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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9 (화)

이슈 [연재] 중앙일보 '김식의 야구노트'

[김식의 야구노트] 굿바이 홈런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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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야구 전설 노무라 가쓰야 별세

생계 위해 보조선수로 프로 입문

‘약자병법’ 쓴 노력과 분석의 대가

오 사다하루와 노력 경쟁 일화도

중앙일보

노무라 가쓰야는 74세였던 2009년까지 라쿠텐 감독을 지냈다. 일본 야구 최고령 사령탑이었다. 그는 마지막 경기에서 지고도 선수들에게 헹가래를 받았다. [사진 라쿠텐 골든이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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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옛날이야기다. 병든 홀어머니를 둔 형제가 있었다. 동생인 열 살 소년은 신문 배달로 중학생 형의 학비를 벌었다. 형은 소년이 고등학교도 가지 못할 것 같자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소년은 고등학교를 어렵게 마친 뒤, 난카이 호크스(현 소프트뱅크) 입단 테스트에 참여했다. 불펜 포수(투수 공을 받아주는 훈련 보조선수)로 입단한 소년은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정식 선수가 됐다. 일본 야구의 전설적인 포수 노무라 가쓰야(野村克也·1935~2020) 이야기다.

많은 책을 읽고 쓴 것으로도 유명한 노무라의 대표적 저서는『약자병법(弱者の兵法)』이다. 책 제목만 봐도 그의 야구 인생을 가늠할 수 있다. 노무라는 그리 재능 있는 선수는 아니었다. 입단 1년 만에 방출 통보를 받았다. 그는 무릎을 꿇고 구단 직원들에게 애원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해고하면 난카이 전철에 뛰어들겠습니다.”

노무라는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웨이트 트레이닝 개념이 없던 시절, 빈 병에 모래를 담아 역기처럼 들면서 근육을 단련했다. 노무라는 당시 다른 포수들이 게을리했던 타격 훈련에도 집중했다. 타격이 향상되자 구단은 그를 1루수로 옮기려 했다. 포수를 하기에 노무라의 어깨가 너무 약했다. 그러나 노무라는 죽으라고 공을 던지며 어깨를 단련했다. 남들이 힘들어하는 포지션에서 버텨야 오래 살아남을 거라고 믿었다.

노무라는 입단 3년 만에 1군 선수가 됐고, 곧바로 홈런왕(30개)에 올랐다. 성공가도 위에서도 그는 참 별났다. 경기 중 손가락이 부러져도 이를 숨긴 채 시즌을 마쳤다. 부상이 커지는 것보다 후배에게 자리를 빼앗기는 게 두려웠다.

젊은 시절 노무라는 처절하게 처절했다. 그냥 열심히만 한 게 아니다. 그는 “틀린 자세와 방법으로 훈련하면 나중에 교정하기가 두 배로 힘들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방향을 정한 뒤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무라는 1980년 45세 나이로 선수를 그만둘 때까지 9차례 홈런왕(통산 657개·역대 2위)에 올랐다. 리그 최우수선수도 5번 뽑혔다.

키(1m75㎝)도 크지 않고 힘도 세지 않았던 노무라는 쉬지 않고 화면과 데이터를 분석했다. 노무라는 당대 최고 투수 이나오 가즈히사(1937~2007)를 공략하기 위해 밤새워 비디오 테이프를 돌려봤다. 투구 폼에서 미세한 버릇을 찾아낸 노무라는 이나오의 공을 때려내기 시작했다. 훗날 널리 유행한 일본식 분석 야구의 시작이었다.

노무라는 질투의 화신이었다. 다른 팀 선수들과 술자리 도중 한 후배가 벌떡 일어났다. 후배는 “먼저 가보겠습니다. 야간 훈련을 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노무라는 “저 친구가 내 기록을 다 바꾸겠군”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고 한다. 그 후배가 통산 868홈런의 오 사다하루(王貞治·80)다. 훗날 노무라는 “내가 그의 후배였으면 그를 넘어서기 위해 더 노력했을 것”이라며 말했다.

선수 겸 감독 시절을 포함해 노무라는 24년 동안 프로야구 사령탑을 맡았다. 야쿠르트 감독으로 일본시리즈에서 세 차례 우승했다. 그러나 그는 꼴찌 난카이와 라쿠텐을 포스트시즌에 올려놓은 것으로 더 유명했다. 노무라는 선수들의 작은 재능을 발견해 큰 변화를 만들 줄 알았다. 정면승부를 피하되 긴 레이스를 이기는 법을 알았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옛날이야기다. 지금은 노무라의 데이터 해석이 굳이 필요 없을 만큼 기록이 구체적이다. 그가 했던 ‘노오력’을 지금의 선수에게 강요하면 안 된다. 다만, 노무라의 야구가 한 시대를 풍미했고, 현대 야구는 그 기반 위에서 발전하고 있는 사실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노무라는 85세를 일기로 11일 세상을 떠났다. 가난이 싫어 야구를 시작한 소년은 많은 돈을 벌었어도 야구를 떠나지 못했다. 2002년에는 사회인 야구팀 감독을 맡기도 했다. “나는 평생 포수”라던 그는 어디선가 누군가의 공을 받고 있을지 모른다. 굿바이, 올드보이. 야구가 있는 다른 세상에서, 씨 유 어게인.

김식 야구팀장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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