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 혐의를 받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지난해 5월9일 오전 서울 송파구 동부지방검찰청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김 전 차관이 검찰 조사를 받는 것은 지난 2013년 무혐의 처분을 받은 이후 5년 반 만이다. /이새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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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무혐의 처분 뒤늦게 알려져…'제3자 뇌물' 물증 확보가 관건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검찰이 김학의(64) 전 법무부 차관의 성폭행 혐의를 또 무혐의 처분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로써 '별장 성 접대'를 심판할 무대는 사실상 법원이 유일해졌다. 항소심에서 강간죄는 더이상 거론 불가능하고 제3자 뇌물죄로만 성폭행 혐의를 따질 수 있다. 14년전 별장 성 접대는 법의 심판을 받을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부실 수사 논란 속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공소 유지를 위한 물증 확보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은다.
13일 김 전 차관에게 소개한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건설업자 윤중천(59) 씨의 항소심 재판 절차가 막 시작됐다. 윤 씨에게 성 접대 형태로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기소됐으나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김 전 차관 사건 역시 검찰 항소로 2심 재판이 열릴 예정이다.
◆7년간 세 번의 무혐의 처분…골든타임 놓쳤다
이들이 피고인석에 서기까지는 6년의 시간이 걸렸다. 2013년 3월 박근혜 정부 당시 법무부 차관으로 김 전 차관이 임명된 직후, 별장에서 중년 남성이 여성들에게 성 접대를 받는 영상이 떠돌며 논란이 불거졌다. 김 전 차관은 영상 속 남성이 자신이 아니라고 부인하며 차관 임명 6일 만에 사퇴했다.
경찰은 같은 해 7월 동영상 속 인물을 김 전 차관으로 결론짓고 접대를 제공한 윤 씨와 함께 성범죄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송치했다. 4개월 뒤 검찰은 당사자인 김 전 차관이 혐의를 전면 부인 중인데다 사건 관련자들의 진술을 믿을 수 없다며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피해자 A씨의 고발로 다시 수사가 재개됐지만 2015년 1월 검찰이 내놓은 수사 결과는 또 무혐의 처분이었다. A씨는 문제의 동영상 속 여성이 자신이며, 윤 씨의 협박 속에서 김 전 차관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했지만 당시 검찰은 동영상 속 여성을 A씨로 확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A씨가 고발장을 제출한 건 2014년 7월의 일이다. 검찰이 고발장을 받아들고 수사 결과를 발표하기까지 반 년 동안 김 전 차관 출석 조사가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 검사가 피해자들을 고압적 태도로 조사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며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논란이 불거졌다.
지난 해 3월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 권고로 검찰은 특별수사단을 꾸려 재수사에 들어갔다. 이미 사건이 발생한지 10년이 넘었고 잇따라 무혐의 처분된 사건의 재수사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같은 달 15일 김 전 차관은 법무부 진상조사단의 출석 요구에 불응하고, 22일에는 태국으로 도피하려다 긴급출국금지로 공항 탑승동에서 출국을 제지당하기까지 했다.
이후 김 전 차관은 또 다른 피해자 B씨와 고발전을 벌이기도 했다. 2019년 4월 김 전 차관은 2013년 자신을 고발했던 B씨를 무고죄로 검찰에 고발했고, 두 달 뒤 B씨는 김 전 차관을 강간치상과 무고 혐의로 맞고소했다.
검찰은 같은 달 6월 김 전 차관에 뇌물 혐의, 윤 씨에게는 강간치상 등 혐의를 적용해 구속기소하는 한편 김 전 차관과 B씨의 쌍방 고발건을 수사해 왔다. 하지만 검찰이 지난 1월 증거불충분으로 두 사건 모두 혐의없음 처분을 내린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별장 성 접대 사건에 있어 세번째 무혐의 처분이다. 한 성범죄 전문 변호사는 "성범죄 사건 특성상 진술이 주요한 작용을 하긴 하지만 정황 증거가 없다면 입증이 어렵다. 14년이 지난 사건을 재판에 넘길 정도의 증거를 찾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3월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 앞에서 한국여성의전화와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및 '고 장자연 씨 사건' 진상 규명 촉구 기자회견을 연 가운데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의 피해자(오른쪽)가 발언하고 있다./김세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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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전 별장 성 접대, '공소 유지'가 급하다
검찰은 일단 공소가 제기돼 항소심에 접어든 사건들에 집중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별장 성 접대 행위를 형사처벌할 수 있을지는 김 전 차관과 윤 씨 사건 모두 미지수다.
당초 검찰은 김 전 차관이 받은 성 접대를 뇌물로 보고 재판에 넘겼다. 성범죄가 아닌 뇌물죄로 의율한데 잡음이 있었지만 이는 검찰이 14년전 성 접대 행위를 기소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김 전 차관이 받는 뇌물죄의 경우 혐의액이 1억원 미만이면 공소시효 10년, 1억을 넘어가면 15년이다. 2006∼2007년 성 접대를 뇌물죄로 처벌하려면 1억원 이상의 뇌물 혐의가 필요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2006~2008년 윤 씨가 성 접대와 3100만원 등을 제공한 혐의에 제3자뇌물 혐의로 1억원을 더해 포괄일죄를 구성했다. 제3자뇌물죄가 인정되지 않으면 별장 성 접대를 포함한 모든 혐의내용이 공소권부터 무너지는 구조였다.
제3자뇌물죄 혐의는 김 전 차관이 윤 씨의 청탁을 받고 자신에게 성 접대를 제공한 A씨의 채무 1억원을 면제해줬다는 내용이다. A씨는 윤 씨에게 진 빚 1억원으로 고소를 당하는 등 법적 분쟁까지 벌였다. 검찰은 김 전 차관이 이 과정에서 A씨에게 접대받은 사실이 폭로될까 윤 씨에게 채무 면제를 부탁했다고 본다.
지난해 11일 1심 선고 공판에서 해당 혐의가 인정되지 않으면서 결국 성 접대를 포함한 개별 공소사실들은 면소 판결을 받았다. 윤 씨의 진술 번복이 컸다. 검찰 조사에서 윤 씨는 A씨에게 "1억 안 받고 한 번 용서해주겠다. 학의 형 아니었으면 넌 죽었다"고 말한 사실을 시인하며 "(1억원을 안 받으면) 향후 형사사건에 걸려 들었을 때 잘 처리해줄 것 같았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증언대에 서자 "1억을 꼭 받을 생각은 없었다"고 말을 바꿨다. 청탁과 대가 사이 인과관계가 모호해졌다.
김 전 차관은 검찰의 불복으로 항소심 재판을 앞두고 있다. 법률가들은 2심에서 1억원의 제3자뇌물죄를 입증하려면 객관적 물증 확보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필우 법무법인 예율 변호사(입법발전소)는 "윤 씨와 A씨의 채무 관계가 절박했고 윤 씨가 A씨에게 반드시 1억원을 받아야 했다는 사정을 증명할 계약서나 각서 등 서류, 또는 녹취록이 물증으로 제시된다면 원심이 뒤집힐 여지도 있다"고 설명했다.
건설업자 윤중천 씨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등 고위층을 상대로 성 접대를 했다는 의혹이 처음 제기됐을 당시인 2013년 7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위해 들어서고 있다. /더팩트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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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접대 제공 과정에서 피해자를 성폭행해 상해를 입힌 혐의(강간치상)를 받는 윤 씨 역시 검찰과 피고인 양측의 항소로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윤 씨의 원심 재판부도 강간치상 혐의는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2006~2007년 3회에 걸친 성폭행 혐의가 인정되려면, 강간치상 공소시효가 10년에서 15년으로 연장된 2017년 12월 이후에도 성폭행에 다른 상해 피해가 지속됐음을 증명해야 했다. 피해자 A씨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진단을 받은 건 2017년 12월이다. 1심 재판부는 해당 질환이 6년 전 성폭행에서 비롯된 상해인지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13일 첫 공판에서 검찰은 범행을 당한 피해자가 뒤늦게 장애를 겪을 수 있다는 취지의 정신과 전문의 의견서 제출을 예고한 상태다. 같은 맥락에서 법원내 전문 심리위원에게도 심리를 요청했다. 이같은 증거가 재판부의 심증 형성에 영향을 줄 수도 있지만 물증 확보가 관건이다. 김상균 법무법인 태율 변호사는 "성폭행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 사이 인과관계가 있다는 확실한 물증이 필요하다. 6년간 심리적 고통으로 병원이나 심리상담을 받았다는 기록같은 물증이 정황증거로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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