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5 (월)

이슈 '미투' 운동과 사회 이슈

"다시 미투운동의 원점에 섰다"…미투시민행동, 안태근 무죄판결한 대법원 규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미투운동과함께하는시민행동에 참여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안태근 전 검사장에 대한 대법원의 무죄 취지 판결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대법원 2부는 지난 9일 자신이 성추행한 서지현 검사에게 인사보복을 한 혐의로 기소돼 항소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안태근 전 검사장에 대해 상고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김정근 선임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시민단체가 안태근 전 검사장에 대한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대법원을 비판했다. 안 전 검사장은 서지현 검사를 성추행한 뒤 인사 보복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350여개 여성·노동·시민사회단체가 모인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미투시민행동)은 13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안태근 무죄 판결한 대법원 판결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은 성폭력 무마·은폐에 이용되어 온 수단이자 도구인 인사 불이익 조치에 대해 책임을 묻고 처벌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에 눈감았다”며 “법제도의 사각지대에서 악화되는 조직 내 성폭력에 대해 사법부는 제대로 보고 응답하라”고 밝혔다.

미투시민행동은 “2년 전 2018년 1월 말 한국사회는 대규모 미투운동의 시작을 맞이했고 그 첫번째 조직은 검찰이었다”며 “지난 1·2심에서 검찰 내 부당한 인사조치에 대한 상세한 심리를 거쳐 실형 2년을 선고한 건 (성희롱·성폭력) 사건들이 쌓이고 묵혀 온 현실에 대한 최소한의 응답이었다”고 했다. 이어 “대법원의 판결은 현실에서 일어나는 성폭력, 조직 내 성폭력 문제제기에 대한 인사상 불이익 조치를 통한 입막음 등을 들여다봐야하는 사법부의 책무를 이행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앞으로 그런 파악조차 필요없다는 선언과도 같다”고 했다.

이들은 대법원이 파기환송의 이유로 든 ‘재량’에 대해 비판했다. 대법원은 인사권 자체는 인사권자에게 있는 것이지만, 안 전 검사장이나 인사실무자인 신모 검사에게도 여러 인사기준과 고려사항을 종합해 작성할 ‘재량’이 있다고 봤다. 서 검사를 통영지청에 보낸 게 인사 재량의 범위를 벗어난다고 단정하긴 어렵다는 뜻이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재량이란 것은 온전히 홀로 존재할 수 없다”며 “대법원은 재량을 말하기 전에 재량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두루 살펴봤어야 했다”고 말했다. 송 사무처장은 “지금까지 반성폭력운동의 핵심은 잘못된 통념에 맞서 싸우는 것”이었다며 “소위 ‘객관적’, ‘중립적’이라는 기준이 얼마나 남성 중심적, 가해자 중심적인지 드러내고 비판해 온 역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는 “대법원의 판단근거가 무엇인지 되묻고 싶다”며 “피해자는 검찰 내 인사원칙에 부합하지 않는 방식으로 부처지청으로 전보 발령을 받았다. 피해자로 하여금 사직서를 제출케 할 정도의 가혹한 인사상의 불이익이었으며, 피고인이 정확히 의도한 것이었다”고 했다. 이어 “대법원의 무죄 판결은 해당 인사가 검찰 인사의 공정성을 훼손하고 인사 원칙과 기준에 명백히 반하는 인사라고 판단한 1·2심과 정면 배치된다”고 말했다.

대법원의 파기환송이 미투운동에 퇴행을 가져올 수 있단 점도 지적했다. 김수경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여성국장은 “이번 판례가 가져올 변화와 퇴행이 문제적”이라며 “성희롱 피해자에 대한 불이익 조치 금지 조항 등이 무력화되며 언제라도 인사권자의 재량은 불이익 처우를 가능케 하는 근거가 될 것”이라고 했다. 김 국장은 “무엇보다 큰 퇴행은 미투 운동으로 이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여성들에게 그만하라고, 우리 사회는 그 목소리를 듣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투시민행동은 “우리는 미투운동의 원점에 다시 서 있다”며 “미투운동을 일으킨 장벽을 다시 만났지만 성폭력은 이제 쉽게 할 수 없는 행위이고, 가해자는 처벌되고 피해자는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을 수 있는 사회를 향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안 전 검사장은 법무부 검찰국장이던 2015년 8월 수원지검 여주지청에서 근무하던 서 검사를 창원지검 통영지청으로 전보시키는 인사안을 부하직원인 인사 담당 신모 검사에게 작성하도록 한 혐의(직권남용)로 기소됐다. 1·2심 재판부는 안 전 검사장이 자신이 서 검사를 성추행했다는 소문이 검찰 내에서 돌자 서 검사에 대한 인사 불이익을 줬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지난 9일 안 전 검사장의 직권남용 혐의를 유죄로 보고 원심 판결을 파기해 사건을 무죄 취지로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 장도리 | 그림마당 보기

▶ 경향신문 최신기사

▶ 기사 제보하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