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부·여당, 일제히 '남북협력' 견제한 해리스 비판
군인 출신으로 직설적 화법 즐겨 잦은 구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 |
(서울=연합뉴스) 이정진 기자 =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다시 한번 직설적인 화법으로 청와대와 정부, 여당의 반발을 사고 있다.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청와대까지 나서 "대단히 부적절"하다고 지적해 그렇지 않아도 한미 간 긴밀하게 소통해야 할 대표적인 이슈인 '대북정책'을 놓고 양측간 불협화음이 불거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해리스 대사는 지난 16일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개별관광 등 한국의 남북협력 추진 구상을 두고 "향후 제재를 촉발할 수 있는 오해를 피하려면 한미 워킹그룹을 통해서 다루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남북협력 사업 추진 시 미국과 먼저 협의하라는 것으로, 올해 들어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남북협력사업 추진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발언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외교가에서 대사가 주재국 정상의 발언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금기시돼 있다. 특히 그가 남북협력 사업이 본격화되기 전부터 '제재'를 언급한 것은 지나쳤다는 비판이 나왔다.
당장 청와대와 정부, 여당을 가리지 않고 비판이 쏟아졌다.
민주당의 송영길 의원은 "의견 표명은 좋지만, 우리가 대사가 한 말대로 따라 한다면 대사가 무슨 조선 총독인가"라고 말했고, 설훈 최고위원도 "내정간섭 같은 발언은 동맹 관계에도 도움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상민 통일부 대변인이 오전 브리핑에서 "해리스 대사의 발언에 대해 저희가 언급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면서도 "대북정책은 대한민국의 주권에 해당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고 밝혀 불쾌감을 드러냈다.
청와대 |
급기야 오후에 청와대 관계자가 기자들과 만나 "대사가 주재국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언론에 공개적으로 언급한 부분은 대단히 부적절하다"며 "남북협력 관련 부분은 우리 정부가 결정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청와대가 해리스 대사의 발언에 직접적으로 입장을 내놓은 것은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이 사안을 심각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해리스 대사는 전날 간담회에서 "한국은 주권국가이며 국익을 위해 최선으로 생각하는 것을 할 것"이라면서 미국이 한국의 결정을 승인하거나 승인하지 않을 위치에 있지 않다고 말한 부분도 있지만, 이는 부각되지 못했다.
해리스 대사는 이전에도 외교관에게는 어울리지 않은 직설적인 화법으로 여러 차례 입방아에 오른 적이 있다.
지난해 하반기에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국면이나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다룰 때도 한국의 언론과 국회 등을 상대로 미국의 입장을 강하게 대변했다.
국회 정보위원장인 바른미래당 이혜훈 의원은 지난해 11월 "해리스 대사가 관저로 불러 방위비 분담금 50억 달러를 내라는 요구만 20번 정도 반복했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외교가에서는 해리스 대사가 군인 출신으로 직설적인 화법을 즐기다 보니 불필요한 잡음이 불거지고 있다는 관측이 많다.
한 외교 소식통은 "해리스 대사와 만나서 얘기하다 보면 말을 돌리지 않고 정확하게 원하는 것을 말해 오히려 편할 때도 있다"면서 "다만 한국의 대중이 볼 때는 불친절하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대북정책은 과거 한미 간에 잦은 이견을 보였던 이슈로, 한국이 남북협력 사업의 적극적인 추진을 통해 북미대화를 견인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는 상황에서 언제라도 잡음이 불거질 가능성이 상존하다.
이런 민감한 시기에 해리스 대사의 신중치 못한 발언은 한미 간 불협화음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주한 미국 대사관 관계자는 "청와대 관계자의 발언을 알고 있으며 현시점에서 관련해 밝힐 입장은 없다"고 말했다.
transi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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