알고 있던 시청자라면 충분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결말이었다.
작품은 끝까지 ‘소신’을 말했다. 소신에 대가 없는 삶. 학창시절엔 ‘네 꿈을 펼쳐라’ 하고, 취업전선에선 ‘사람이 미래’라고 하고, 막상 직장생활을 시작하면 모두가 블록 조각이 되는 세상. 여기 쌓아도, 저기 쌓아도 튀지 않고 뚫리지 않고 무게를 잘 받치고 있는. 그런 직원이 되기를 강요하고 또 그런 직원에게 ‘A급’이라는 호칭을 붙여주는 세상. 그 세상을 향해 뒤통수를 후려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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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점은 짓밟힘이었다. 학교폭력을 당하던 친구를 구해주고 퇴학당해, 아버지는 그 가해자의 차량에 치여 사망해. 무릎 꿇지 않았다는 이유로 박새로이(박서준)에게 벌어진 현실은 만화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는 정말 만화에서나 나올법한 복수를 꿈꾸기 시작했다.
이미 중졸에 전과자 딱지까지 붙은 그에게 이태원은 대한민국이되 한국은 아닌 세상이었다. 다양한 인종, 이국적 거리, 자유로운 사람들 안에서 그는 자신의 과거를 털어버렸다. 세상의 편견과 원하지 않는 눈길 없이 새 삶을 시작할 공간으로 그만한 곳이 또 있을까.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모두가 저마다 나름의 소신을 지니고 살아가는 이들이었다. 소시오패스, 트랜스젠더, 혼혈아, 조직폭력배 출신. 보통사람이지만 보통으로 안 보이는 그들에게 이태원이란 그들의 소신을 지킬 수 있는 작지만 큰 자유로운 세상이었다. 자신을 올곧게 믿어주는 사장과 든든한 동료들, 이를 개성이라 보는 손님들까지. 금요일 퇴근하고 소파에 축 늘어진 채 드라마를 보는 직장인들은 얼마나 부러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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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드라마가 중반을 넘어서며 단밤이 IC로 확장 되고, 주인공들이 성공의 흐름을 타면서 개연성에 대한 지적도 피할 수는 없었다. 사건은 단편적이었고, 에피소드별 갈등도 뚜렷하지 않았다. 웹툰과 뒤섞인 부분에 대한 불만도 나왔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중요했던건 원작을 만든 작가가 드라마 극본까지 맡은 이상 작품의 궁극적인 메시지를 향해 나아가는 힘은 유지될 것이라는 확신이었다.
이 믿음 덕분에 장근원(안보현)과의 마지막 갈등이 폭력으로 전개된 부분도 억지스럽지 않았다. 수도 없이 봐온 기업 대 기업의 머리싸움이 아닌, 폭력으로 시작된 갈등을 폭력으로 끝낸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학창시절부터 어떤 폭력과 폭언을 해도 문제없이 빠져나가던 이와 이를 ‘먼지 털어내듯’ 후드러 패는 박새로이. 모든 것을 잃고 멍한 눈빛을 하는 악당의 모습보다야 맞고 또 맞으며 박살나는 악당의 모습이 훨씬 더 시원한건 당연하다.
끝까지 발목잡던 그놈의 무릎은 장대희(유재명)이 꿇으면 되지. 그가 꿇은 무릎은 힘으로 사람들을 억누르던 자의 패배, 자본의 계급화에 대한 사과, 가족을 배불리 먹이기 위해 장사를 시작했다는 초심을 잃은 것에 대한 후회였다. 잠시 잠깐 당신에게만. 누굴 호구로 알고···.
입사하면 잡무에, 회식에, 교육에, 갈굼까지. 소신을 잃거나 훌훌 털고 떠나거나 기로에 선 절대 다수의 직장인들은 결국 조직에 순응하는 삶을 택한다. “제가 호구인 줄 아십니까” 한마디 하지 못하는 소시민들에게 묵직한 한방, 그 클라쓰에 어찌 박수치며 떠나보내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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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진기자 csj8453@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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