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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미투' 운동과 사회 이슈

서지현 검사 "사직 아닌 복귀, 피해자들에게 용기 주고픈 마음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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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판결로 진실이 달라지지 않는다”



경향신문

2018년 11월 8일 서지현 검사가 <경향신문>과 인터뷰 하며 촬영했다./정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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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검사로서 맡은 일을 양심껏 최선을 다하는 게 내 몫의 일인 줄 알았다. 검찰개혁은 나 따위가 나서지 않아도 언젠가 되겠지 싶었다. 조직에 비판을 서슴지 않는 검사들이나 겪는다고 여긴 부당함과 마주하기 전까진 그랬다.

2018년 1월 검찰 내부망에 상사의 성추행과 부당인사를 고발했다. “힘 없고 백 없는 일개 검사의 절규 따윈 비웃으며 무시하는 그들, 그들 앞에 달리 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다른 방법이라는 것은 결코 없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이어 생방송 인터뷰에서 피해사실을 증언했다.

평범한 검사였던 서지현(47)은 2년 전 한국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 운동의 상징이 됐다. 성폭력·성차별이 만연한 현실을 바꿀 수 있다면 얼마든 이용당하겠다고 각오한 일이었다. ‘정치하려고 저런다’는 일각의 오해 섞인 비판도 참고 견뎠다. 폭로 2년 뒤인 1월 9일, 대법원은 서 검사를 성추행한 뒤 인사 보복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태근 전 검사장(54)에 대한 유죄 판결을 ‘다시 심리하라’며 파기환송했다.

“한국 사회는 미투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미투는 현재 진행형이다.” 서 검사는 2월 7일 ‘한국의 미투 2년’을 주제로 열린 외신기자클럽 간담회에서 말했다. 서 검사는 2월 13일 짧고도 긴 휴직을 끝내고 복귀했다. 앞으로 법무부에서 법무·검찰 조직문화 개선 및 양성평등 관련 업무를 맡는다. 그에게 지난 2년의 소회와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봤다. 인터뷰는 복귀를 앞두고 서면으로 진행됐다.

-일선 수사부서가 아닌 법무부로 복귀하게 됐다. 각오가 남다를 것 같은데, 복귀를 앞둔 심정은 어떤가.

“처음 검사게시판에 글을 올리기 전 사표를 써놨다. 소위 공익제보자가 제보 이후, 제대로 직장생활을 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돌아오기 힘들 것이라고 봤다. 진상조사단에서 조사가 진행될 때 대리인단과 ‘조사결과 발표 시 사표를 내자’라고 논의가 끝난 상태였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분들이 응원과 지지의 목소리를 내주셨고, 나를 보고 용기와 희망을 갖게 되었다는 분들이 수없이 많았다. 도저히 그대로 사표를 낼 수 없었다. 어떻게든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텨보기로 결심했다. 내가 복귀하기로 했을 때, 무슨 좋은 보직을 받아서 가는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여러 이야기를 하셨다고 들었다. 내가 그분들이 생각하는 출세나 성공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직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이 제대로 회복되지 않았고, 검찰도 크게 변한 게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다시 그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매우 두렵다. 작은 일에도 트집을 잡고, 일거수일투족 감시당하는 듯한 생활을 할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그저 매일매일이 마지막 날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제대로 된 제도 하나만 만들어도 성공이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보자는 생각이다.”

-대법원 선고 이후에도 복귀 여부를 고민한 것으로 안다. 복귀를 결심한 직접적 계기가 있나.

“고통받는 피해자들에게 좀 더 용기를 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조직 내 피해자가 정상적으로 다시 근무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나 역시 근무 시작도 전에 인사 자체에 대해서도 관심과 비난을 받아야 했다. 근무 자체도 쉽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렇게 하나둘씩이라도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용기를 냈다. 또 하나의 계기가 있다. 대법원 판결 이후 나에 대한 앙갚음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질병휴직 기간이 끝나는 4월 초에 맞춰 검찰에 사직의 뜻을 밝힐 생각이었다. 그런데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받기는커녕 피해자에게 되갚으려는 생각을 하게 놔두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라도 내가 법무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인사발표 이후 새보수당은 서 검사가 양성평등 업무를 맡는 것 자체가 검찰개혁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 본연의 업무로 돌아가는 것이 성숙한 검찰문화이자 검찰개혁이라고 논평했다. 민주당 권력에 기대지도, 숨지도 말라는 말도 했는데.

“나는 어떤 정치적 목적이나 의도도 없고, 정당 쪽과도 어떤 연계도 없다. 처음 미투를 했을 때부터 검찰에서 한 가장 큰 음해는 ‘정치하려고 저런다’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공익제보자의 메시지를 희석하기 위해 메신저를 공격하는 전형적인 음해다. 내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그들은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믿는다는 것을 잘 알기에, 난 그저 내 할 일만 충실히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안태근 전 검사장에 대한 대법원의 파기환송심 판결을 빼놓을 수 없다. 대법원의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에 대한 입장은 문화계 블랙리스트 판결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판단기준이 윤곽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파기환송심에서도 무죄가 예상된다.

“검사인사규칙 위반이 원칙 위반이 아니라는 대법원 판단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가해자가 자신의 범죄를 덮기 위해 인사규칙에 위반해 유례없는 인사지시를 했다는 사실관계를 모두 인정하면서도, 그 인사지시가 인사담당자의 ‘재량’ 범위 내라고 판단한 것인데, 인사보복이 어떻게 재량이 될 수 있나. 사실 개인적으로는 사실관계가 모두 인정됐기 때문에 위안이 되는 면도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 공익제보자나 조직 내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해 마음대로 보복성 인사를 해도 된다는 ‘인사보복의 길’을 열어준 것은 도저히 우리나라 최고 법원의 판결이라고 믿기 어렵다.”

경향신문

안태근 전 검사장의 성추행을 실행으로 폭로해 한국 미투운동의 중심에 선 서지현 검사/정지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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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판결 이후 언론은 ‘미투 다시 원점으로’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이에 ‘원점은 결코 제자리가 아니다’라고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실을 알고 있는데, 대법원이 이치에 맞지 않는 판결을 했다고 해서 진실이 달라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미투가 다시 원점이라고 하기에는, 미투 이후 우리 사회가 아주 많이 변했다. 성폭력이 결코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 가해자를 옹호하고 피해자를 비난해온 문화가 잘못됐다는 것을 대다수 국민이 인식하게 된 것이 미투가 가져온 가장 큰 변화다. 그러한 인식의 변화가 결코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하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도 많다. 외신기자클럽 간담회에서 ‘한국의 미투-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주제로 발표를 하기 위해 자료를 수집했는데 정부기관의 공식자료나 통계가 거의 없었다. 제대로 된 제도의 변화나 법률의 변화도 찾기 힘들었다.”

-‘행복해지자’라는 말을 자주 한다. 앞으로 맡게 될 업무 역시 ‘행복’이라는 키워드를 내려놓고 갈 수 없는 일이다. 한국 사회에서, 검찰조직 내에서 여성이 ‘행복해지면서 일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은 무엇인가.

“검찰이라는 폐쇄적 조직 내에서는 여성이든 남성이든 행복해지면서 일할 수 있는 방법은 지금으로서는 없다고 생각한다. 조직 내에서 조직의 구성원들이 행복하게 일할 수 있고, 국민을 행복하게 할 수 있어야 국민이 사랑하고 신뢰할 수 있는 조직이 될 수 있을 테니 검찰이 그러한 방향을 보다 적극적으로 연구해야 한다고 본다. 행복에는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당장은 나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고, 나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지켜나가는 것이 행복이지 않을까.”

-최근 페이스북에 ‘누구도 섣불리 비난하거나 편가르지 않고, 제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 나갈 것’이라고 썼다. 검찰 내부 구성원들을 편가르지 않고 조직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여성인권 문제에는 어떻게 연대해나갈 건지도 궁금하다.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한 것은 없다. 검찰은 지금까지 수사뿐 아니라 배당·평가·상벌·인사 등이 무조건적인 복종을 강요하는 시스템이다. 그런 시스템이 보다 민주적인 절차로 바뀌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 여성인권 문제는 검찰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문제다. 검찰 내부에서 미투 이후 변화를 시도했다고 들었지만 여전히 나를 공공연히 음해하고, 허위사실을 적시하며 명예훼손을 한 검사들을 오히려 영전시켰다. 내 사건뿐 아니라 여러 성폭력 사건들을 은폐하고, 가해자들을 보호하고 있는 검찰이 달라졌다고는 보지 않는다. 검찰 내부에서는 응원의 목소리도 있지만, 내가 검찰 전체를 망신주었다는 비난의 목소리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다양한 목소리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연대해나갈지가 나에게도 큰 고민이다.”

-수없이 들어온 질문이겠지만, 복귀를 앞둔 시점에서 다시 한 번 묻는다. 2년 전 그날로 돌아간다면 그때와 똑같이 행동할까.

“나로서는 당시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도저히 더는 견딜 수 없어 검사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그대로 사표를 낼 생각이었다. 글을 올린 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검찰에서 기자들에게 내 글이 사실이 아니라는 허위문자를 돌린 사실을 알고, 그대로 있을 수만은 없어서 인터뷰를 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달리 방법이 없다면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그런데 반드시 미투가 피해자의 얼굴과 이름을 모두 드러내는 방식으로 진행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스웨덴의 경우 수많은 미투가 있었지만,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공개되지 않고 집단 대 집단으로 해결하는 방법으로 진행됐다고 알고 있다. 그 방법이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보호에 더욱 효과적이라면, 더욱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나가야지 하나의 방법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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