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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감찰’ 계기로 본 역대 검찰총장 수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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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감찰’ 계기로 본 역대 검찰총장 수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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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최강욱 기소는 날치기" / 설 연휴 후 윤석열 감찰 개시할 듯 / 채동욱, 국정원 댓글 수사 도중 사생활 의혹 불거져… 감찰 직전 사표 / 김익진, 이승만정권의 불기소 명령 어겼다가 총장→서울고검장 좌천

검찰이 비리 혐의를 받고 있는 최강욱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전격 기소한 것과 관련, 법무부가 ‘날치기 기소’라고 규정함에 따라 설 연휴(1월 24∼27일)가 끝나면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법무부 감찰관실의 감찰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전국 2500여명의 검사를 지휘하는 검찰총장이 감찰을 받는 대상이 된다는 것 자체가 전례를 찾기 힘든 초유의 상황이다.

일각에선 문재인정부 청와대와 추미애 법무장관이 윤 총장을 향해 사실상 ‘불신임’을 표명한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이미 지난 8일과 23일 두 차례 단행된 인사에서 수족이 모두 잘려나가는 치명상을 입은 윤 총장의 향후 대응에 시선이 집중되는 가운데 역대 검찰총장과 정권의 갈등, 그로 인한 총장들의 수난사에도 이목이 쏠린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23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구내식당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23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구내식당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권에 맞서자 검찰총장까지 탈탈 털어서 몰아내"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정권과 충돌했다가 결국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물러난 ‘비운의 총장’으로 단연 제39대 채동욱 검찰총장(2013년 4월∼9월)이 꼽힌다. 채 총장의 임기는 검찰이 2012년 대선 당시 국가정보원의 선거 개입 의혹을 수사하던 시기와 거의 정확히 겹친다.

국정원 직원들이 온라인 기사 등에 댓글을 달아 당시 박근혜 후보를 지원하고 문재인 후보를 비방했다는 것이 의혹의 핵심이었다. 채 총장은 취임 후 국정원 댓글 의혹을 수사할 특별수사팀을 꾸리고 여주지청장이던 ‘특수통’ 윤석열(현 검찰총장) 검사를 팀장에 임명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 세계일보 자료사진

채동욱 전 검찰총장. 세계일보 자료사진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고 국정원 간부들이 ‘타깃’이 되면서 박근혜 대통령은 “내가 댓글 때문에 대통령이 되었다는 말이냐”며 분노를 표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와중에 채 총장의 사생활을 둘러싼 불미스러운 의혹이 제기되자 법무부가 전격 감찰을 선언했다. 결국 채 총장은 감찰 방침 발표 직후 청와대에 사표를 제출, 즉각 수리됐다. 나중에 채 총장은 방송에 출연해 “이번(박근혜) 정권 들어와서는 검찰총장까지 탈탈 털어서 몰아냈다”고 말해 자신이 국정원 댓글 수사 때문에 ‘보복’을 당한 것이란 주장을 폈다.


제34대 김종빈 검찰총장(2005년 4월∼10월)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는 강정구 동국대 명예교수 구속을 둘러싸고 당시 노무현정부와 정면 충돌했다가 옷을 벗었다. 청와대와 법무부의 불구속 수사 요청을 뿌리치고 구속영장 청구 방침을 고집한 것이 발단이었다. 결국 법무부가 수사지휘권 발동 형식으로 불구속 수사를 명령하자 김 총장은 취임 6개월 만에 사의를 밝혔다.

◆대통령 말 안 들었다고… 총장→고검장 강등 사례도

제32대 김각영 검찰총장(2002년 11월∼2003년 3월)과 제25대 박종철 검찰총장(1993년 3월∼9월)은 수사 등을 놓고 정권과 구체적 갈등을 겪진 않았으나 단지 ‘코드’가 안 맞는다는 이유로 사실상 용퇴를 강요당한 경우다. 김대중 정부 시절 임명된 김각영 총장은 이듬해 노무현정부 출범 후 청와대가 검찰개혁 드라이브를 걸면서 “현 검찰 지휘부를 믿지 못하겠다”고 직격탄을 날리자 이를 불신임으로 간주, 즉각 물러나는 길을 택했다.


노태우정부 시절 검찰을 좌지우지한 TK(대구·경북) 인맥 출신인 박종철 총장 역시 김영삼정부 출범과 동시에 새롭게 득세하기 시작한 PK(부산·경남) 인맥이 ‘우리 사람을 검찰총장에 앉혀야 한다’는 논리를 들어 청와대를 설득하려는 낌새를 감지하고선 스스로 사표를 냈다.


제17대 허형구 검찰총장(1981년 3월∼12월)은 특정 사건을 정권 입맛에 맞지 않게 처리했다는 이유로 취임 9개월 만에 경질됐다. 전두환정권 초기 국민적 공분을 산 이른바 ‘저질연탄’ 사건이다. 서민들한테 질 낮은 연탄을 공급한 업자들을 대거 구속기소한 사안인데, 이 수사로 피해를 입은 업자가 친분이 있는 정권 실세를 동원해 “검찰의 무리한 수사로 경제가 나빠지고 서민들 부담이 되레 커졌다”는 논리를 펴며 ‘되치기’에 나섰다. 처음엔 검찰을 두둔했던 전두환정권은 이후 태도를 바꿔 검찰을 크게 나무란 뒤 총장을 교체해 버렸다.

제2대 김익진 검찰총장(1949년 6월∼1950년 6월)은 무고한 사람들을 붙잡아 고문, ‘빨갱이’로 몰아가려다 발각된 우익단체 ‘대한정치공작대’ 사건에서 관련자들을 기소하지 말라는 이승만 대통령 지시에 “현행법상 불기소 처분은 불가능하다”며 불응했다. 격노한 이 대통령은 김 총장을 검찰총장에서 서울고검장으로 한 단계 강등시키는 검찰사상 초유의 인사를 단행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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