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은 바람이다. 순풍이 언제 역풍으로 바뀔지 모른다. 예측, 어렵다. 바로 직전이던 2016년 총선까지 투표 전 전망은 거의 다 틀렸다. 정치컨설턴트 박성민씨는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줄다리기 싸움에 비유했다. 팽팽하게 맞선 듯 보이다가 어느 순간 확 쏠린다는 것이다.
사실상 총선 결과만 놓고 사후적 평가만 가능하다. 게다가 정권 4년차에 치러지는 선거평가는 혹독할 수밖에 없다. 여권 패배는 레임덕으로 직결된다. 야권이 패배하면 정권심판의 호기를 날렸다는 비판을 받을 것이다. 사후적 평가가 불가피하더라도 이번 선거를 특징짓는 주요 변수는 있다. 코로나 사태, 여권의 비례당 추진, 박근혜 편지의 결집 효과다. 하나씩 짚어보자.
■ 코로나19 사태, 여권에는 잘하면 본전?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서울 구로구 코리아빌딩. 이 건물 6층에는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역임한 윤건영 민주당 구로을 후보의 선거사무실이 마련되어 있다. / 권도현 기자 |
코로나19 사태는 현재 진행 추이로 볼 때 선거가 치러질 4월 15일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변수가 아닌 사실상 상수가 돼버리는 것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투표율에까지 영향을 줄 수도 있다. 투표장 감염을 우려한 나머지 투표 참여도 저조해질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나온다.
기자가 만난 대부분의 선거컨설턴트·정치권 인사들은 “사태가 집권당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마스크 수급 대란은 현 정부의 능력에 대한 부정적 평가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사태는 선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구 북구갑에서는 양금희 미래통합당 예비후보의 사무장이 코로나19로 사망했다. 서울 집단감염 사례인 구로콜센터는 공교롭게도 이 지역에 출마한 윤건영 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의 선거사무소가 차려진 빌딩이다.
층도 달랐고 홀·짝수로 운영하는 엘리베이터 운행층도 달랐지만 최소 2주간은 선거사무소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없다.
그러나 박신용철 정책컨설팅 그룹 더체인지플랜 선임연구원은 “코로나가 발병하면서 이미 선거운동 자체가 온라인, 전화운동으로 바뀌었다”라고 말한다. 실제 종로에서 출마한 민주당 이낙연 후보의 경우 출·퇴근 인사를 중단하고 오전 2~3시간 동안 후보자가 전화하는 방식의 선거운동을 벌이고 있다.
코로나 사태는 새로 도전장을 내는 정치신인들에게도 불리하다.
이번 선거에 수도권에서 처음 출마하는 한 인사는 “지역위원장으로 코로나 사태 이전부터 바닥민심을 다져온 사람이라면 모를까, 전략공천으로 내려오는 후보는 이웃 지역구에 누가 출마하는지도 잘 모르는 경우도 봤다”라며 “후보자조차 그러한데 신인 후보에 대해 아는 유권자가 얼마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실전에서 유권자를 만나야 하는 신인으로서는 코로나 국면으로 자신을 알릴 기회조차 박탈되고 있다는 것이다.
여권으로서는 ‘코로나가 아니어도 힘들었을’ 대구·경북이나 부산·울산·경남 등 지역구가 특히 힘들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민주당 전략 관련 핵심관계자는 이렇게 덧붙였다.
“사태를 잘 정리해야 본전이다. 잘 막으면 ‘당신들이 원래 해야 했던 일’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그런데 여기서 관리되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집단감염지가 추가로 나와 상황이 악화되면? ‘게임 끝’이다.”
그러나 다른 전망도 나온다. 중국 등의 상황 추이에 비춰보면 확진자 증가 양상은 늦어도 3월 말에 정점을 찍을 것이고, 선거가 치러질 4월 중순이면 정리 내지는 평가 단계에 접어든다는 것이다.
청와대 한 인사는 “전반적으로 코로나 정국이 여권에 불리한 것이 사실이지만 실낱같은 희망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팬데믹(대유행)으로 확산된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대처에 대해 외국 언론이 내리는 긍정적인 평가가 거꾸로 국내 여론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러나 이 인사도 “신천지를 넘어 구로구 콜센터 집단발병과 같은 예상치 못한 전개 때문에 앞으로 추이가 어떻게 될지는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여권비례연합당 추진, 웃는 쪽은?
“우리가 해본 시뮬레이션 중 최악의 시나리오는 미래통합당이 157~160석까지 가는 것이었다.”
앞서 민주당 전략 핵심관계자의 말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보수 야권의 ‘꼼수’ 비례정당인 미래한국당을 두고 약 100개의 시뮬레이션 결과를 만들었다. 앞서 157석은 미래통합당이 130개 지역구를 얻고, 종전의 병립형 비례 17석과 캡 씌운 연동형 비례 30석 중 통합당이 27석을 가져간다는 결과를 덧붙인 숫자다. 이 경우 원내 제1당은 물론, 과반까지 통합당이 가져가게 된다.
“제일 답답한 것은 정의당이다. 우리가 산출한 최악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정의당은 비례에서 2~3석밖에 못 얻는다. 미래한국당이 상수로 존재하는 한 정의당이 얻을 수 있는 의석은 아무리 해도 최대 7석이다. 제일 아쉬운 것은 노회찬 의원의 부재다. 노 의원이 살아 있었다면 지금의 상황을 돌파할 리더십을 발휘했을 것이다.”
여권의 비례연합당 추진은 당원투표를 통과하면서 기정사실화되었다. 미래당이나 녹색당, 민생당 등 다른 소수 정당은 불참 의사를 밝히다가 유보적 입장으로 변하고 있지만 정의당은 불참으로 못을 박은 상태다. 심상정 대표 등 지도부만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정의당 전국위원회 차원에서 결의된 것이다.
“비례당을 추진한다고 우리가 독식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선거제 개편 협상을 할 때부터 캡 씌운 연동형 30석은 포기했다. 병립형 17석 중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의석은 7~8석을 한계로 보고, 그것을 전제로 4+1 협상을 했던 것이다. 비례연합을 추진하면 그 7석을 제외하고 나머지 앞 순위는 진보·소수정당에게 양보하겠다는 것인데도 이야기가 통하지 않고 있다.”
3월 11일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는 16명이 비례당 추진에 찬성 발언을 했고, 4명이 반대나 유보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발표문에 반대 발언이 삭제되었다가 논란이 되자 다시 오른 김해영 의원은 부산 연제구가 지역구다. 김부겸 의원이나 반대 입장을 밝힌 측은 대부분 비례당 추진이 중도층이 민주당에 등을 돌리게 할 것이며, 특히 지난 총선에서 5000표 미만 박빙으로 승부가 갈린 59개 지역구 표심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비례당 문제를 다룬 지난 기사에서 추진 불가피성과 함께 “당 지도부의 사과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최병천 전 민주연구원 연구위원은 “미래한국당이 추진되었을 때도 연동형 비례제 도입에 찬성했던 언론이나 진보성향 평론가들로부터 비난을 받았지만 막상 국민 사이에서 비난의 강도는 높지 않았다”고 말했다. 각 진영을 대표하는 언론이나 평론의 비난을 당분간 불가피하지만 그냥 흘러가게 되지 않겠냐는 전망이다.
반면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는 “실제 지역에서 맞붙게 되는 총선 특성상 보수 야권과 똑같이 가설정당을 만들면 저쪽을 합법화시켜주면서 논리적 대응이 쉽지 않다”라며 “모든 것이 민주당이 주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제일 큰 문제”라고 말했다.
원래 정권 4년차에 치러지는 선거의 기본프레임은 정권심판론을 중심으로 그어질 수밖에 없는데, 비례가설정당 추진은 여권의 명분을 크게 약화시킨다는 지적이다. 그는 “20대 국회에서 그나마 상징적인 사건이 패스트트랙을 통과시킨 것인데, 비례연합당 추진은 개혁법안 취지를 무력화시키는 것”이라며 “비례당이 얻을 의석수에 대한 정치공학적인 계산만으로 유·불리를 따지거나 전략적 판단을 하는 것은 큰 실수가 될 가능성이 많다”라고 말했다.
■ 박근혜 편지, 진영 결집 기폭제 될까
“탄핵의 강을 건넌 게 아니라 탄핵을 당한 이유에 대한 반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기자와 통화한 유원일 전 의원의 말이다. 유영하 변호사가 공개한 이른바 ‘박근혜 옥중편지’를 두고 황교안 통합당 대표가 “천금 같은 말씀”이라고 반응한 데 대한 지적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황 대표나 미래통합당 측의 반응이 그렇다면, 국민이 탄핵을 잘못했다는 말인가. 국민은 탄핵 이후에도 지방선거로 한 번 더 심판한 셈이다. 광역단체장도 둘 빼놓고 전멸했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탈당해 무소속으로 선거를 치러 간신히 당선됐다. 저 사람들의 본심으론 아직도 탄핵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변호인인 유영하 변호사가 3월 4일 국회에서 박 전 대통령의 자필 편지를 공개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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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로서는 천우신조가 된 셈이다.”
앞서 민주당 전략 핵심관계자의 평가다. 결국 미래통합당의 통합 움직임이 ‘도로 새누리당’이라는 것을 유권자들에게도 알린 셈이 된 것이 아니었느냐는 것이다. 야권의 거대정당, 다시 말해 미래통합당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는 것은 민주당 지지 유권자들에게도 위기의식을 불러 결집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난 3월 11일 늦은 밤 이 관계자와 통화는 ‘민주당이 과연 지금 상황에 대한 절박감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서부터 시작했다. 당 안팎의 비례당 추진은 ‘이러다 1당을 뺏길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의 발로다. 그러나 위기의식의 중심에 당은 있으되, 유권자들과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같이 해법을 모색해가는 절박감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었다.
이른바 ‘보수결집’을 주문하는 박근혜 편지에 대한 평론가나 정치컨설턴트의 시각은 그리 큰 변수가 되지 못한다는 시각이 다수다.
미래통합당의 통합 계획에 동참하지 않는 일부 보수세력이나 태극기부대 등 보수 내 주도권 다툼세력에만 의미가 있지 보수·진보세력뿐 아니라 다양한 요구를 갖고 있는 국민의 선택에 영향을 미칠 만한 변수는 아니라는 지적이다. 한 시사평론가는 “공천이 막바지에 이른 지금은 박근혜 편지보다 김형오 사천(私薦) 논란이 더 큰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측 관계자는 이렇게 덧붙였다.
“채 한 달도 안 남았다고 하지만 뛰고 있는 정치권 입장에선 아직 한참 남았다. 이번 선거는 워낙 변수가 많다. 하루 만에 뒤집히기도 한다. 과거 선거를 복기해보면 항상 그랬다. 지난 총선만 하더라도 당시 집권당인 새누리당에서 180석까지 석권할 거로 내다보는 사람들도 있지 않았는가. 뚜껑을 열어볼 때까지는 누구도 안심할 수 없는 게 선거다. 다만 과거와 달라진 것이 있다. 더 이상 감으로 하는 선거가 아니라는 점이다. 전략은 데이터에 근거해 나온다. 저쪽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힌트를 준다면 상대방의 워딩을 면밀히 보라. 야권이 코로나 위기에 정부 탓만 계속한다면 역설적으로 자기 쪽이 밀리고 있다는 뜻이다. ‘정부와 최대한 협조하겠다, 정부 방침을 믿고 따르자’며 기조가 달라진다면 그때는 우리가 위험하다는 지표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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