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김용민 사태 제대로 대응 못 해"…반면교사로 삼은듯
이해찬 대표 면담으로 '최후통첩' 뒤 3시간 만에 공관위서 의결
이해찬 면담 마친 정봉주 |
(서울=연합뉴스) 서혜림 기자 = 더불어민주당 공천관리위원회가 9일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의혹'에 휩싸였던 정봉주 전 의원에게 예비후보 부적격 판정을 내리면서 4·15 총선을 앞두고 불거질 수 있는 또 하나의 '논란거리'를 차단했다.
특히 정 전 의원이 스스로 출마 의지를 꺾지 않자 공관위가 직접 칼을 빼 들어 읍참마속(泣斬馬謖)에 나섰다. 총선을 두 달 앞둔 상황에서 당에 불리한 이슈를 재빨리 솎아내야 한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정 전 의원에 대한 부적격 판정까지 민주당은 하루종일 긴박한 움직임을 보였다.
공관위는 오전 8시30분 회의를 열고 정 전 의원에 대한 예비후보 심사를 진행했으나, 결정을 재차 보류했다. 지난 6일 결정 보류에 이은 또 다른 결정 지연이었다.
이를 두고 당 일각에서는 정 전 의원에 대한 당내 의견이 팽팽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왔다. 하지만 당 지도부의 입장은 확고했다는 후문이다. 스스로 명예롭게 불출마 결단을 할 수 있도록 시간을 준 것이었다는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후 오후에는 이해찬 대표가 직접 나서기도 했다.
이 대표는 이날 오후 3시55분 국회 당 대표실에서 정 전 의원을 만났다.
다만 면담 뒤 정 전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총선 이야기는 안 나눴다. (출마를 접으라는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면서 자신에 대한 당 지도부의 '기류'를 부정했다.
그 뒤 면담 종료 뒤 3시간만에 공관위는 공지문을 통해 정 전 의원에 대한 부적격 판정을 공식화했다. 이 대표의 면담이 정 전 의원에게 스스로 결단할 마지막 기회를 준 최후통첩이었음이 확인된 셈이었다.
공관위의 이날 전격적인 결정은 정 전 의원을 둘러싼 논란의 '인화성'에 대한 우려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정 전 의원이 성추행 사건과 관련한 재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정 전 의원은 명예훼손·무고 등 혐의에 대한 재판 1심에서 지난해 10월 무죄 판결을 받고, 현재 2심에 계류 중이다.
특히 당 지도부는 1심의 무죄 판시와 달리 2심과 3심에서 재판부가 다른 판단을 내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을 우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판결이 뒤집힐 경우 당으로 불어닥칠 '후폭풍'까지 고려하면 정 전 의원의 출마를 허용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한다.
나아가 영입인재 2호였던 원종건 씨의 '미투 논란'으로 홍역을 치른 가운데 또다시 이런 논란에 휘말릴 경우 총선 국면에서 야당에 공격 '프레임'을 제공할 수 있다는 우려가 당 지도부 사이에 제기돼 왔다. 정 전 의원에게도 "국민의 눈높이와 상식에 부합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정 전 의원이 공개적으로 출마를 불사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도 공관위 결정의 촉매제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동안 당 지도부는 논란의 당사자가 스스로 결단하는 '모양새'를 통해 이른바 '인적 리스크'를 관리해왔다.
물밑으로 당내 기류와 사정을 충분히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 스스로 불출마를 결단토록 하는 방식을 취해온 것이다.
'부동산 투기 논란'에 휩싸였던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과 '세습 공천 논란'을 빚은 문희상 국회의장의 아들 문석균 씨가 이런 과정을 거쳐 불출마를 선언, '선당후사'하는 모습으로 거취를 정리했다.
하지만 이 대표와의 면담 뒤 정 전 의원의 반응을 보고, 당 지도부는 이런 선례에 따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최종 판단을 내렸다고 한다.
다만 정 전 의원을 지지하는 일부 당원들이 공관위의 결정에 대해 반발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실제 공관위 결정이 알려진 뒤 당원 게시판에는 "정 전 의원에게 경선의 기회를 달라", "정 전 의원이 부적격이라니, 당원의 소리가 안 들리나", "부적격이 말이 되나"라는 글들이 게재됐다.
이와 관련,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봉주가 감히 출마하겠다고 나선 것은 팬덤의 힘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2012년 총선 당시 나꼼수의 다른 멤버였던 김용민 씨의 '막말 파문'을 언급한 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민주당 지도부는 절대 후보 자격을 주고 싶지 않을 것"이라며 "정당과 팬덤의 관계, 결국 정리될 것이다. 정리하는 것이 민주당에도 좋고…"라고 썼다.
당 핵심 관계자는 통화에서 "일부 당원들의 반발을 각오하면서 그런 결정을 한 것"이라며 "8년 전 김용민 씨 사태 때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서 어떤 결과를 초래했나. 당원들을 달래는 방법은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 공천관리위원회 전체 회의 결과 브리핑 |
hrse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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