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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성상환 다문화교육학회장 "다문화, '인구절벽' 우리나라엔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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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광로도 샐러드볼도 넘어서야"…"출발선 다른데 똑같이 경쟁하면 불공정"

18년간 獨·美서 이주민으로 살아…"교육 현장과 연계한 연구 강화하겠다"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올 1월 한국다문화교육학회장에 취임한 성상환 서울대 교수가 연합뉴스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세계사를 보면 인류의 이동이 변화와 혁신을 가져왔습니다. 15∼16세기 대항해시대를 연 탐험가들은 요즘으로 치면 달나라를 여행한 우주비행사에 견줄 수 있죠. 110여 년 전 이민선을 타고 태평양을 건넌 사탕수수밭 노동자나 1960년대 서독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광산근로자들도 시대를 개척한 선구자이고, 우리나라를 택한 동남아 출신 결혼이주여성이나 이주노동자들도 진취적 생각과 도전정신을 지녔습니다. 우리 동포들이 선진국에서 앞선 시스템의 지원 덕에 정착할 수 있었듯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민자들도 능력을 적극적으로 발휘하도록 길을 열어줘야죠"

성상환(57) 서울대 독어교육학과 교수는 지난해 5월 한국다문화교육학회 정기총회에서 차기 학회장으로 뽑혀 올 1월 2년 임기를 시작했다. 30일 서울대 사범대학 건물에서 만난 그는 "다문화 현상은 무역의존도가 높고 인구절벽(생산가능 인구가 급격히 줄어드는 현상)에 직면한 우리나라엔 소중한 기회인데 다문화가족을 시혜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인식이 문제"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내가 독일 본대학교 한국어과 교수로 있을 때 야간고를 다닌 광부 출신 중년 동포가 찾아와 대학에 가고 싶다며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아비투어(대입 자격시험) 외국어 과목에 한국어가 없었지만 쾰른시 교육청은 본대 한국어과와 협조해 읽고 쓰는 능력 등을 평가한 뒤 입학을 허가했죠. 우리나라에선 수학능력시험 제2외국어에 채택되지 않은 외국어는 아무리 잘해도 대학 갈 때 보탬이 되지 않습니다. 독일은 고등학교에서도 이주배경을 지닌 학생이 소수 언어를 익힐 수 있도록 배려합니다. 학교에 과목이 개설돼 있지 않으면 다른 학교에서 수업받고 와도 인정해주죠. 우리나라도 다양성을 키워주고 이중언어 인재를 기르는 독일의 사례를 배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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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년간 한국다문화교육학회장을 맡은 서울대 사회교육과 모경환 교수(왼쪽)가 신임 학회장 성상환 교수에게 임명장을 전달하고 있다. [한국다문화교육학회 제공]



성 교수는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독어교육학과에 진학하며 국내 이주를 경험했다. 학부 재학 시절 손봉호 사회교육과 교수의 강의를 들으며 비교언어학에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1986년 독일로 건너간 뒤 이듬해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로 옮겨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8년부터 7년간 독일 본대에 재직하다가 2006년 8월 모교 교수로 부임했다.

"취업비자를 받아 독일에 체류할 때는 서너 살밖에 안 된 연년생 자녀가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습니다. 친구들과 말이 통하지 않으니 유치원에 가지 않으려고 하더군요. 저녁마다 잠들기 전 침대에서 내가 아이들에게 독일 성경책을 1년간 읽어준 게 도움이 많이 됐죠. 아내는 한국에서 동화책을 공수받아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고요. 아이들은 역시 스펀지처럼 잘 받아들이더군요. 교육의 힘을 실감했습니다"

초등학교에 올라가서도 자녀들은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등 어려움은 계속됐다고 한다. 성 교수는 아이들 생일 때 학급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파티를 열어주는가 하면 학교에도 자주 나가 봉사활동에 적극 참여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수학여행을 못 가는 학생이 있다는 담임교사의 말을 듣고 몇몇 학부모와 의논해 몰래 도와주기도 했다. 이런 노력 끝에 학부모 대표까지 맡았다.

그는 독일 거주 시절 국사편찬위원회 구술자료 수집작업에도 참여했다. 광부와 간호사·간호조무사로 파견된 독일 동포들의 가정을 방문해 이민 후 정착과정에 관한 생생한 증언을 듣고 유형별로 분석했다. 요즘에는 구동독 시절의 정치·외교문서가 뒤늦게 공개된 것을 계기로 남북한과 동서독 교류·지원 역사를 더듬어보는 단행본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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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성상환 한국다문화교육학회장이 독일과 미국에서의 이주민 경험을 털어놓고 있다.



이주민으로 살며 자녀를 키운 경험은 성 교수가 다문화교육에 관심을 품는 계기가 됐다. 비교언어학과 독어교수법을 전공하며 쌓은 지식과 독일 동포들의 초기 이민사 연구 경력도 큰 보탬이 됐다.

그가 18년간의 이주민 생활을 접고 모국으로 귀환했을 때는 우리나라에도 중국과 동남아 출신 이주민들이 몰려오던 시기였다. 정부도 2006년 다문화가족 사회통합정책에 나선 데 이어 2008년 다문화가족지원법이 발효됐다. 서울대는 2007년 다문화교육연구센터를 설치했고 그해 7월 교육부로부터 중앙다문화교육센터로 지정받았다. 한국다문화교육학회도 2008년 3월 출범했다.

성 교수는 2009년 중앙다문화교육센터 부소장을 거쳐 2010년부터 2년간 소장을 맡았다. 2010년부터 4년간 한국-유럽연합(EU) 다문화·글로벌 교육사업단장도 지냈다. 서울시 다문화가족지원협의회 위원, 국무총리실 다문화가족정책위원, 여성가족부 정책자문위원·자체평가위원 등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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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다문화교육학회가 2019년 5월 24일 서울대에서 개최한 국제학술대회에서 당시 조직위원장이자 한국다문화교육학회 부회장을 맡은 성상환 교수가 미국 워싱턴대의 제임스 뱅크스 교수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공정(equity)과 평등(equality)은 다릅니다. 출발선이 다른 이주민을 똑같이 경쟁시키는 것은 공정하지 않죠. 사회 인프라에 접근하기 힘든 사람에게 길을 열어주고 적응력이 떨어지는 사람이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도와야 공정한 사회를 이룰 수 있습니다. 다문화교육은 공정성, 다양성(diversity), 사회정의(social justice) 세 가지 가치를 추구합니다. 다문화교육은 이주민만을 위한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겁니다"

예전에 정부의 다문화사회 정책은 동화주의에 입각한 이민자 사회통합교육이 중심이었다. 용광로(Melting Pot)처럼 녹여서 하나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각자의 정체성을 인정하자는 취지로 갖가지 채소와 달걀 등을 함께 그릇에 담아 양념에 버무린 샐러드볼(Salad Bowl)을 모델로 삼고 있다. 성 교수는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변혁을 가져오는 시민교육'을 지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여성가족부의 조사 결과를 보면 청소년의 다문화 수용성이 성인보다 높습니다. 다문화교육을 받은 경험이 많을수록, 이주민 접촉 빈도가 높을수록 수용성이 높죠. 성인들에게 다문화교육을 하기가 쉽지 않은 만큼 지역사회에서 이주민과 함께하는 문화·체육 활동을 개발하고 늘릴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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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성상환 한국다문화교육학회장이 "언젠가는 다문화가족 자녀가 한국다문화교육학회장을 맡을 날이 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하고 있다.



성 교수는 우리나라 다문화교육 수준은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한국다문화교육학회 수준만큼은 매우 높다고 자랑했다. 1천500여 명에 이르는 회원 가운데는 학자뿐만 아니라 교사와 교육행정가도 있다.

해마다 5월에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는데, 20개국 학자가 참여해 80∼100편의 논문을 발표한다. 연간 4회씩 펴내는 국내 학술지(다문화교육연구)와 국제학술지(Multicultural Education Review·MER)도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과 국제적인 우수학술논문인용지수(SCOPUS)에 각각 등재됐다.

'다문화교육연구'는 2015년 KCI 등재지·등재후보지 가운데 피인용지수가 교육학 분야에서는 1위, 사회과학에서는 3위, 전체 6위에 랭크됐다. MER은 영국의 유명 출판사 루틀리지가 2015년부터 출판과 홍보 등을 맡아 세계적인 학술지 반열에 올랐다. 이에 따라 국내 학자들이 논문을 싣기 어려운 처지가 됐다고 한다.

"회장을 맡자마자 5월 21∼23일 열릴 국제학술대회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학술대회와 학술지 수준을 더욱 높이는 한편 교사들과 연계를 강화해 교육 현장의 수요에 부응한 연구에 집중하고 그 성과를 교육에 반영하는 데 힘쓰겠습니다. 유럽과 미주에서 다문화교육학계를 이끄는 학자 중에는 이주민 출신이 많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언젠가는 다문화가족 자녀가 다문화교육학회장을 맡을 날이 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hee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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