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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이슈 5·18 민주화 운동 진상 규명

[팩트체크]황교안의 '사태'는 '서울의 봄'인가 '5·18'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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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유동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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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15일 서울역 앞에 집결한 대학생들과 시민들. 이날의 집회 해산결정을 '서울역 회군'으로 부른다./ 뉴시스



제21대 총선에서 서울 종로구 출마선언을 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9일 종로에 위치한 모교인 성균관대 앞 분식집에서 기자들이 보는 앞에서 대학시절을 회상하며 했던 발언의 파장이 커지고 있다.

황 대표가 했던 발언은 "1980년, 그때 뭐 하여튼 무슨 사태가 있었죠? 1980년. 그래서 학교가 휴교되고 뭐 이랬던 기억도 나고…"였다.

이를 두고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에선 황 대표가 말한 '사태'가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지칭한 것이라며 일부러 '폄훼'의도로 '사태'로 표현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5·18'을 '광주민주화 운동'으로 고쳐부르기 전까지 신군부 군사정권 영향으로 교과서나 언론에서 '광주사태'로 불렀기 때문이다.

반면 네거티브 공세에 대해선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경고한 황 대표는 논란이 계속되자 지난 11일 기자들에게 “본래 (1980년에) 학교 휴교가 있었다"며 "휴교령이 내려졌다고 내가 그 얘기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서울의 봄‘으로 표현되는 1980년 봄의 민주화운동은 시기적으론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전 대통령 사망 이후 사실상 정치활동을 제한당했던 김대중·김영삼 등 야당 주요 정치인들이 활동을 개시한 1980년 초부터 그해 5월18일 시작된 광주 민주화운동 직전까지로 구분될 수 있다.

1980년 봄, 당시 대학가는 정부의 계엄령에 반발하고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 집회·시위로 정상적인 학사일정이 이뤄지지 않던 시기다. 특히 황 대표 모교인 성균관대는 4월 초 병역집체훈련거부를 가장 먼저 결의해 교내 농성을 실행하기도 했다. 이는 서울 시내 주요 대학으로 번져 당시 대학생들이 의무적으로 받던 집체훈련에 대한 거부는 신군부에 저항하는 방법으로 채택됐다.

그해 4월14일 최규하 대통령 특별담화에서 정부가 '학원사태(당시 언론 표현)'를 계엄연장의 이유로 들자 대학가 시위는 더 강경해졌다.

4월17일엔 서울 시내 주요대학 총학생회가 모여 '비상계엄 해제, 정부주도 개헌 반대, 언론자유 보장' 등을 걸고 시국선언 성명서를 발표했다.

5월 들어선 대학가 시위가 더 강경해져 시국성토대회 등을 열며 '계엄해제'와 더불어 '전두환(당시 보안사령관), 신현확(당시 총리) 퇴진'을 내세워 교내 농성을 이어갔다.

대학가 민주화운동 열기가 절정에 달했던 5월14일, 학생들은 교문을 벗어나 가두시위에 나섰고 시청앞, 서울역광장, 을지로 등을 돌며 구호를 외쳤다. 다음 날인 5월15일이 서울역 광장에 10만여명의 학생과 시민이 모여 '서울의 봄'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집회가 있던 날이다. 그날 밤 총학생회 대표단이 모여 집회 해산을 결정한 것을 두고 '서울역 회군'으로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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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총선에서 종로 지역구 출마선언을 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9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분식집을 찾아 떡볶이를 먹고 있다. (자유한국당 제공)2020.2.9/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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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대표가 언급한 '휴교'는 '서울역 회군' 이틀 뒤인 5월17일에 전격적으로 시행됐다. 신군부는 학생집회가 시민과 연계할 조짐을 보이며 확대되자 이를 차단하기 위해 '휴교령'과 함께 학생회 임원들에 대한 검거에 나섰다.

이후 광주에선 5·18 민주화운동이 벌어졌지만 언론보도 통제로 당시 서울 지역에선 광주에서의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는 못했다. 아울러 신군부가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엮어 야권 정치인과 재야인사 그리고 주요 대학 학생회 임원 등 민주진영 주요 인사들을 대거 검거하기도 했다.

결국 황 대표가 언급한 '휴교'와 '사태'를 1980년 당시 상황으로 돌이켜보면, 성균관대 4학년이던 황 대표 입장에선 '휴교'의 원인은 '서울의 봄'이고 '사태'는 '학원 소요 사태'를 칭하는 것으로 보는 게 더 적절하다.

대학가의 민주화 시위를 과거엔 군부 독재시절 정부의 관점에서 부정적인 표현으로 '학원 소요 사태' 혹은 '학원 사태'로 불렀다. 공안검사 출신의 황 대표는 1980년 봄의 서울지역 대학가 시위를 '학원 소요 사태'라는 명칭으로 인식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당시 보안사령관이던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는 서울권 대학생들의 집회·시위를 막기 위해 비상계엄령 확대와 휴교령을 내렸다.

황 대표는 '무슨 사태'로 '휴교'가 됐다고 발언했다. 그대로만 해석하면 '무슨 사태'가 '휴교'의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보인다.

시점을 고려하면 황 대표가 말한 '사태'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보다는 '서울의 봄' 혹은 그 시기의 '학원 소요 사태'로 보는 게 더 맞다.

'서울의 봄'으로 일컬어지는 서울지역 대학생들의 민주화 시위에 신군부가 비상계엄 확대로 대응했고 그에 따른 조치가 '휴교령'이었기 때문이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휴교령' 직후에 광주지역에서 서울과는 별도로 벌어진 일이다. 전후관계상 시기적으로 성균관대를 비롯한 전국 대학에 내려진 '휴교령'을 가져온 사건은 '서울의 봄'에서의 학원 소요 '사태'로 보는 게 더 자연스럽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영향으로 '휴교령'이 내려졌다는 식의 주장은 전후가 맞지 않는 틀린 표현이기 때문이다.

물론, 1980년 5월 '서울의 봄'의 학생 운동을 '사태' 혹은 '학원 소요 사태'로 표현하고 기억하고 있다는 점에서 엿볼 수 있는 건, 공안검사 시절의 관점을 벗어나지 못한 황 대표의 과거사 인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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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1980년 5월21일 광주 동구 금남로를 가득 메운 시민들. 이날 계엄군은 집단발포를 자행, 수없이 많은 시민들이 쓰러졌으며 항쟁기간 가장 많은 사상자를 냈다. 2017.05.14. (사진=5·18기념재단 제공) photo@newsis.com



유동주 기자 lawmak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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