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일말의 기대감도 걷어찬 '남북의 메신저'
백두혈통·김정은 최측근…'최고존엄' 대남 불신 반영
김여정 지위·역할 급부상…실세+대남총괄역할 주목
통일부 "한반도 평화 정착 위해 남북 상호 존중해야"
흔들리는 남북관계를 지탱해오던 마지막 못마저 뽑혔다. 북한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이자 '남북 메신저' 역할을 해왔던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을 내세워 청와대를 맹비난했다. 김 위원장의 대남 불신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는 평가와 함께 지위·역할이 수직상승한 김 제1부부장이 대남총괄역까지 도맡을지 주목된다.
김 제1부부장은 3일 밤 '청와대의 저능한 사고방식에 경악을 표한다'는 제목의 담화를 통해 청와대를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그는 전날 인민군 전선장거리포병부대의 화력전투훈련을 두고 "우리는 그 누구를 위협하고자 훈련한 것이 아니다"면서 자위적 차원이라고 했다.
앞서 이 훈련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 청와대를 향해서는 "주제넘은 실없는 처사", "적반하장의 극치"라고 비판했다.
김 제1부부장은 남한도 합동군사훈련을 자주 실시하고 첨단전투기를 띄운다고 지적하면서 청와대 반응에 대해 "자기들(남한)은 군사적으로 준비돼야 하고 우리(북한)는 군사훈련을 하지 말라는 소리"로, "이같은 비논리적인 주장과 언동은 남측 전체에 대한 불신과 증오, 경멸만을 더 증폭시킬 뿐"이라고 주장했다.
김 제1부부장은 "참으로 미안한 비유이지만 겁을 먹은 개가 더 요란하게 짖는다고 했다"고도 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설 당일인 지난 25일 삼지연극장에서 부인 리설주 여사와 함께 명절 기념공연을 관람했다고 조선중앙TV가 26일 보도했다. 최룡해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여동생이자 처형된 장성택의 부인이었던 김경희 전 노동당 비서, 리일환 노동당 부위원장, 조용원·김여정 당 제1부부장, 현송월 부부장이 함께 공연을 관람했다. 김경희는 2013년 12월 장성택 처형 6년여만에 처음으로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왼쪽부터 주석단에 앉아 공연을 관람하는 김경희, 김여정, 조용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김 제1부부장은 2018년 초 평창동계올림픽을 시작으로 남한과의 대화 물꼬를 터온 메신저이자 대남 특사 역할을 해온 인물이다. 그가 청와대를 겨냥한 비난 담화를 낸 것은, 그만큼 남한을 향한 불신이 극에 달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향후 남북관계가 쉽게 풀리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은 이번 김여정 담화를 통해 3월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 이후에도 앞으로도 상당기간 대화재개나 관계개선이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시사했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김 제1부부장 개인의 위상과 영향력이 급상승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는 그동안 당 선전선동부에서 부부장에 이어 제1부부장으로 활동하다가 지난해 말 노동당 전원회의를 기점으로 권력의 정점인 조직지도부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그가 김 위원장의 공개활동을 지원하는 역할을 넘어서서 이제는 자신의 입장을 대외적으로 표명할 수 있을 정도로 그의 위상과 영향력이 확대되었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대남관계에서도 총괄 역할을 맡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일 전방 장거리포병구분대의 화력타격훈련을 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3일 보도했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김 제1부부장의 이번 대남비난 담화는 정부의 대북메시지 관리의 총체적 실패라는 지적도 나온다. 임 교수는 "북한은 이번 화력전투훈련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정국 등을 고려해 나름대로 수위를 조절해 훈련을 하고 있음에도 청와대가 자동응답기처럼 훈련 중단을 요구한 데에 크게 자극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정 센터장도 "단거리 발사체 분야에서 북한보다 우위에 있는 우리가 북한이 정규훈련과정에서 단거리 발사체를 발사한 것에 대해서까지 비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면서 "앞으로 남북관계의 관리와 개선을 위해서는 청와대와 정부의 대북 메시지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제1부부장의 담화에 대해 청와대는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김 부부장의 발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을 것"이라며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이 관계자는 "발언 배경 등에 대해서는 살펴볼 수 있지만 당장 이에 대한 입장을 내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일 전방 장거리포병구분대의 화력타격훈련을 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3일 보도했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남북관계 주무부처인 통일부도 말을 아꼈다.
여상기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정착을 위하여 남북이 상호 존중하며 함께 노력해 나가야 한다"고 4일 밝혔다.
여 대변인은 김 제1부부장의 위상 변화와 관련한 질문에도 "좀 더 시간을 갖고 분석한 뒤 밝히겠다"고 말했다.
이번 담화에 김 위원장의 의중이 반영됐다고 보느냐는 질문에도 "조금 전에 말한 그대로 받아들여달라"며 평가를 유보했다.
김 제1부부장의 담화는 3일 늦은 밤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됐지만, 북한 주민들이 보는 노동신문이나 조선중앙방송 등에는 4일 관련 보도가 없었다.
이와 관련해 '북한이 비난의 수위를 조절한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도 여 대변인은 "담화의 분석과 관련해서는 좀 더 시간을 갖고 분석하고 따로 밝히겠다"고 말했다.
김동표 기자 letmei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