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구단비 인턴기자]
대학생 A씨(23)는 평소 즐겨보던 먹방(먹는 방송)을 검색하다 '식폭행'이라는 단어를 보고 당황스러웠다. 한두 명이 아닌 유튜버들이 먹방 영상에 '식폭행을 당했다' '식폭행 당한 썰'이라는 제목을 달아둔 것이다.
A씨는 "과식, 폭식했다고 표현할 수 있는 걸 왜 '식폭행'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건지 모르겠다"며 "성폭행이라는 기존 범죄 단어도 연상됐고 불쾌했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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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폭행, 성(姓)희롱, 암 걸리겠다 등의 표현들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을 줄 수 있다. 사진은 기사와 관계없음./사진=게티이미지뱅크 |
대학생 A씨(23)는 평소 즐겨보던 먹방(먹는 방송)을 검색하다 '식폭행'이라는 단어를 보고 당황스러웠다. 한두 명이 아닌 유튜버들이 먹방 영상에 '식폭행을 당했다' '식폭행 당한 썰'이라는 제목을 달아둔 것이다.
A씨는 "과식, 폭식했다고 표현할 수 있는 걸 왜 '식폭행'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건지 모르겠다"며 "성폭행이라는 기존 범죄 단어도 연상됐고 불쾌했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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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폭행', '성희롱'…성범죄 단어가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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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폭행이라는 단어는 음식을 아주 배부르게 먹는 행위를 표현할 때 주로 신조어다. 식폭행의 어원은 명확히 규정되지 않았지만 음식을 과하게 먹이면서 괴롭혔던 군대 문화인 '식고문'에서 유래된 단어라는 주장과 성폭행이라는 단어를 희화화하기 위해 생긴 단어라는 주장으로 의견이 나뉜다.
직장인 B씨(28)는 "식폭행이라는 단어가 '학교폭력' 등을 연상 시켜 자극적으로 느껴지긴 하지만 성폭행을 변형한 단어라고 해석하는 건 너무 과한 것 같다"며 "하지만 폭행이라는 뜻 자체가 부정적인 의미니 흔히 사용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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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폭행, 성(姓)희롱 등의 표현들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을 줄 수 있다. 사진은 기사와 관계없음./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식폭행이라는 단어는 음식을 아주 배부르게 먹는 행위를 표현할 때 주로 신조어다. 식폭행의 어원은 명확히 규정되지 않았지만 음식을 과하게 먹이면서 괴롭혔던 군대 문화인 '식고문'에서 유래된 단어라는 주장과 성폭행이라는 단어를 희화화하기 위해 생긴 단어라는 주장으로 의견이 나뉜다.
직장인 B씨(28)는 "식폭행이라는 단어가 '학교폭력' 등을 연상 시켜 자극적으로 느껴지긴 하지만 성폭행을 변형한 단어라고 해석하는 건 너무 과한 것 같다"며 "하지만 폭행이라는 뜻 자체가 부정적인 의미니 흔히 사용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직장인 C씨(27)도 "그냥 들어보면 가볍고 유쾌한 단어로 느껴져 적절한 사용은 분위기를 풀어주는 데 유용하다고 생각했다"며 "식폭행이 성폭행을 연상시킨다면 불쾌할 수 있겠지만, 특정인을 괴롭히거나 지목하는 괴롭힘이 아닌 '먹는다'는 행위를 언어유희적으로 표현한 장난같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에 A씨는 "식폭행은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입장이 다르겠지만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사용되는 '성(姓)희롱'이라는 단어가 문제가 있다는 건 모두가 동의할 것 같다"며 "이름 성을 잘못 부른 경우 성(性)희롱이 아닌 성(姓)희롱이라 부르며 '성희롱당했다'고 말하기도 한다"며 또 다른 문제를 제기했다.
예를 들어 홍길동이 타인에게 박길동으로 불렸을 때 "길동이 성희롱당했다"는 농담을 주고받는다는 것이다. 특히 이 표현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방송에서 성(姓)을 잘못 부르거나 성이 잘못 불린 연예인에게 '성희롱한, 성희롱당한 연예인'이라는 말로 사용되고 있었다.
문제는 이런 신조어들이 기존 성범죄에 대한 단어들을 희화화하고 경시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B씨 또한 "이름 성씨를 희롱한다는 성(姓)희롱은 처음 듣는 표현이지만 도가 좀 지나쳤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윤소 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미디어팀 활동가는 "엄연히 피해자가 있는 폭력, 성범죄 단어들을 이렇게 사용하는 건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미투 고백 당시에도 '빚투' 같은 신조어가 등장해 미투를 희화화하고 문제를 퇴색시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식폭행이나 성(姓)희롱 등의 단어들은 사용해선 안 되는 표현"이라며 "언론에서 기존의 범죄 단어 의미를 흐리는 표현을 다루는 것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는 것도 중요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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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어서 쓴 '암 걸릴 것 같다' '발암' 표현…환자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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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하는 표현 대신 사용하는 '암 걸리겠다', 우유부단하다는 표현 대신 사용하는 '선택장애' 등이 누군가에겐 상처를 줄 수 있다. 사진은 기사와 관계없음./사진=게티이미지뱅크 |
가족 중 암 환자가 있는 주부 D씨(48)는 "성범죄를 가볍게 여기는 것도 문제지만 질병을 쉽게 생각하는 유행어들도 많이 들어봤다"며 "자녀 또래 사이에선 '발암주의'라는 표현이 답답한 경우에 사용되는 것 같던데, 환우와 가족들에겐 상처가 되는 말이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발암주의라는 말처럼 '발암' '암 걸릴 것 같다' 등은 답답하고 어려운 상황 등에 처해있는 경우를 격하게 표현하는 데 사용되는 유행어이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 한 해 동안 새로 발생한 암 환자 수만 23만 2255명에 달한다. 흔히 국민 10명 중 3명은 암에 걸리는 것으로 조사되는 만큼 한국인의 흔한 사망요인인 암이 재밌는 표현으로 사용되는 건 부적절하다는 지적은 계속되고 있다.
암뿐만 아니라 장애를 비하하는 표현도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되고 있었다. "치킨을 먹을지 피자를 먹을지 모르겠다 #결정장애"라는 말처럼 결단이 내리기 어려운 경우를 '선택장애' '결정장애' 라고 부르는 것이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E씨(47)는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되는 표현들이 환자들의 측면에서 생각하면 조심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며 "체력적으로 힘든 환자들이 마음마저 아프지 않도록 배려해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환자들과 그의 가족을 울리는 표현들은 많았다. 문제의식을 가진 누리꾼들은 "'~장애'라는 말도 문제지만 '~하면 죽는 병이라도 걸렸냐' 등의 표현도 조심했으면 한다" "'정신병자, 병X, 정신병 걸렸냐, 정신병 걸리겠다' 등 장애를 비하하는 발언도 지양하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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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 입장 고려해야…그래도 세상은 나아지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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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는 이러한 표현들에 불편함을 표할 수 있는 것도 큰 변화인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은 기사와 관계없음./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신지영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는 말을 하는 이유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말을 하는 건 누군가에게 들리기 위해 하는 행동"이라며 "듣는 사람이 불편하고, 그 불편한 이유가 충분히 합리적이라면 말하는 사람이 듣는 사람의 불편함을 미리 생각해서 말하는 '언어 감수성'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예를 들어 '식폭행'이라는 단어를 쓰는 건 다른 사람의 주목을 받기 위해서인 것처럼 보이는데, 다른 사람의 귀를 쫑긋하게 되는 효과는 얻을 수 있겠다"며 "하지만 듣는 사람에게 불편함을 주고 상처를 남긴다면 내게 필요한 게 남들이 내 얘기를 잘 듣게 만드는 효과인지,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표현이 하나의 장난이자 유머코드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신 교수는 "우리가 많이 얘기하는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가 죽는다'는 말에서 돌을 맞은 개구리가 문제인지, 장난으로 돌을 던진 사람이 문제인지 생각해봐야 한다"며 "받는 사람이 장난이 아니라면 '장난이었다'는 말은 나의 입장일 뿐이자 성립되지 않는 변명이라는 걸 고려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신 교수는 "과거보다 현재 이러한 부정적인 표현들을 더 많이 쓴다고 말하긴 어려운 것 같다"며 "옛날에는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표현들이 거부감 없이 쓰고 수용됐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이젠 우리 사회가 불편한 것을 그냥 참는 것이 아닌 지적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며 "이러한 표현이 부정적인지 긍정적인지 논의되는 등 의견이 다양해지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사회적 수준이 높아졌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구단비 인턴기자 kdb@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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