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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이슈 총선 이모저모

'여성의당' 탄생한다…"페미니즘 물결 이후 첫 총선, 국회 얼굴 바꾸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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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여성의당’ 창당주비위원인 이진옥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 /강윤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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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은 거리에 나갔고 국민청원도 해봤어요. 이젠 입법자가 돼 목소리를 내보려고 합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굉장히 중요한 도전이라고 생각해요.” ‘여성의당’ 창당주비위원인 이진옥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4월 총선에서 여성을 정치주체로 등장시킬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이번 총선에서 여성을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남성에 예속된 존재가 아니라 동등한 시민주체로 끌어올리겠다는 취지의 말이다.

이 대표는 9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여러 여성들이 독거노인으로 가난하게 죽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이야기했다. 여성들의 노동 조건도 ‘답이 없다’며 생존 자체가 투쟁이라고 여긴다. 여성들이 그동안 목소리를 냈지만 한계가 뚜렷했다”며 창당 배경을 설명했다.

이 대표는 문재인 정부와 정치권이 성소수자 문제와 페미니즘 문제를 두고 소극적이었다고 본다. 이 대표는 “반 성소수자, 반 페미니스트 분위기 속에서 정부와 정치권은 성평등 문제에 대해 ‘무대응’ 전략을 펼쳤다. 수적으로 17%인 여성 의원들이 각 정당 당론에 구속돼 여성 의제를 대변하기 힘들었다”고도 했다.

이 대표는 한번도 정당에 가입해본 적이 없다. 그를 대변해줄 마땅한 정치 집단을 찾지 못했다. 창당에 뛰어든 여성들 대다수도 마찬가지다. 대의 부재라는 절박함이 평범한 여성들을 창당으로 이끌었다. 이 대표는 “페미니스트 물결 이후 처음 치르는 이번 총선에서 여성 주권자의 몫을 실현하겠다”고 했다.

(관련 기사-‘여성의당’ 창당 워크숍 “할당제라는 제도적 장치 대신, 여성 대표성 높일 새 방법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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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당’ 창당주비위원회 기획단이 8일 오전 서울 동작구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워크숍을 열고 있다. 김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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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표는 강연장에서 만난 여성들에게서 ‘빈곤과 슬픔의 얼굴’을 보았다. 영국 유학시절 탄광촌 빈민층에게서 봤던 얼굴이었다. 그가 지난해 말 만난 한 여성 디자이너는 어머니와 둘이 산다. 청소부인 어머니는 최저임금보다 10% 덜 받는 조건으로 고용주와 이면 계약을 맺었다. 이 여성은 이 대표에게 “어머니와 매일 일을 하는데 돈은 모이지 않고 집도 없다. 나는 기껏해야 앞으로 15년 더 일할 수 있다. 그 이후엔 어머니처럼 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현장에서 만난 많은 여성이 이 대표에게 생존 자체가 힘들다고 호소했다. 이들 문제는 성차별적 고용·노동 구조와 이성애 가족 중심의 주거·복지 정책에서 비롯된다. 이 대표는 여성들의 절박함을 보며 여성을 위한 정치 세력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했다.

창당주비위는 오는 3월 창당대회를 개최한다. 여성의당이 창당되면 1945년 창당된 ‘대한여자국민당’ 이후 처음 나오는 여성 정당이다.

아래는 일문일답.

- 창당 필요성을 느낀 계기는.

“제 강의를 두번이나 대구에서 서울까지 들으러 온 래디컬 페미니스트가 있었다. 제가 화답을 하겠다는 마음에 지난 1월 대구로 가 강의를 했다. 상당히 긴장했다.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을 상대로 강의해본 적이 없었다. 저도 그들이 말하는 ‘꿘충’(운동권 출신을 뜻하는 은어)이자 ‘쓰까’(성소수자에 우호적인 페미니스트나 리버럴 페미니즘을 뜻하는 은어)이지 않나. 오전부터 밤 늦게까지 강연하는데 자리를 뜨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절박함과 무엇이라도 하겠다는 의지를 봤다. 빈곤의 얼굴도 많이 봤다. 페미니스트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경제적 문제라고 생각한다. 여성들은 주택 정책만 봐도 부부를 대상으로 하지 1인 여성(가구)에 대한 정책은 없다고 말한다. 국가로부터 버림 받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애를 안 낳고 결혼 안 하는 건 당연한 전제다. 여성들은 사실 다 해봤다. 거리에도 수만명이 나왔고 국민청원도 해봤다. 이젠 입법자가 돼서 대표 목소리를 내보자는 거다. 여성의당 창당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굉장히 중요한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 빈곤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지 않나.

“빈곤은 성별화된 얼굴을 가지고 있다. 여성들에겐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인 경우가 많다. 고용 자체가 불안정하다. 남성과 동일한 일을 해도 임금을 다르게 받는다. 채용에서도 차별받는다. 여성이 빈곤층 다수를 차지하는 구조다. 제가 만났던 여성들은 계속 생존할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노동과 복지는 보편적 의제이면서 여성 의제다. 보편성과 여성의 특수성이라는 이중주를 어떻게 구현할지가 과제다.”

-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제가 개편된 게 영향을 미쳤나.

“여성 대표성 신장 측면에서 볼 때 여성 의원 수가 중요하다. 그런데 이번 선거제 개편은 여성이 수적으로 늘어날 수 없는 구조다. 비례대표 의석 자체가 고정돼 있고 나머지가 연동형이다. 더불어민주당만 해도 비례대표 의석이 줄어든다. 예전엔 여성운동권 출신이 정치권에 들어갔다면 이제는 통로조차 막힌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데 여성의당 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대신 이 선거제는 군소정당의 원내 진입이 유리하다. 이번에 3%만 표를 얻어도 4~5석을 얻을 수 있다. 예전엔 정말 노력해서 의석을 얻어도 1석이다. 1석으론 할 수 있는 게 없다. 원내 진입했을 때 효과가 커진다는 것에 잠재적 기대를 건다.”

- 현재 정치권에서 여성들의 목소리가 충분히 대변된다고 보나.

“문재인 대통령이 보수정권에서 후퇴했던 여성 인권을 신장하는 데 기여를 많이 했다고 본다. 강경화, 피우진, 김현미 등 여성들을 많이 기용했다. 하지만 동성애에 대한 반발과 20대 남성의 반 페미니스트 정체성 등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백래시(반발)가 생긴 데 대응을 잘 못했다. 정부와 정치권도 성평등과 관련해 정치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전략을 펼친다. 17% 밖에 되지 않는 적은 수의 여성 의원들은 당론에 구속돼 여성 의제를 대변하지 못한다.”

- 남성도 참여가 가능한가.

“ 정당이니 헌법적 가치를 지켜야 한다. 여성의당 강령에 동의하는 남성이라면 가입할 수 있다. 헌법적 가치를 새롭게 하고 새로운 사회 계약을 쓰는 게 목표다. 여성이 성적으로 예속돼 있는 게 아니라 동등한 시민주체로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타협하고 협상하려고 한다.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은 다른 여성 의원들과 초당적 협력을 이끌어 내는 거다. 여성 의원들이 당론에 구속되는 게 아니라 개별적으로 여성 의제를 이야기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거다. 정당의 내용을 어떻게 같이 채워갈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다. 정당 안에서 굉장히 다양한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다. 의견을 모으는 작업이 필요하고 이 자체가 정치적 도전이 될 것 같다.”

- 여성이 많아진다고 여성 목소리가 반영될까.

“기성 여성 의원들은 당론을 먼저 따라야 한다. 숙명 같은 문제다. 여성 의원들은 ‘인스턴트’ 식으로 소비돼 왔다. 그럼에도 여성 의원들은 여성 의제를 적극적으로 이야기한다. 관심도도 높은 편이다. 여성 의제를 풀려면 근본적인 것을 바꿔야 해 여성 의원들의 입법활동의 효과는 크게 드러나지 않고 다른 정치적 의제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여성 경력단절을 막으려면 노동구조, 기업문화, 복지체제 등 다 바꿔야 한다.”

- 최근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를 반대하는 여성들이 나왔다. 여성들의 요구와 입장이 사안에 따라 갈리는데.

“정책적 공통 의제를 핵심적으로 찾아가야 한다. 여성들의 노동권, 경제권, 주거권 등 공통 현안을 정책 의제로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얘기다. 정치에서 중요한 건 다양한 차이 가운데 균형점을 찾아내는 거다. 이를 위해 여성들 간 대화의 장을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한다. 여성계 내부가 분열됐다. 혜화역 시위에 나왔던 그 수십만명의 여성들의 목소리가 정치적으로 대변될 수 있는 제도적 공간이 없다. 트랜스젠더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내는 여성들이 가장 중요시 하는 현안은 여성 안전이다. 이들은 ‘텔레그램 N번방’에서 여성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여성 단체, 언론이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이들의 피해 서사는 단순히 과대망상이 아니라 많은 성폭력 사건들이 있었지만 경찰·검찰도, 국회도 반응하지 않았다는 데서 나왔다. 제가 이야기를 들었던 여성들은 래디컬 페미니스트가 아닌 이들도 있었다. 온몸으로 저항하는 여성의 목소리를 어떻게 시민의 요구 주장으로 만들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이들을 낙인 찍기보다 제도적인 언어를 갖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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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21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한국여성연합 등 여성단체 회원들이 ‘버닝썬 관련 공권력 유착 진상규명과 엄중 처벌’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갖고 있다. /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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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색당, 정의당 등 소위 소수자를 대변하는 정당 내부에서 폭력이 일어났다. 이에 대한 대책이 있나.

“8일 1차 워크숍에서 모든 참가자들이 똑같은 발언 시간과 기회를 가졌다. 많은 20대 여성들은 ‘저는 할 줄 아는 게 없고 부족하다’고 하지만 동시에 엄청난 재능과 다양한 기술들을 창당 과정에 함께 나누겠다고 나서고 있다. 그간 자신의 존재감을 알린 적이 없던 여성들이 평등을 실천하고 사회적 자아를 확인받는 자리였을 거다. 체계도 위계적인 방식이 아니라 다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한다. 직책도 ‘방장’으로 정하는 것부터 10대부터 각 세대별 대표를 만드는 등 소통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 중이다. 여성당의 논의를 이끌었던 60~70대 1세대의 페미니스트들이 당내 갈등 해결에 중요한 존재다. 이들은 날 선 공방의 중재자로서 갈등을 숙의로 풀어가도록 지혜를 나눌 거다.”

- 해외에서 여성 정당 성공 사례가 있나.

“성공한 여성당은 없다. 이게 재밌는 부분이다. 해외에선 좌파정당이 어느 정도 여성 목소리를 대변한다. 스웨덴만 봐도 좌파정당의 여성 의원 비율은 절반 가까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당이 생겨도 많이 소멸했다. 한국은 다르다. 페미니즘 추동력이 큰 데도 여성 대변 정치 집단 자체가 없다. 투표장에 가겠다는 의지가 높지만 자신을 대표할 정당을 찾지 못하는 여성 유권자에게 여성의당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정치적 부동층 중에선 여성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의당은 해외와 달리 성공할 수 있다.”

- 그런 전망의 근거는.

“여성들의 정치적 잠재력에 대해 의미부여가 되지 못했다. 긍정적으로 본다. ‘2030’ 젊은 여성 투표율이 높아졌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20대 여성 유권자는 수도권에서 민주당 여성 의원들을 대거 당선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수도권 지역에서 여성의원 당선 확률이 남성보다 약 2배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 중요한 여성 현안은.

“여러 시급한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풀려면 성평등 국회, 국회의원 성별 동수제로 가야 한다. 양성평등기본법에 따르면 정부·지자체 위원회 위원 위촉시 한 성별이 다른 성별에 비해 60%를 넘지 않겠다고 돼 있지만, 정치권은 유독 그렇지 않다. 동수제가 중요한 건 여성과 남성이라는 기표(의미를 전달하는 외적 형식)를 비우게 된다는 거다. 여성들은 보수에서 진보까지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을 가질 수 있다. 수적 다수가 확보되면 성 정체성, 비혼, 지역, 이주민 등 다양성이 드러난다. 수적 다수를 확보해야 다양한 여성들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다. 기득권 남성 카르텔도 깰 수 있다.”

- 여성의당의 궁극적 목표는.

“21대 국회 얼굴이 바뀌는 것이다. 국회의원 성별 동수제부터 낙태죄 폐지, 강간죄 구성 요소 변경, 고용 성차별 시정 등 해야 할 일이 많다. 중요한 건 여성들이 정치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나간다는 데 있다. 그동안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남성이 모든 권력을 독점해왔다. 여성이 정치 권력을 가지려 해도 이미 만들어진 판 안에서 놀아야 하는 예속의 상황이었다. 여성 정치인들에게서 ‘내가 더러워서 못해먹겠다’는 얘기를 들었다. 여성 정치인들이 능력이 있고 많은 것을 이뤘어도 공천을 못 받는다는 거다. 페미니즘 물결 이후 처음 치르는 총선이다. 이제는 국가와 정치에서 여성 주권자의 몫을 실현해야 한다. 여성들의 절규가 받아들여져야만 대한민국은 대전환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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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당’ 창당주비위원회가 8일 오전 열리 워크숍에서 각자 여성 정책 의제를 제출한 뒤 분류하며 토론을 하고 있다. 김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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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라 기자 purp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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