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주도 추경에 기재부 또 ‘들러리’ 될 가능성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예산안 잉크도 마르기 전이기 때문에 검토할 수 없다"고 했던 ‘우한 코로나(코로나19)’ 대응 추가경정예산(추경)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추진될 가능성이 커졌다. 기재부가 반대 입장을 나타냈던 추경이 민주당 요구로 편성될 움직임을 보이면서, ‘홍남기 패싱’이 재현될 조짐이다. 경제 정책의 컨트롤타워인 기재부가 사후 통보받는 식으로 주요 정책 결정 과정에서 배제되는 현상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반응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기재부가 일부 경제지표의 ‘반짝’ 반등에 고무돼 코로나19의 부정적인 경제영향에 둔감했다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경제 컨트롤타워가 안일한 경제인식에 함몰돼 정책 주도권을 상실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가 2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코로나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정부측에 긴급 추경 편성을 요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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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기 부총리 부재시에 추경 밀어붙이는 집권여당
24일 기획재정부와 국회에 따르면,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3일 국회에서 열린 고위 당정청 회동에서 코로나19 대응 추경 편성을 요청했다.
이인영 민주당 원대내표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정부는 즉시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해서 국회에 보고해줄 것을 요청한다"면서 "정부가 긴급히 추경안을 제출하면 민주당은 제출 즉시 국회 심의에 착수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통합 의원모임 유성엽 대표가 제안했고,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도 협조할 뜻을 밝혀 여야가 추경에 뜻을 함께한다고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민주당 안팎에서는 다음달 17일 끝나는 임시국회 회기 내에 추경안이 국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정부가 즉시 추경 편성 작업에 나서야 한다는 요구도 나온다. 국회 안팎에서 ‘코로나 추경’ 편성 움직임을 보이는데 대해 주무부처인 기재부는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가 G20(주요 20개국)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 참석차 사우디아라비아로 출장을 간 사이에 국회발(發) 추경이 급물살 타는 것에도 당혹감을 느끼는 모습이다.
한 기재부 관계자는 "사우디아라비아 출장 중인 홍 부총리가 24일 오전 귀국하는데, 그 이후에 추경과 관련한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기재부 관계자는 "홍 부총리가 귀국 후에 의사결정을 하겠지만, 코로나19 위기경보가 ‘심각’으로 격상된 상황을 충분히 감안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재부 내부에서도 ‘코로나 추경’을 편성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김용범 기재부 1차관은 이날 오전 거시금융경제점검회의에서 "정부는 현 상황이 '비상경제시국'이라는 인식 아래 국민 안전 확보, 경제적 영향 최소화 등을 위해 과감하고 신속하며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 3일 기자간담회에서 “1월은 예산안에 잉크도 마르기 전”이라며 추경 검토를 일축했다. /기재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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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자찬’식 경제진단이 ‘기재부 패싱’ 불렀나
이 때문에 추경 논의가 본격화될 경우 ‘홍남기 패싱’ 논란이 재현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홍 부총리는 코로나19 감염 사태가 본격화된 이후 ‘추경 불가론’을 일관되게 외쳤다. 그는 지난 3일 기자간담회에서 "1월은 올해 연간 예산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인데, 추경에 대해 묻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면서 예비비 지출 등을 우선 검토하겠다고 했다.
홍 부총리가 제시한 예비지 지출에 대해 이인영 대표는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다음주 후반 예정된 코로나 종합 경기대책에서 추경의 틀을 제시하길 바란다"고 요구했다.
정부 안팎에서는 코로나19의 경제 여파를 과소 평가한 홍 부총리와 기재부의 오판(誤判)이 패싱 논란을 자초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코로나19 감염 사례가 꾸준히 나왔던 지난 13일 기재부는 경기진단서인 ‘그린북(최근의 경제동향)’에서 "경기 개선흐름이 나타나고 있다"고 했고, 홍 부총리도 "정부가 지난해 말 설정했던 금년도 성장률 목표치(2.4%) 조정을 논의하기는 적절한 단계가 아니다"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일부 경제지표의 ‘반짝 반등’에 지나치게 고무된 게 오판의 배경이라고 지목한다. 홍 부총리는 지난달 31일 발표된 12월 산업활동동향에서 생산, 소매판매, 투자 등이 모두 플러스(+)로 돌아서자 "최근 경기 개선의 신호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모습이다. 최근의 경기 개선 신호들이 확실한 경기 반등 모멘텀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를 방역하고 제압할 것"이라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올렸다.
한 경제연구원의 고위 관계자는 "코로나 감염증 확산으로 사람들이 쇼핑, 외출 등 외부활동을 극도로 자제하는 상황이었는데, 경제부총리가 경기반등을 얘기하는 것을 보고 상황인식이 잘못됐다는 인상을 받았다"면서 "전염병 등 통제 못하는 변수를 대할 때는 ‘어떤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자세를 보였어야 하는데, 상황을 지나치게 유리한 쪽으로만 해석한 게 정책 대응여력을 제약한 것 같다"고 말했다.
세종=정원석 기자(lllp@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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