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검색
헤럴드경제 언론사 이미지

이집트의 희망 ‘호르 엠 아케르’…누가 ‘스핑크스’라 하는가

헤럴드경제 함영훈
원문보기

이집트의 희망 ‘호르 엠 아케르’…누가 ‘스핑크스’라 하는가

서울맑음 / -3.9 °
서구, 스핑크스 2300년간 괴물로 왜곡

왕족·귀족 피라미드 이끄는 이집트 대표신

멀리 보이던 웅장함이 친근한 돌계단으로

지구촌 여행자 놀이터 된 ‘쿠푸왕 피라미드’

태양신과 입맞춤 등 ‘앵글맞추기’ 사진 명소
이집트를 침략한 외세가 괴물이라는 뜻으로 이름 붙인 스핑크스는‘ 지평선에 있는 수호신 호루스’라는 의미를 지닌‘ 호르 엠 아케르’로 이집트인들 사이에서 수천년 불려왔다.

이집트를 침략한 외세가 괴물이라는 뜻으로 이름 붙인 스핑크스는‘ 지평선에 있는 수호신 호루스’라는 의미를 지닌‘ 호르 엠 아케르’로 이집트인들 사이에서 수천년 불려왔다.


호루스는 이집트 9신의 가르침을 계승하고 신들 간의 갈등을 매듭지어 현세를 밝게해주는 국왕신으로, 6000년 역사 중 이 나라의 리더들이 늘 표방했다. “호루스의 이름으로” 문명을 만들고 태평성대를 도모했던 것이다.

그런데, 4600여년 전부터 세워진 대형 피라미드 지역에 최근 2300년 사이,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지평선에 있는 호루스(호르 엠 아케르)’를 괴물(Sphinks)로 둔갑시킨 사건이었다.

카이로 근교 기자(Giza)의 피라미드 투톱, 쿠푸왕 및 그 아들 카프레왕 능 앞에 우뚝 서 있는 호루스의 상징물을 이방인들이 가장 악질적인 괴물납치범 ‘스핑크스’로 반전 격하시킨 것이다. 또 사나운 묘지기로 평가절하했다. 안타깝게도 이 비속적 호칭 ‘스핑크스’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도 있다. 왜곡의 비속어 ‘안압지’가 사라지고 ‘동굴월지’가 범용화되었듯, 이집트인들도 스핑크스 이름 바꾸기에 나서야할 것 같다.

‘호르 엠 아케르’와 피라미드는 신종 코로나 무풍(無風)지대인 이집트의 대표 유산이다. 인근 메리어트 메나하우스 카이로 호텔은 다른 가게 손님이라도 피라미드 구경을 편하게 하라고 짐을 공짜로 맡아준다. 이 호텔 건너편엔 올 10월 완공될 고고학박물관 신관이 우람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미 시내 고가차도를 달릴 때 공사중인 건물 위로, 가옥과 야자수들 사이로 피라미드가 나타났다 사라지곤했다. 4500년전 사막위에 과학적이고 정교하게 세운 이 거대 유적에서 경외심마저 느껴진다.

그런데, 다가갈수록 위엄 보다는 잘 정비된 우리 고향집 뒤 돌산 같은 친근함이 느껴진다. 잘 쌓아놓은 큰 돌 계단 위에 걸터앉아 재잘거리는 사람이 많다. 커다란 정방형의 바위 위에 앉아 아무리 셀카를 찍어봐야, 그 경외스럽던 피라미드는 없다.
다가갈수록 동네 바위산 같은 피라미드

다가갈수록 동네 바위산 같은 피라미드


멀리서 혹은 창공에서 내려보면 “4500년전에 이게 가능하기나 한가”라는 놀라움을 선사하고, 무덤 가까이에 와서는 지구촌 여행자들이 놀이터로 여기는 2020년 이 풍경을 아마 쿠푸왕도 즐기고 있을 것 같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가까워지는 당신이랄까. 놀라움을 잊고 즐거움을 채우는 곳. ‘만져보는 피라미드’의 현실적 느낌이었다.


쿠푸왕 피라미드에서 남동쪽으로 300m, 카프레왕 것에서 정동향 400m 지점에 있는 ‘호르 엠 아케르’ 역시 좋은 놀이터이다. 지구촌 여행자들은 앵글맞추기를 통해, 높이 20m이고 몸길이 70m인 이 석상과 뽀뽀도 하고, 안경 씌우기도 하며, 호루스의 분신이자 태양신의 머리를 쓰다듬기도 한다.

대피라미드에서 남서쪽으로 1㎞가량 가면, 6개 피라미드를 한눈에 볼수 있는 파노라마 전망대를 만난다. 잔망한 즐거움은 여기서도 계속된다. 쿠푸 할아버지-카프레 아버지능 그룹과 멘카우라 손자능-대비-왕비능 그룹 간 간격이 벌어지자 그 사이에서 여행자들은 온갖 몸 개인기를 펼친다.

6개 피라미드군을 둘러보는데 약 3시간 정도 걸린다. 여러 피라미드가 겹쳐서 나오도록 하려면 왕비능 뒤에서 촬영해야 한다. 편리한 탐방을 위해 1만2000원 수준으로 흥정 잘 해서 낙타를 타면, 몸 지지대가 없으니 조심해야 한다.
호루스 상징 석상에 안경씌우기

호루스 상징 석상에 안경씌우기


사실 첫 피라미드는 쿠푸왕 3대의 피라미드 보다 100년 가량 앞선 시점, 기자에서 20㎞ 남동쪽 사카라에 세워진 계단식이다. 중앙집권 체제를 완비한 조세르 왕이 기원전 2650년 무렵 네모난 집채 모양의 마스터바 묘지를 여섯 단에 걸쳐서 쌓은 모양새로 지었다. 이 피라미드 경내에는 ‘나는 아직 젊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왕이 직접 쾌속 달리기 등을 벌이는 ‘세드축제’ 운동장도 마련돼 있다. 숱한 이집트 신전 부조엔 왕이 다리를 쩍 벌린 모습이 있는데, 이는 강건함을 과시하는 상징이다.


많은 사서와 사전은 자연석을 있는 위치 그대로 조각한 ‘호르 엠 아케르’가 최초 피라미드인 조세르왕의 계단식 피라미드와 비슷한 시기에 완성됐다고 기록한다. 서쪽 웰다잉의 땅 입구에 서서, 정동방을 바라보는 사람얼굴(지혜)-사자의 몸(용맹) 석상은 동쪽 웰빙의 땅에 사는 백성들에겐 희망이다. 그는 나라의 대표 신으로서 60기에 이르는 왕족과 귀족 피라미드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테베(룩소르)의 돌산에 살면서 “아침 네 다리, 낮 두 다리, 밤 세 다리”라는 스핑크스 수수께끼를 낸뒤 틀리면 잡아먹었다는 얘기, 이집트 신화를 온갖 외설로 가득 채운 것, 맑기만한 나일강을 그리스인들이 ‘탁하게 흐른다’는 뜻으로 ‘닐루스(Nilus)’라 표현해 강이름의 어원이 된 점 등도 외세의 이집트 문명 평가절하, 왜곡의 산물로 추정된다.

높이 147m였다가 풍화작용으로 137m가 된 대피라미드 네 밑변의 합은 1년 일수와 같은 365인치이고, 높이는 지구-태양 간 거리의 10억분의 1인데, 양력을 사용한 이집트인들이 이것까지 미리 계산했다면, 대단하다.

카프레 피라미드의 남쪽 연장선은 동쪽에 있는 ‘호르 엠 아케르’(스핑크스) 옆면과 일치한다. 이 피라미드는 호루스 상징 석상을 피해 이례적으로 북쪽에 입구를 만들었다. 낮이 가장 긴 하지에는 ‘호르 엠 아케르’를 지난 태양이 ‘빅2’ 피라미드 사이 정중앙을 통과하며 진다. ‘지평선의 호루스’라는 명칭은 나홀로 사막 위에 우뚝 서 있던 기간이 꽤 길었음을 내포한다. 함영훈 여행선임기자

- Copyrights ⓒ 헤럴드경제 & heraldbiz.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