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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누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진흙탕으로 만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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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미래한국당 한선교 전 대표가 3월 18일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영등포구 당사로 들어가고 있다. 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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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쓸 수 없는 제도가 돼버렸다.”

21대 총선에 새로 도입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평가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번 총선에서는 어쩔 수 없이 치르게 됐지만 다음 선거에서 연동형은 설득력을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록 50%만 반영하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지만, 비례 47석을 놓고 정치권은 진흙탕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김상일 시사평론가는 “이런 난장판이 따로 없다”고 평가했다.

가장 먼저 위성정당을 만들어 진흙탕 속으로 끌고 들어간 미래통합당은 최근 미래한국당과 우스꽝스러운 갈등 상황을 연출했다. 미래한국당이 3월 17일 발표한 비례대표 후보 공천자 명단에서 통합당의 영입 인사를 대부분 당선권 밖 후순위에 배치했기 때문이다. 통합당이 ‘제2의 비례정당’을 만들 수도 있다는 압박을 가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모(母) 정당이 위성정당의 공천에 불만을 품고, 다른 위성정당을 만들겠다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여기에다 모 정당이 위성정당의 지도부를 교체하겠다는 방안까지 나왔다.

민주당과 통합당의 진흙탕 싸움

3월 19일 미래한국당의 공천관리위원회(공관위)가 결정한 공천 후보 명단은 선거인단 투표에서 부결됐다. 통합당의 황교안 대표가 비판 발언을 한 것이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미래한국당 한선교 전 대표는 투표 부결 후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통합당은 비례의석 때문에 정치권이 난장판이 된 상황에서 범여권을 탓했다. 황 대표는 3월 19일 최고의원 회의에서 “현재 정당을 불문하고 비례정당 파열음이 정가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면서 “모든 혼란은 민주당과 추종세력이 야합한 선거법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래한국당의 창당을 비난하던 더불어민주당은 어쩔 수 없이 ‘비례의석 쟁탈전’이라는 진흙탕으로 뛰어들었다. 민주당은 3월 12일 당원투표라는 절차를 통해 비례연합정당 참여를 결정했다. 이때까지 논란은 그나마 어쩔 수 없는 선택이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대안으로 선택한 ‘더불어시민당’이 새로운 논란을 증폭시켰다. 민주당은 플랫폼 정당을 자처하는 ‘정치개혁연합’과 ‘시민을위하여’ 중 ‘시민을위하여(더불어시민당으로 명칭 개정)’를 선택했다. 더불어시민당은 민주당과 가자환경당, 가자평화인권당, 기본소득당, 시대전환 등 소수 정당이 참여했다. 비례대표 앞 순위에는 소수정당과 시민사회 추천인사가 배치되고, 10번 이후 순위는 민주당 비례대표 후보가 배치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정치개혁연합에 참여하려던 민중당·녹색당·미래당은 사실상 비례민주정당에서 배제되는 결과를 낳았다. 일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당원 투표를 한 뒤 참여를 결정한 소수당은 ‘소수당 배려’라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최대 피해자가 됐다. 시민사회 원로들이 주로 참여했던 정치개혁연합 역시 상처를 입었다. 이낙연 민주당 상임공동선거대책위원장은 3월 19일 관훈토론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 초기부터 심한 진통을 동반했지만, 지금도 그런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면서 민주당의 비례연합정당 논란에 대해 “그다지 아름답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시종일관 독자적인 길을 걸은 정의당에도 불똥이 튀었다. 정의당은 처음부터 정개련의 참여 요구를 거절했다. 이후 일부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하락하는 양상을 보였다. ‘지역구는 민주당, 정당 투표는 정의당’이라는 일부 민주당 지지자들의 전략적인 선택이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민생당 역시 비례민주정당 참여를 놓고 바른미래당계와 대안신당계·민주평화당계가 격론을 벌이는 등 진흙탕 정국에 끼어들었다. 비례의석 확보가 정치권에서 일파만파의 혼란을 만든 것이다.

총선을 앞두고 각 정당에서 내놓은 비례의석 확보 ‘꼼수’ 때문에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결국 누더기가 되고 말았다. 거대 정당이 비례대표를 내놓지 않는 현상도 초유의 일이지만, 비례정당의 순번을 확보하기 위해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현역의원들이 다른 당으로 이적하는 웃지 못할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이준한 교수는 “엄청난 혼란이 벌어지고 있고, 정치학적으로 전 세계에 아주 독특한 예외 사례로 연구 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일 평론가는 “사표(死票)를 없애자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법 취지가 완전히 망가졌다”면서 “거대 양당의 양보가 전제로 돼야 하지만 통합당이 양보를 하지 않으면서 온갖 수가 나오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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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례연합 정당을 추진하고 있는 ‘시민을위하여’와 연합정당 참여를 선언한 기본소득당·시대전환·가자환경당·가자평화인권당 대표들이 3월 1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당명을 ‘더불어시민당’으로 하고, 다른 정당의 참여를 기다리겠다고 밝히고 있다. 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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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적으로 독특한 연구 주제 될 것”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의당이 오래전부터 한국정치에 접목하기 위해 시도한 비례대표제다. 정의당은 20대 국회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민주당은 마지못해 응하는 상황이었다. 연동형 비례대표의 골격을 갖춘 공직선거법 개정 원안은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만들었다. 국회에서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되는 과정에서 민주당의 힘이 필요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비례성 강화는 사실상 문재인 대통령의 뜻이 담겨 있었다”고 말했다.

2018년 3월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에 제출한 개헌안에도 문 대통령의 뜻이 담겨 있었다. ‘국회의원 선거의 비례성 원칙’이 강조돼 있었던 것이다. 개헌안 제44조 제3항에는 “국회의원의 선거구와 비례대표제, 그 밖에 선거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하되, 국회의 의석은 투표자의 의사에 비례하여 배분해야 한다”라고 명시돼 있다. 비록 국회에서 개헌안은 통과되지 못했지만, ‘선거의 비례성 강화’는 범여권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한 취지가 됐다.

민주당은 비례정당을 먼저 만든 통합당을 비난하고, 통합당은 합의 없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만든 범여권을 비난하고 있다. 정의당을 비롯한 대부분의 소수정당은 거대 양당의 꼼수를 비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선 민심은 여전히 거대 양당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비례의석 확보에서도 양당 중심의 체제가 굳어지고 있다. <뉴스1>이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3월 13일 조사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비례대표 투표 정당에 대해 물어본 결과 미래한국당이 22.6%로 최고의 득표율을 보였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민주당 역시 만만치 않았다. 비례연합정당이 19.9%의 지지율을 차지했고, 손혜원 의원(무소속)과 정봉주 전 의원이 중심이 된 열린민주당이 6.5%를 차지했다. 열린민주당 역시 사실상 민주당 계열의 정당범주 안에 들어가기 때문에 두 정당의 지지율을 더하게 되면 모두 26.4%의 지지율이라고 할 수 있다. 정의당은 7.5%의 지지율을 기록했고, 국민의당은 3.0%를 나타내 비례대표 의석 확보 기준선인 3%의 문턱을 넘어섰다. 하지만 이 여론조사에서 ‘없다/모름/무응답’이 36.6%를 차지해, 실제 총선에서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 같은 여론조사 결과는 각 지역구에서 실시되는 여러 여론조사 결과 추이와 거의 비슷하다. <동아일보>가 의뢰해 리서치앤리서치가 3월 15일 조사한 서울 종로구 여론조사에 따르면 ‘민주당이 참여하는 비례연합정당’의 지지율이 21.2%로 미래한국당 지지율 22.0%와 비슷했다. 정의당이 13.0%, 열린민주당이 6.9%, 국민의당이 4.8%를 차지했다. ‘투표하고 싶은 정당이나 단체 없음’이 10.6%였고, ‘잘 모르겠다’가 16.9%였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소장은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민주당의 비례정당 정당 지지율이 민주당의 원래 정당지지율에서 20∼30% 정도 빠지는 것으로 나오고, 미래한국당의 지지율이 통합당 지지율에서 10% 이내로 빠지는 것으로 나온다”면서 “지금 상황에서는 미래한국당의 지지층이 더 단단한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엄 소장은 “각 정당에서 빠진 지지율은 정의당·국민의당·유보층으로 고루 분산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며 “다만 민주당의 경우 비례정당이 완전한 모습을 갖추지 않았기 때문에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비례정당으로 흘러들어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열린민주당과의 관계 설정 변수로

리얼미터의 3월 2주차 여론조사(3월 9∼13일, YTN의뢰)를 보면 정당지지도는 민주당이 41.5%(열린민주당은 여론조사 내용에 안 들어감), 통합당이 32.1%, 정의당이 4.3%, 국민의당이 3.9%였다. 무당층은 10.9%였다. 비례대표 정당 선택을 조사한 결과는 정당지지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 37.7%, 미래한국당이 29.2%, 정의당이 7.2%, 국민의당이 5.4%였다. 무당층은 11.4%였다. 비례대표 정당 선택 역시 기존 정당의 지지도와 비슷한 양상을 보인 것이다. 이 비례대표 정당 선택 조사에서 리얼미터는 “여권에서 준비 중인 비례대표를 위한 정당이 구체화되면 향후 지지율에 다소간 변동이 있을 가능성 존재”라고 분석했다.

민주당은 비례정당으로 더불어시민당을 선택했지만 여전히 변수가 남아 있다. 열린민주당과의 관계 설정이다. 민주당은 열린민주당과 거리를 두고 있다. 민주당은 공식적으로 다른 정당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하지만 각종 여론조사에서 열린민주당이 6%대 이상의 뚜렷한 지지율을 기록하면서 이번 총선에서 변수가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일부러 제1비례정당과 제2비례정당을 운용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의 온건 지지자들은 더불어시민당을 지지하고, 강성 지지자들은 열린민주당을 지지하게 만드는 구조라는 것이다. 이 같은 시각에 대해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이미 손혜원 의원이나 정봉주 전 의원은 민주당 밖의 인사이거나 민주당의 공천을 받지 못한 인사”라면서 “나중에 비례대표 정당의 프레임이 고정되면 민주당의 지지표가 열린민주당으로 쉽게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비례의석 확보 경쟁이 진흙탕 속으로 들어갔지만 4월 총선에서 양대 정당 중심의 큰 흐름은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았다. 엄경영 소장은 “선거전이 본격화되고 선거일이 임박하면 거대 양당의 지지가 양당의 비례정당으로 결집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김상일 평론가는 “비례의석 확보를 놓고 난장판이 벌어지고 있지만, 유권자들에게는 거대 양대 정당 외에 마땅한 선택지가 없다”고 말했다. 김 평론가는 “집권 여당이 실수하더라도, 탄핵을 당하고 정권을 잃은 통합당이 반성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이라면서 “20대 총선에서 중간지대에서 표를 받은 안철수·유승민·손학규 같은 인물들이 한 지붕 세 가족의 집안싸움을 벌여 중간지대가 없어진 것도 또 다른 원인이 됐다”고 말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미래한국당의 창당에서 시작해 더불어시민당의 창당을 거쳐 4월 15일 총선에서 마지막 시험대에 오른다. 이준한 교수는 “다음 총선에서는 새로운 비례대표투표제를 찾든지, 20대 국회의 비례대표 선거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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