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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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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민의 정치 인사이드]이제 중도 진보가 묻는다, 왜 부끄러움이 우리 몫이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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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총선의 ‘스윙보터’

경향신문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중도까지 가져와야 51%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며 보수통합을 강조하고, 더불어민주당은 ‘검찰 총선’이라는 위기 요인에 적극 대응에 나서고 있는 모양새다. 4·15 총선은 진영 논리로부터 자유로운 ‘합리적’ 중도가 승패를 결정할 것으로 전망된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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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법과 제도로 권력의 사유화를 통제할 수 있다는 희망의 신호였지만 3년이 흐른 지금 그건 헛된 희망이었다. 탄핵의 강을 건너다 대한민국호(號)가 좌초했다. 같은 배에 타고 있던 보수는 물에 빠져 생사의 기로에 서 있고 진보도 침몰 직전의 배에 겨우 매달려 있는 꼴이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탄핵 이후에 훨씬 나빠졌다. 대한민국은 공적 기능이 마비되는 치명적 병에 걸렸다. (선출직과 비선출직 가릴 것 없이) 공직자의 공적 책임감은 약해졌고 권력의 사유화는 심해졌다. 공직 윤리를 헌신 버리듯 버리고 ‘직’을 향해 돌진하는 위선적 공직자들의 궤변이 차고 넘친다.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하는 전염병이 사회 전체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정권을 잡은 것이 아니라 이권을 잡았다”는 조롱을 받았는데 ‘촛불정부’를 자처하는 문재인 정부도 ‘이권 공동체’라는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다. 탄핵과 적폐 수사로 법적·정치적·도덕적 기준을 높인 정권이 이제 와서 자신들의 잘못은 과거의 잣대로 재자고 우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군다나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를 상징하는 레토릭(rhetoric)이 ‘반칙과 특권이 없는 나라’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 아닌가. 추구하는 가치와 상대에 대한 엄격한 잣대가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윤석열 검찰총장을 임명하면서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같아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청와대든 정부든 집권여당이든 만에 하나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정말 엄정한 자세로 임해주시길 바란다. 그렇게 해야만 검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해서 국민들이 체감하게 되고 권력 부패도 막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윤 총장은 권력형 비리에 대해서 권력의 눈치도 보지 않고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자세로 아주 엄정하게 처리해서 국민들 희망을 받으셨는데 그런 자세를 앞으로도 끝까지 지켜주십사 하는 것”이라고 당부했다.

이어서 “우리 사회를 공정한 사회로 만드는 것을 시대적 사명으로 여겨주길 바란다. 반칙과 특권을 용납하지 않고 정의가 바로 서는 세상을 만들고…누구나 법 앞에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게 검찰의 사명”이라며 노무현과 문재인이 꿈꿔온 나라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헌법주의자’이자 검찰을 ‘개혁의 주체’로 보는 윤석열 총장은 (자기가 꿈꿔온 나라도 바로 그것이었기에) 대통령의 당부(?)에 충심이 생겼을 것이다.

대통령의 당부가 아니더라도 그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서슬 퍼런 박근혜 정권 첫해에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국정원법과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밀어붙이다 좌천당했고, 박영수 특검에서 ‘국정농단 의혹사건’을 수사했고,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적폐 수사’를 총지휘했던 윤석열 총장이 (인사에 대한 보은으로) 문재인 정권의 비리에 눈감는다면 검찰도 죽고 자신도 죽는다는 것을 모를 리가 있겠는가.

충돌은 불가피했다. 검찰을 ‘개혁의 대상’으로 보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이 시간을 당겼을 뿐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검찰총장은 상대가 딛고 서 있는 땅에 대해 서로 무지했다. 정치를 권력투쟁으로 보는 정치인 문재인과 법과 원칙으로 보는 검사 윤석열의 실존적 충돌이다. 권력에 대해 나이브했던 윤석열과 법과 원칙에 나이브했던 문재인의 착각과 오해가 걷잡을 수 없는 전쟁으로 몰아갔다.

권력투쟁이 정치의 본질임을 20대에 갈파한 (문재인 정부의 주축) ‘586’은 권력은 싸워서 쟁취하는 것임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에 즉각 ‘검찰 쿠데타’ ‘윤석열의 난’ ‘적폐 검찰’로 규정하고 총동원령을 내렸다. 훗날 이 결정이 (정권의 몰락을 가져온) 돌이킬 수 없는 전략적 패착으로 지목받을 가능성이 크다. 만약 청와대와 민주당이 (검찰의 정치적 의도가 의심되더라도) 검찰과의 전면전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한 ‘윤석열 검찰’은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업적이 되었을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원칙 있는 승리’가 가장 좋지만 그게 어렵다면 ‘원칙 있는 패배’가 ‘원칙 없는 승리’보다 낫다고 했다. ‘원칙 없는 패배’는 경멸했다. 문재인 정권과 윤석열 검찰의 살벌한 전쟁이 어느 쪽의 승리로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노무현이라면 (검찰의 수사를 받아들이는) ‘원칙 있는 패배’를 선택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재판 결과에 따라 원칙 있는 승리도 가능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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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년간 사실상 심리적 내전의 지옥…통합도 포용도 반성도 혁신도 없이 모두 “어느 편이냐”만 묻고 있어

탄핵 이후 훨씬 나빠진 한국의 민주주의. 공직자의 공적 책임감은 약해졌고 권력의 사유화는 심해져

조국사태와 청와대 검찰과의 전면전에서 당내 ‘항의’ 목소리는 철저하게 짓밟힌 민주당도 ‘위험한 신호’

‘보수 동맹’이 중도 보수의 이탈로 무너졌듯이 ‘민주 동맹’도 중도 진보의 이탈로 붕괴할 수 있어

어느 정권이라도 지지자를 부끄럽게 만들면 안돼…중도의 분노에 답해야 한다. 총선 승패는 그들이 결정한다

청와대가 검찰과의 전면전을 선택한 순간 ‘원칙 없는 승리’와 ‘원칙 없는 패배’만 기다릴 뿐이다. ‘원칙 있는 승리’와 ‘원칙 있는 패배’는 검찰의 몫이 되었다. 중요한 것은 민심이다. 검찰에 승리한다고 민심을 얻는 건 아니다. 이기고도 뒤로 가고, 지고도 앞으로 가는 것이 정치다. 노무현은 지는 길을 택하면서 앞으로 간 정치인이다. 정치는 민심을 잃으면 모든 걸 잃은 것이다.

모든 정권이 레임덕이 오기 전까지는 ①우리는 올바른 길로 가고 있다 ②(위기의 조짐이 나타나도) 우리는 과거 정권과 다르다 ③우리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 콘크리트 지지층이 있다 ④정권을 보호해 줄 친위부대를 국회로 보내야 한다는 확신·자만·착각·오만에 빠져 있다가 레임덕에 빠진 뒤에는 모두가 “나는 이렇게 가면 안된다고 계속 얘기했는데…”라며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는다. “내가 잘못 판단했어요. 내 책임이 크죠”라고 말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권력이든 술이든 취하면 판단이 흐려진다.

정치의 권력투쟁적 속성은 수천년 동안 변하지 않은 본질이지만 현대 민주주의는 법과 제도로 권력투쟁의 잔인함을 제어하고 있다. 상대를 ‘죽일’ 적으로 보지 않고 ‘이길’ 경쟁자로 보는 것이 민주주의다. 피를 흘리지 않고 살아 있는 권력을 평화적으로 끌어내린 탄핵은 한국 민주주의의 찬란한 순간이었지만 그것이 (짧은 천국 이후 긴 지옥으로 들어가는)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임을 그때는 몰랐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제도를 만들어낸 미국에서 탄핵된 대통령이 한 명도 없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탄핵 가능성이 가장 컸던 닉슨 대통령은 하원 표결 절차 전에 사임함으로써 공동체의 분열을 최소화했다.

우리는 탄핵 이후 사실상 내전 상태다. 국민과 시민이 광장에서 충돌하고 있다. 국회는 말할 것도 없고 사법부와 행정부도 갈라졌다. 언론도 갈라졌다. 친구도 가족도 갈라졌다. 탄핵을 한 쪽은 ‘통합’과 ‘포용’이 없었고, 탄핵을 당한 쪽은 ‘반성’과 ‘혁신’이 없었다. 모두 “너는 어느 편이냐?”만 묻고 있다. 이제 이 나라는 ①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에게 분노하는 사람 ②아직도 자유한국당을 지지하는 사람을 경멸하는 사람 ③두 세력이 이렇게 많은 현실에 절망하는 사람으로 갈라졌다.

탄핵 이후 우리가 기대한 것은 (대기번호표와 같은) 공정하고 예측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법과 제도의 개혁이었으나 결과는 불공정과 불확실이 지배하는 나라가 되었다. 미셀 투르니에는 <외면 일기>에서 “시간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이라고 썼지만 우리는 ‘진영 논리는 모든 것을 파괴한다. 우리가 신뢰했던 모든 것을. 우리가 믿었던 사람들을…’이라고 쓰는 현실이 슬프다. 대한민국은 법원 판결과 검찰 수사에 승복하지 않고 언론 보도도 믿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 권위가 사라진 공간에 의심과 음모가 자리 잡았다.

4·15 총선은 지난 3년간 심리적 내전의 지옥을 경험한 국민이 견딜 수 없는 광기의 시대를 끝내는 선택을 할지 아니면 팽팽한 대치 국면을 유지하는 선택을 할지를 결정하는 선거다. 여기서 국민은 중도라 부르는 ‘스윙보터’를 말한다. 어떤 경우에도 지지를 변경하지 않는 ‘극단적’ 지지층이 선거 결과를 바꾸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지지해 온 정당이 실망스러운 행태를 보일 때 언제든 이탈할 수 있는 ‘합리적’ 중도가 결과를 바꾼다. 결국 이번 총선은 진영 논리로부터 자유로운 세 번째 그룹이 승패를 결정할 것이다.

앨버트 허시먼은 <이탈, 항의, 충성(Exit, Voice, and Loyalty)>에서 조직(혹은 기업의 서비스)에 문제가 생겼을 때 조직원(혹은 소비자)이 보이는 반응을 세 가지로 제시했다. 첫 번째는 불만을 제기하지 않고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기다리는 ‘충성’. 정당에서는 고정 지지자다. 두 번째는 조직의 변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는 ‘항의’. 정당 내에서 변화와 혁신을 주장하는 개혁파다. 세 번째는 조직에서 희망을 발견하지 못하고 떠나는 ‘이탈’. 정당에 실망하면 언제든 지지를 철회할 수 있는 중도 ‘스윙보터’다.

민주당은 오랫동안 한국의 주류였던 보수가 비주류로 몰락한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1990년 3당 합당 이후 보수정당 안에서는 자유주의 세력과 보수 세력이 ‘개혁’과 ‘보수’로 충돌하면서 만들어낸 다양성이 당을 강하게 만들었고 승리를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김영삼 이후 이회창·이명박·박근혜를 거치면서 보수정당 주도권이 자유주의 세력에서 보수 세력으로 넘어가면서 보수는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특히 박근혜 정권은 다른 목소리를 허용하지 않고 한목소리로 충성을 보이라고 몰아붙이더니 급기야 국정교과서라는 자폐적 광기로 치닫고 말았다. 그때 보수는 끝났다.

2016년 총선 공천 파동을 보면서 절망한 중도보수는 더 이상 당내에서의 ‘항의’가 무의미하다고 판단하고 ‘이탈’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이탈로 총선에서 패배하고도 보수정당은 혁신을 외면하다 ‘최순실사태’로 완전히 몰락했다. 탄핵 찬성 여론이 80%를 넘었다는 것은 보수정당을 지지하고 박근혜를 찍었던 중도보수의 배신감과 분노를 보여준다. 이들은 박근혜를 찍었다는 부끄러움과 자괴감이 뒤엉켜 좀처럼 화가 풀리지 않는다. 만약 (지금 추진 중인) ‘통합 보수 신당’이 탄핵을 부정하는 목소리를 통제하지 못하면 떠난 중도보수가 돌아가는 데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돌아가기를 주저한다면 총선 승리는 어렵다.

과거 보수정당은 선거에 이기기 위해 항상 담대한 변화와 혁신을 했다. 그러나 2016년 총선부터 보수정당의 변화와 혁신은 완전히 사라졌다. 앨버트 허시먼은 ‘이탈’은 기존 조직의 비효율성과 문제를 개선하지 못하고 온존시킨다고 봤다. 남아서 ‘항의’할 목소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이 딱 그 모습이다.

민주당도 지난 3년간 당내 이견을 거의 허용하지 않았다. 박근혜 정권의 새누리당보다 훨씬 경직되었다. 위험한 신호다. ‘조국사태’와 검찰과의 전면전 국면에서도 ‘항의’의 목소리는 철저하게 짓밟혔다. ‘보수 동맹’이 (탄핵 국면에서) 중도 보수의 이탈로 무너졌듯이 ‘민주 동맹’도 (조국 국면에서) 중도 진보의 이탈로 붕괴할 것이다.

(선거에 이기기에 충분한) 콘크리트 지지층은 없다. 박근혜 정권도 절대 무너지지 않는 콘크리트 지지층이 있다고 확신했지만 그런 지지층은 없다는 것을 다 보지 않았는가? 설사 그런 지지층이 있다고 해도 생각보다는 훨씬 적다.

어느 정권, 어느 정당, 어느 정치인도 지지자를 부끄럽게 만들면 안된다. 탄핵 국면에서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를 찍은) 중도 보수가 “왜 부끄러움이 우리 몫이어야 하는가?”를 분노의 목소리로 물었듯이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을 찍은) 중도 진보도 똑같이 묻고 있다. “왜 부끄러움이 우리 몫이어야 하는가?” 이 분노에 진지하게 답하지 않으면 이들은 이탈할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이탈은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의 지지율을 빠른 속도로 끌어내릴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총선 승패는 중도가 결정한다.

▶필자 박성민

경향신문

1991년 설립한 정치컨설팅그룹 ‘민’의 대표이자, 한국의 대표적인 정치컨설턴트다. 30년 이상 선거를 치르면서 익힌 감각과 예리하고 독창적인 시각을 평가받고 있다. 정치게임에서 승리하는 법칙을 담은 <강한 것이 옳은 것을 이긴다> <정치의 몰락> 등을 썼다.


박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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