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심 조정제도, 패스트트랙 등 도입 앞장…'치료적 사법' 시도하기도
정준영 서울고법 부장판사[연합뉴스 자료사진] |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항소심에서 징역 17년의 중형을 선고한 서울고법 형사1부 정준영(53·사법연수원 20기) 부장판사는 재판 제도에 관한 다양하고 참신한 시도를 멈추지 않는 '개척자'로 평가받는 법관이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정준영 부장판사는 서울 청량고·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88년 제30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1994년부터 판사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법원행정처 송무심의관, 사법정책실 정책 3심의관, 대법원 재판연구관 등을 역임하며 사법부 내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1997년 서울중앙지법 민사부 수석부장판사 배석 시절 한보그룹과 웅진홀딩스 등 파산 사건의 주심을 맡아 처리했고, 초대 서울회생법원 수석부장판사를 지냈을 만큼 법원 내에서 손꼽히는 '파산·회생' 전문가로 통한다.
정 부장판사는 법 테두리 안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법원 내 '아이디어 뱅크'로 유명하다.
인천지법에 있을 당시 형사재판 제도인 '국민참여재판'을 민사재판에 적용한 '배심 조정' 제도를 처음 시행했고, 파산부 시절에는 유동성 위기를 겪는 중소기업에 신속히 자금을 지원하는 '패스트트랙 프로그램' 도입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지난해 서울고법 부장판사로 부임한 후에도 정 부장판사의 새로운 시도는 계속됐다.
지난해 3월 이 전 대통령에게 '가택 연금' 수준의 조건을 붙여 보석(보증금 등 조건을 내건 석방) 결정을 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정 부장판사는 석방 후 주거지를 자택으로 제한하고, 접견·통신 대상도 한정하는 등 엄격한 제한 조건을 달아 이 전 대통령을 석방했다. 구속된 전직 대통령이 보석을 통해 풀려난 것은 이 전 대통령이 처음이었다.
정 부장판사는 또 형벌보다는 재발 방지나 치료에 중심에 둔 '치료적 사법' 재판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9월에는 살인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60대 남성에게 치매전문병원 입원을 조건으로 보석을 허가했다.
판결 선고 또한 이례적으로 재판부가 피고인이 입원 중인 병원에 직접 찾아가 진행했다.
음주 운전 사고 후 달아난 피고인에게 직권으로 보석 석방을 하며 '치유 법원 프로그램'을 적용하고, 사업실패를 비관해 세 자녀와 함께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부부의 재판에서는 아내에게 실형을 선고하면서도 남은 두 자녀를 돌볼 수 있도록 보석을 허가하기도 했다.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또한 맡은 정 부장판사는 첫 재판부터 이 부회장의 아버지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삼성 신경영' 사례 등을 언급하며 이 부회장에게 당부의 말을 전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더 나아가 삼성에 실효적 준법감시제도 마련 등을 제안하면서 이를 양형에 반영할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시민단체 등이 '재벌 봐주기 수순'이 아니냐고 반발하는 등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수백억 원대 횡령·배임 혐의 등 혐의로 기소된 이중근 부영 회장의 사건에서는 부영 측의 준법경영 노력을 양형에 유리한 요소로 실제 반영한 판결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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