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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연재] 경향신문 '해외축구 돋보기'

[해외축구 돋보기]코로나19 위협 속에 홀로 관중석 지킨 발렌시아 ‘영구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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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 동안 관전한 열혈팬 나바로

시력 잃고도 아들 설명 들으며 응원

작년 구단 100주년 맞아 동상 세워



경향신문

무관중 경기로 진행된 11일 발렌시아-아탈란타의 유럽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에서 관중석이 텅 빈 가운데 비센테 나바로 동상이 덩그러니 앉아 있다. 발렌시아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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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시아와 아탈란타의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이 열린 11일 발렌시아 메스타야 구장. 코로나19 위협 때문에 무관중 경기로 열린 탓에 빈자리로 가득한 관중석이 을씨년스러웠다. 관객이 연극의 3요소인 것처럼 관중 없는 축구도 상상하기 어렵다. 팬이 없는 축구는 얼마나 쓸쓸하고 우스꽝스러운가. 그런데 자세히 보면 텅 빈 스탠드에 한 사람이 앉아 있다. 발렌시아 회원 번호 18번의 비센테 나바로다. 사실 그는 사람이 아니다. 동상이다. 아니, 동상이지만 그는 사람이다. 1948년부터 발렌시아 평생 시즌 티켓 회원이 된 그는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발렌시아의 경기를 빼놓지 않고 지켜본 열혈 팬이었다. 더 놀라운 건 54살 때인 1982년 망막박리증으로 시력을 잃은 뒤에도 201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34년간 경기장에 나와 발렌시아를 응원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아들의 설명을 들으며 경기 장면 장면을 상상했다. 무엇보다 그는 경기장 분위기를 즐겼다. 발렌시아는 구단 창립 100주년을 맞은 2019년 그가 늘 앉았던 센트럴 트리뷰나 구역 15열 164번 좌석에 그의 동상을 세워 그의 팬 정신을 기렸다. 그는 적어도 메스타야에서 불멸의 존재가 됐다. ‘메스타야의 영혼’으로 영원히 발렌시아의 경기를 지켜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날 발렌시아와 아탈란타 팬들은 경기장 앞에 모여 열띤 응원전을 펼쳤다. 하지만 7골을 주고받은 짜릿한 경기를 직접 볼 수 있었던 팬은 비센테 나바로가 유일했다. 코로나바이러스도 그만은 침투 불가다. 아탈란타전은 그가 원했던 경기는 아니었다. 발렌시아는 아탈란타 공격수 요십 일리치치에게만 4골을 헌납해 3-4로 졌다. 2패로 탈락. 반면 아탈란타는 챔피언스리그 첫 출전에 8강에 오르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종료 휘슬이 울리자 선수들이 한데 모였다. 선수들이 카메라를 향해 T셔츠를 들어올렸다. 거기에는 ‘베르가모, 이 승리를 당신들에게 바친다. 결코 포기하지 말라’라는 글귀가 써 있었다.

아탈란타 연고지인 베르가모는 코로나19 창궐로 시민들이 고통받고 있다. 축구가 시민들에게 두 시간의 즐거움과 위로를 선사한 것이다. 가스페리니 아탈란타 감독은 이런 메시지도 전했다. “6월에 큰 파티를 열 것이다(챔피언스리그 우승에 도전하겠다는 의미). 우리를 위협하는 위험(코로나19)도 패배시킬 것이다.”

류형열 선임기자 rh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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