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로 울산 우승 재뿌린 김승규
힘들때 손내민 고향팀 다시 버려
대구는 조현우 유럽행 돕기 앞장
선수는 국내 팀과 사전접촉 의혹
김승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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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말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고,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짧은 기간에 팀을 떠나게 됐고, 어려운 상황에 떠나게 돼 마음이 무겁다.” 일본 프로축구 가시와 레이솔은 10일 “K리그 울산 현대 소속인 한국 축구대표팀 골키퍼 김승규(30)를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그 직후 울산 구단은 인터넷을 통해 김승규의 작별 인사 동영상을 공개했다. 굳은 표정으로 카메라 앞에 선 그는 연신 “죄송하다”고 말했다. 6개월 만에 도망치듯 팀을 떠나는 이유는 함구했다.
김승규는 지난해 7월 울산과 계약하고 K리그에 복귀했다. 계약 기간은 3년 6개월이었다. 직전까지 빗셀 고베(일본) 소속이었는데 외국인 쿼터 경쟁에서 밀려 좀처럼 뛰지 못했다. 우승에 도전 중이던 고향 팀 울산이 러브콜을 보내자 그는 흔쾌히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둘의 동행은 불과 반년 만에 끝났다. 올겨울 J1(일본 1부리그)으로 승격한 가시와가 ‘바이아웃(buy-out, 소속팀 동의 없이 선수와 직접 협상 가능한 이적료)’을 활용해 영입에 나섰다. 김승규는 영입 제안을 받아들였다.
울산 팬은 다시 일본으로 떠나는 김승규에게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그는 지난해 K리그 최종전 포항 스틸러스전(1-4 패)에서 결정적 실수로 실점했다. 거의 잡았던 우승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래도 팬은 그가 절치부심해 다음 시즌 우승 못 한 한을 풀어줄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일본 쪽에서 온 러브콜에 기다렸다는 듯 고향 팀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팬은 실망을 넘어 분노했다. 그에 관한 뉴스 댓글에는 ‘빤스 런(너무 급해서 팬티만 입은 채 도망친다는 뜻의 속어)’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조현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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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규와 한국 축구대표팀 주전 골키퍼 자리를 경쟁하는 조현우(29)의 이적 과정도 매끄럽지 못하다. 지난해 말 대구FC와 계약이 끝나 자유계약선수(FA)가 된 그는 지난달 23일부터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있다. 새해가 밝은 뒤 ‘조현우 울산행 확정’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선수 입장은 아직 아무것도 없다.
조현우는 이적 과정에서 전 소속팀 대구를 의도적으로 협상 테이블에서 배제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지난해 가을 당시 소속팀(대구) 허락을 얻어 유럽 진출을 모색했다. 뜻을 이루지 못하자, 협상 상대를 일본 J리그로, 이어 국내 다른 팀으로 바꿔나갔다. 그 과정에서 편의를 봐준 소속팀과는 연락을 끊었다.
대구 구단 관계자는 “K리그 역사에 ‘국가대표 골키퍼 유럽 진출’이라는 이정표를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조현우의 유럽행을) 전폭 지원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에이전트가 몰래 J리그 이적을 추진한다더라’라는 소문이 들려왔다. 진위를 묻자 에이전트가 이후 모든 연락을 끊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그의 이적 협상은 팀(울산·전북), 연봉(10억원대), 기간(3년) 같은 구체적 정보까지 축구계에 널리 퍼질 정도로 요란했다. FA 대상자는 계약 종료(지난해 12월31일)까지 원소속팀 이외의 팀과 접촉할 수 없다.
새 팀으로 이적하는(또는 이적할) 두 골키퍼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김승규는 바이아웃 조항을 활용해 이적했다. 조현우도 아직은 이적을 공식 발표하지 않은 상태다. ‘사전접촉’ 의혹이 짙지만, 선수나 구단이 ‘규정 위반’을 선선히 인정할 리 없다. 사실을 밝혀내기도 어렵다.
선수가 더 좋은 팀을 찾아 떠나는 건 좋은 일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리그와 팀, 팬을 존중하는 태도는 지켜야 한다. 이번 두 골키퍼에게서는 그런 태도가 보이지 않았다. 사과하기 전에, 원소속팀과 협상에서, 성의와 존중의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었을까. 세상은 생각보다 넓지 않다. 또 살다 보면 돌고 돌아 다시 만날 수도 있는 법이다. 세상에 좋은 만남보다 더 중요한 건 좋은 이별이다. 더구나 그 당사자가 국민적 관심을 한몸에 받는 국가대표라면 더더욱.
송지훈 축구팀장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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