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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한상균 “감옥서도 쌍용차 팔아…이명박근혜 때보다 싸우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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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복직투쟁 나선 한상균

경향신문

한상균씨는 매일 새벽 4시쯤 눈을 뜬다. 감옥생활을 오래 하며 굳어진 습관이다. 아침을 먹은 지도 오래됐다. 출근을 하지 않는데 아침을 먹는 것이 어색하고 내키지 않아 자연스레 그렇게 됐다고 했다. 평택 |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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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은 ‘출근 투쟁’…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쌍용차 노동자 인터뷰

한상균씨(58)는 교도소 안에서도 차를 팔았다. 그는 영업사원은 아니다. 조립라인에서 SUV를 만들었다. 2009년 쌍용자동차가 대량 정리해고를 발표하기 전까진 그랬다. 한씨는 그때 노조위원장(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이었고, 77일 동안 옥쇄파업을 지휘했다는 이유로 수감됐다. 2015년엔 민주노총 위원장으로서 ‘민중총궐기 집회’를 주도해 다시 수감됐다. 이명박 정부부터 박근혜 정부를 거쳐 문재인 정부까지 5년6개월을 감옥에서 살았다.

“교도관들이 쌍용차랑 다른 회사 차 사양을 들고 와서 비교해달라는데 솔직히 그 안에서 제가 성능을 뭘 얼마나 알겠어요. 그냥 조금 포장해서(웃음), ‘우리 꺼’ 사라고 했죠.” 출소 이후에도 그에게 “쌍용차를 사도 되겠느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100명이 넘었다. 영업소를 소개해줬다. “참 묘한 거예요. 나는 해직자고 회사에서 탄압도 받았지만, 가슴은 그렇게 움직이더라고요. 내 청춘을 바친 나의 회사라는 생각이 있는 거예요.”

2009년 발생한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건은 많은 이들의 삶을 바꿨다. 2646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전국으로 흩어졌다. 한씨의 삶도 그해를 기점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전남 나주에서 태어나 1985년 거화자동차에 입사한 그는 24년 동안 자동차를 만들었다. 민주노총 위원장을 지냈고, 지난해 특수고용노동자 등 노조활동과 노조법에서 소외된 이들을 위한 ‘권리찾기 유니온’을 설립한 그는 지금 한국의 대표적인 노동활동가다. 그러나, ‘노동자 한상균’의 꿈은 한결같았다. 아침에 출근해 일하고 퇴근하는 일상을 사는 것, 자동차를 만들다 정년퇴직하는 것.

한씨와 같은 소망을 가진 쌍용차의 ‘마지막 복직자’ 46명은 지난해 12월24일 무기한 복직연기 통보를 받았다. 2018년 노·노·사·정(기업노조,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쌍용차, 정부) 합의에 따라 2020년 1월부터 부서 배치가 될 거라 믿었던 그들은 1월7일부터 회의실로 출근해 ‘출근투쟁’을 벌이고 있다.

전국의 분쟁현장을 다니는 한씨도 복직이 무기한 연기된 46명 중 한 명이다. 10년7개월 동안 해고자와 가족 등 30명이 세상을 떠났다. 46명은 지난해 회사와 근로계약서를 쓰고도 사번만 있을 뿐 사원증은 받지 못해 회사에 ‘방문객’으로 들어간다. 복직예정자들은 지난 9일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휴업(직)·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냈다. 한씨는 “46명이 모두 복직한다고 해도 결코 승리한 투쟁이라고 할 수 없다. 너무 큰 상처를 남겼다”고 말했다. 복직투쟁에 나선 한씨를 지난 6일 경기 평택 쌍용차지부 사무실에서 만났다.

◆내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 일상적 노동과 정당한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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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균씨(앞줄 왼쪽) 등 쌍용자동차의 마지막 복직 예정자 46명이 지난 7일 첫 ‘출근투쟁’에 나섰다. 이들은 복직을 1주일여 앞두고 ‘무기한 복직 연기’ 통보를 받았다. 우철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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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 출근하는구나 했는데…

복직 일주일 앞두고 받은 문자 1통

나를 포함 46명 ‘무기한 복직 연기’

복직 예정자들 모여 울음바다

당사자들 뺀 노사합의 인정 못해


- 출근하기로 한 날, 출근투쟁을 시작하네요.

“음…일상을 다시 찾는다는 것이…이렇게 어렵구나…싶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아이들한테도 아빠는 늘 빈자리였고, 가장 역할도 못했어요. 2020년 1월이 되면 작업복 입고 출근하는 뒷모습을 보여줄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그동안 저희(쌍용차 해고자들)에게 보여준 수많은 연대와 사랑, 따뜻한 마음을 조금 갚을 수 있겠구나도 생각했고요. 이렇게 될 줄 모르고 지난달에 ‘손잡고(노동자를 상대로 한 파업 손해배상 소송을 지원하는 시민단체)’에 월 정기후원을 신청했거든요. 이런 식으로 앞으로 조금씩 갚아나가야지 생각하니 뿌듯했는데…이렇게 됐네요.”

- 복직을 1주일여 앞두고 회사로부터 ‘무기한 복직 연기’ 통보를 받았죠.

“먼저 문자메시지로 통보를 받았고, 며칠 뒤에 가정통신문이 왔어요.(회사와 기업노조가 무기한 복직 연기에 합의한 사실이 크리스마스이브에 알려졌고 27일 문자메시지로 통보 받았다.) 저도 한 노동자이고 한 명의 인간인데…먹먹했죠. 쌍용차 해고자 복직문제는 ‘노노사정’이 합의한 특별한 케이스잖아요. 사회 여러 주체들이 나서서 복직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해서 이룬 ‘쌍용차 사태 10년’의 마무리였어요. 세상은 다 그렇게 알고 있는데 갑자기 기한도 없는 휴직이라뇨. 게다가 이런 합의에 노동자를 보호해야 할 노조(기업노조)가 나서다니…. 회사 이미지에도 치명적이에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에요.”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와 파업 이후, 회사 안에는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와 별도로 기업노조가 만들어졌다. 2018년 9월21일 두 노조(기업노조,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와 쌍용차, 정부(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노노사정 합의서’를 작성했다. “회사는 복직대상 해고자를 2018년 말까지 60% 채용하고 나머지 해고자는 2019년 상반기 말까지 단계적으로 채용한다. 2019년 상반기 대상자 중 부서배치를 받지 못한 복직 대상자에 대해 2019년 7월1일부터 2019년 말까지 6개월만 무급휴직으로 전환 후 2019년 말까지 부서배치를 완료한다.” 이 합의에 따라 46명은 2019년 7월1일부터 무급휴직을 시작했고, 2020년 1월1일 복직 및 부서배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회사는 두 노조 중 기업노조와 합의를 통해 46명에 대해 복직연기를 통보했다. “휴직 종료일은 라인 운영 상황에 따라 추후 노사합의한다”고만 명시했다. 기업노조는 쌍용차가 ‘유니온숍(입사하면 자동으로 노조에 가입하는 형태)’이라는 이유로 복직자 및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복직예정자들에 대한 합의 권한도 있다는 주장이지만, 복직예정자들의 주장은 다르다.

지난해 10월 기업노조가 2020년 1월 복직할 것을 전제로 복직예정자들에게 보낸 공문을 보면 “2020년 1월25일 노동조합비 자동납부와 함께 쌍용자동차노동조합(기업노조)에 가입됨을 알려드린다”고 돼있다. 복직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노조비를 낸 사람도 없고, 당연히 아무도 기업노조 조합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복직예정자들을 법률지원하고 있는 민주노총 금속노조 법률원의 장석우 변호사는 “이 공문대로라면, 기업노조는 복직예정자들의 휴직 여부를 두고 회사와 합의할 권한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 다들 충격이 컸을 것 같습니다.

“크리스마스에 복직예정자들이 모여서 얘기를 하는데 울음바다였어요. 평소에는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이거든요. 10년7개월 동안 얼마나 가슴 속에 한이 많았겠어요. 20대에 해고된 동지들은 30대가 됐고, 40대는 50대가 됐죠. 저도 정년이 얼마 안 남았어요. (쌍용차 정년은 만 60세다. 46명 중 6명은 정년까지 1~5년 남은 상태다.) 그 아팠던 시간을 뒤로하고, ‘나는 이제 다시 일하러 간다’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가족, 친지, 친구들로부터 축하도 받고 굉장히 들떠 있는 상황이었어요. 먼저 복직한 동지들을 보면서 ‘최고의 치유는 복직’이라는 걸 우리가 절실하게 알게 됐어요. 그 동지들을 만나면, 본인이 뭐라고 말은 안해도 얼굴에 다 쓰여 있어요. ‘지금 행복하다.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있다’고요. 그런데 그 가느다란 희망의 끈을 회사와 기업노조가 일방적으로 잘라버린 거죠. 한 동지는 밧줄을 들고 몇 번이나 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왔대요. 너무 억울해서 못 죽겠다고 하더라고요. 다들 울었죠. 30명이 세상을 떠났어요. 사회적 타살이잖아요. 지금도 46명 중에 7~8명 동지들이 연락이 안돼서 정말 불안합니다. 계속 수소문하고 있어요.” (연락이 닿지 않았던 복직예정자들은 1월7일과 8일에 걸쳐 어렵게 소재가 확인됐다.)

|통상임금의 70%는 받지 않냐고?

기본급이 적은 쌍용차 임금 구조

잔업 수당 없으면 생계 유지 안돼

복직이 경영에 타격 주지도 않아


회사는 46명에게 임금·상여의 70%를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복직예정자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김득중 쌍용차 지부장은 “쌍용차 임금구조는 기본급이 적고 잔업에 따른 수당을 받아야 생계가 유지될 수 있는데, 통상임금의 70%만 받아서는 생활을 꾸리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임금을 70%만 받는 생활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기도 어려운데다, 서류상으로는 지난해 7월1일부터 쌍용차 직원이기 때문에 다른 곳에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렵다. 무엇보다 이들은 일상적인 노동과 그 노동에 따른 정당한 대가를 원한다. 한상균씨는 “복직은 해고 이후 부정당한 인생의 공백기를 다시 이어주는 계기로 생각하고 있다. 그 많은 트라우마와 상처를 치유하는 유일한 길은 아픔을 당한 현장으로 돌아가서 일을 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회사는 경영상의 위기를 말하고 있지만, 노조는 “사회적 합의를 진행할 때 올해 정년퇴직자들의 수를 이미 감안했기 때문에 복직으로 인한 비용발생이 크지 않다”고 주장한다. 해고자들을 법률지원하고 있는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윤지영 변호사는 “법리상 다수의 당사자가 참여해 성립한 법률관계는 그중 일부 당사자(쌍용차와 기업노조)가 임의로 변경할 수 없다”며 “막연히 경영상 어렵다거나 추가 투자를 끌어내기 위한 것만으로 휴직 결정의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고, 복직을 1주일 앞둔 상황에서 당사자들 모르게 노사합의를 한 것은 신의칙상 요구되는 절차를 거쳤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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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균씨가 민주노총 위원장이던 2015년 9월22일 총파업을 하루 앞두고 머리띠를 매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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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10일 선고된 판결에서 대법원은 “휴직명령이 정당한 인사권의 범위 내에 속하는지 여부는 당해 휴직명령 등의 경영상의 필요성과 그로 인해 근로자가 받게 될 신분상·경제상의 불이익을 비교·교량하고, 휴직명령 대상자 선정의 기준이 합리적이어야 하며, 근로자가 속하는 노동조합과의 협의 등 그 휴직명령을 하는 과정에서 신의칙상 요구되는 절차를 거쳤는지 여부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복직예정자들은 이 기준에 따라 휴직 대상자도,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도 모르게 회사가 기업노조와 일방적으로 합의한 휴직결정은 무효라는 주장이다.

- 회사가 왜 이런 결정을 했을까요. 강성 이미지의 한상균씨가 복직하면 기업노조 외에 다시 쌍용차 지부 노조가 활성화될 것이고 그것이 부담스러워서 복직을 미룬다는 해석도 나옵니다.

“법으로 노조활동이 보장돼있는 나라입니다. 만약 이번에 복직합의를 파기한 것이 그런 이유에서라면…지금 쌍용차 노무관리자들의 수준이 그 정도라면 굉장히 불행한 회사인 거죠.”

- ‘노동자 한상균’의 삶은 쌍용차 파업 이후 급변했습니다. 이런 오늘을 예상했었나요.

“전혀요. 저는 소심해서 지금도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이 부끄럽고 긴장돼요. 책 읽는 것을 좋아했지만 특별히 꿈도 없었어요.”

전남 나주가 고향인 한씨는 1985년 우리나라 최초의 지프차를 생산한 거화자동차에 입사했다. 동아자동차가 거화를 인수하고, 동아차는 쌍용차에 인수됐다. 한씨는 그렇게 쌍용차 직원이 됐다. 한씨는 “쌍용그룹이 워크아웃돼서 다시 대우차가 인수하고, 다시 대우가 워크아웃되고 이번에는 상하이차로 들어가고 다시 마힌드라가 인수하고…. 그 과정을 하나도 피할 수 없는 인생이었다”고 말했다.(쌍용차 해고노동자 르포 <그의 슬픔과 기쁨> 중)

2008년 노조위원장(쌍용차 금속노조 지부장)이 된 뒤, 2009년 대량해고가 발표됐고 77일간 옥쇄파업을 지휘했다. 경찰특공대가 폭력적인 진압작전을 벌인 뒤 파업은 끝났다. 한씨는 감옥에 갔다. 그는 화성교도소 독방에서 22명의 동료들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22개의 만장을 걸어놓고 홀로 장례를 치렀다. 그가 출소하던 날, 동료들은 흰 두부를 교도소 담장 안쪽으로 던졌다.

한씨는 출소 3개월 만에 고압전류가 흐르는 송전탑에 올라가 171일 동안 쌍용차 해고자 복직을 촉구하는 고공농성을 했다.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가 직선제로 바뀐 2014년 첫 선거(임기는 2015년부터 시작)에서 그는 위원장으로 당선됐다. 박근혜 정부 때였고 임기 1년 동안 거의 수배자로 살았다. 민중총궐기 집회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수감됐다. 또 독방이었다. 그 독방에서 한씨는 교도관들의 노동권 상담도 해주고, 쌍용차 영업도 했다.

|내가 왜 화합의 상징입니까

문 정부 ‘특사’로 출소했지만

감옥엔 여전히 억울한 노동자 많아

전국 농성장의 동지들 생각하면

축하한다는 말에 난감·속상·복잡


- 지난해 12월30일에 법무부가 발표한 ‘2020년 신년 특별사면대상’에 포함됐습니다.(그는 이광재 전 의원, 곽노현 전 교육감 등과 함께 사면됐다.)

“왜 한 건지 잘 모르겠어요. 감옥 안에 억울하게 형을 살고 있는 노동자들이 얼마나 많아요. 화합차원이라는데 제 사면이 뭘 어떻게 화합한다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전형적인 문재인식 이벤트성 사면이라고 봐요. (법무부는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의 실현을 위한 노력과 화합의 차원에서 복권했다”고 밝혔다. 노동계는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부터 한씨의 사면을 요구했으나, 정부 출범 3년5개월이 지난 후에야 이뤄졌다.) 지금 전국의 농성장에서, 차디찬 아스팔트에서, 고공농성장에서 힘들게 싸우는 사람들이 많아서…저는 민망하고 속상하고 마음이 복잡한데, 자꾸 여기저기서 축하한다며 소감을 물어서 참 난감했습니다.”

◆“정부 노동철학 빈곤…이명박근혜 때보다 싸우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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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균씨가 지난 6일 경기 평택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만났다. 한씨는 “누구도 고립되지 않고, 체념하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평택 |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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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노동존중’ 구호가 ‘재벌존중’으로 바뀌는 시간이 너무 짧았어요. 최저임금 삭감법 통과(2018년 5월28일)는 문재인 정부의 반노동법 1호예요. 최저임금 프레임을 사용자단체와 보수진영에서 공격하니까 속수무책으로 당했죠. 노동철학이 빈곤해서 생긴 문제예요. 그러다 보니까 재벌에 물려버렸어요. 노동시간 단축, 탄력근로제 등등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킬 수밖에 없는 이런 법안들을 문재인 정부에서 버젓이 논의하고 있단 말입니다. 특히 공공기관 노동자들을 보세요. 준공기업, 지방공기업을 포함한 공공기관 노동자들의 실질적 사용자는 국민의 세금을 집행하는 대통령입니다. 그런데 민간기업에서처럼 굉장히 반노동적 행태를 보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일들이 지금 공공기관에서 벌어지고 있어요. 가장 대표적인 것이 톨게이트 노동자 1500명에 대한 해고예요. 법원에서 이들을 한국도로공사가 직접 고용한 노동자라고 인정하고 노동자 승소판결을 내렸는데도 정부가 책임 있는 자세를 취하지 않고 있잖아요.”

|촛불 정부 기대 컸는데…

인천공항서 공공 정규직화 선언

문 대통령은 다르구나 여겼는데

어느 순간 노동존중 → 재벌존중


- 이명박, 박근혜 정부와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이명박은 사용자로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어서 노동조합을 어떻게 무력화시켜야 할지 너무 잘 알았죠. 그래서 복수노조 설립, 타임오프제 등을 히든카드로 꺼내서 노동조합과 활동가들의 손발을 묶어버렸어요. 실제로 그 두 정책이 시행되고 민주노조가 많이 무너졌어요. 전 국민을 ‘의자놀이’로 내몰려던 의도가 분명했고, ‘정리해고는 사용자가 마음대로 할 건데 여기에 까불면 쌍용차처럼 당한다’ 이런 걸 보여주고 싶었던 거죠. 이명박이 기획한 조직노동자들의 무력화 1단계는 대성공을 거둔 거예요. 박근혜 정권은 내용적 파괴를 하려고 했죠. 아예 대놓고 ‘쉬운 해고’를 하도록 하고, 파견업종을 확대해서 비정규직을 전 사업장에 투입할 수 있게 하려고 했죠. 공안 탄압을 하고 노골적인 공격을 자행했지만, 스스로 무너져서 결국은 박근혜 본인이 감옥에 갔어요. 김영삼 대통령 때부터 역대 모든 정권에서 ‘노동개악’이 이뤄졌는데 박근혜 정부에서만 못했어요. 아이러니한 거죠. 가장 적폐정권이었고, 가장 반노동정권이었는데.”

|현 정부 노동정책은

반노동 1호 ‘최저임금 삭감법’

후퇴 또 후퇴 ‘무늬만 김용균법’

노동시간 단축·탄력근로제 등

노조 무력화되는 법안 버젓이


- 문재인 정부와 싸우는 게 더 힘들 것 같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 정부’잖아요. 기대가 많았죠. 취임 초에 인천공항공사 방문을 통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정부로 거듭나겠다’고 굉장히 의미 있는 첫 행보를 했죠. 저도 박수를 쳤고, 뭔가 다르구나 했어요. 그런데 지금 어떻습니까. ILO(국제노동기구)협약비준도 회피하고 있죠. 김용균이라는 청년의 죽음에 우리가 너무 아파했는데, 김용균법도 줄줄이 후퇴해서 ‘무늬만 김용균법’으로 남았죠. 전교조 문제는 대통령이 팩스 한 장만 보내면 처리될 문제입니다. 왜 자신이 가진 힘을 온전하게 쓰지 않는지 도저히 모르겠어요. 문재인 정부와 싸우는 게 훨씬 더 힘들어요. 처음엔 어, 뭐지…? 우리도 혼선이 있었어요. 지금은 확실해요. 노동철학이 빈곤한 정부입니다.”

- 민주당이 다수당인데도 중대재해처벌법 등 여러 노동현안이 처리되지 않고 있죠.

“현재 국회의 주류세력은 86세대잖아요. 극우보수와 중도보수의 길로 나뉘어 있는데, 두 주류의 사상적 근거는 원래 노동자와 농민 존중이었어요. ‘노동자와 농민이 이 사회에 주인이어야 한다’ 이게 분명했었거든요. 근데 어느 순간 이게 다 사라진 거예요. 이제 본인들이 지킬 것이 많아진 사람들이 돼버린 거죠. 최저임금 삭감법을 통과시킬 때 국회의원 300명 중에 반대한 의원이 24명밖에 안됐어요.”

|정부에 고하는 말

삼성 김용희 강남역 고공농성 등

전국의 억울한 노동자들 아우성

노동 현실 아프게 받아들이고

지금이라도 궤도 수정했으면


- 전국의 투쟁 현장을 많이 다녔죠. 어떤 곳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까.

“1주일에 3번쯤 지방에 가요. 가야 할 곳이 너무 많죠. 뭐 저 혼자 가서 무슨 도움이 될까 싶지만, 가지 않고서는 마음이 편하지 않아서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경남 양산에서) 영남대병원 고공농성장까지 걸어갔죠. 각자의 역할을 통해서 마음을 모아내고, 이런 상황들을 세상에 알리려는 거죠. 저도 여기저기 많이 다니고 노동조합이 여러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하지만, 현장에 가보면 공허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요. 강남역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김용희씨가 많이 생각나요. (김씨는 노조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해고됐고, 삼성의 사과와 복직을 요구하며 2019년 6월부터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제가 그곳에 두 번 올라갔는데 허리를 펴기도 어려울 정도로 열악해요. 제가 김용희 동지한테 내려와서 증언자로 전국을 돌면서 이야기하라고 제안했어요. 그런데 본인이 그곳에 올라갈 때 자신과 한 약속이 있대요. 최소한 삼성의 사과라도 받아야 땅을 밟겠다고요. 그분도 자신이 고공농성을 한다고 해서, 삼성의 노조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어요. 그러나 삼성이 저지른 짓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정당한 사과를 받고 싶은 거죠. 이런 일들이 사실 전국에서 벌어지고 있어요. 노동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오체투지, 삼보일배, 고공농성, 단식, 삭발… 그런 거예요. 그게 아니면 알릴 방법이 없으니까 자기 몸 상해가면서까지 하는 거죠. 이 정권이 이런 상황을 아프게 받아들이고 지금이라도 제발 궤도를 수정했으면 좋겠어요.”

- 총선 때 노동자정치는 어떻게 세력화해야 할까요.

“노동조합과 노동자정치는 떼려야 뗄 수가 없어요. 문제는 실력이죠. 노동자들이 집권하는 개혁이 분명히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노동자들의 삶을 책임지는 정치를 더 이상 누군가가 대신 해주길 기대해선 안되는 거죠. 정치인들한테 다 맡겨놓고, ‘엘리트가 다 알아서 해줘라’ 하는 순간 한국사회는 훨씬 더 야만적인 사회가 될 거라고 봐요. 민주노총은 100만 조직이잖아요. 마음만 먹으면 뭘 못하겠어요.”

|총선? 다시 민주노총 위원장?

노동자들이 집권하길 바라지만

난 ‘영원한 노조 조직부장’ 꿈꿔

대단한 뭔가 할 수 있단 생각은

만용이었단 걸 수감생활서 느껴


- 총선에 출마하거나, 내년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에 다시 나설 생각은 없습니까.

“없어요. 저는 ‘영원한 민주노총 조직부장’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요. 이미 위원장도 했잖아요.(그는 3년 임기 중 2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저는 소외된 더 많은 노동자들을 찾아가는 역할을 하려고 해요. 오늘 인터뷰를 통해서, 민주노총에 공식적으로 요청 드립니다. 지도위원 말고 ‘조직부장’ 명찰 하나 주세요.(웃음)”

- 쌍용차 10년 투쟁을 이끌고, 민주노총 위원장을 하면서 유명해졌습니다. 본인의 이름이 어떤 상징이 되는 삶에서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나요.

“도망가고 싶다고 도망가지나요. 저를 폭도로, 1급 수배자로 기억하는 사람도 많아요. 아직도 대한문 앞을 지나가면 빨갱이라고 하고 욕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는 그래요. ‘제가 빨갱이라면 이 나라는 빨갱이가 더 많아야 잘됩니다.’ 민주노총보고 귀족노조라고 하면 ‘100만 조합원이 귀족노조해선 대한민국은 비전이 없소. 2000만 노동자가 다 귀족노조가 되는 그날까지 우리는 쉼 없이 갈 겁니다’라고 합니다. 사상과 신념은 총알로도 뚫을 수 없다는데, 그분들의 사상과 신념이 누구로부터 왜곡돼서 전해진 것이라고 해도 어떻게 갑자기 바뀌겠어요. 같이 욕할 필요 없고, 어떨 땐 조크를 하기도 하고, 어떨 땐 설명을 하기도 하죠.

- 그래도 절망하고 체념하고 싶은 순간이 많았을 것 같아요.

“제가 감옥에서 느낀 게 ‘비움이 참 어렵구나, 내가 대단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대단한 만용이다’였어요. 이런 제 한계를 알아가는 시간이었고, 그걸 알고 나니 좀 편해졌어요. 쌍용차 동지들이 처음엔 그냥 평범한 노동자들이었는데 10년 세월을 거치면서 정말 훌륭한 투쟁가가 됐어요. 자기보다 더 동료를 사랑하고 믿는 사람들이죠.”

- 지난해 10월에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권리찾기 유니온 ‘권유하다’를 출범시켰죠. 잘 되고 있습니까.

“2월4일 오후 6시에 플랫폼을 오픈해요.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들이 체념하지 않고, 자기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전국에서 폭발적으로 접속해서 지금 국회가 하지 못한 일을 해냈으면 좋겠어요. 근로기준법이라는 최소한의 법조차도 적용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약 1000만명 정도로 추산됐는데, 정확한 통계도 없어요. 우리는 늘 ‘우리’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고립된 사람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쉬워요. 쌍용차도 절망적일 때 정말 많은 분들이 달려와서 손을 잡아주셨잖아요. 그 고마움은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큰 역사도 물꼬는 소수가 트고, 그것을 본 궤도에 올리는 것은 그에 동의하는 민중들이잖아요. 경향신문 독자분들도 지금 이 노동자들의 미래가 우리 아이들의 미래라고 생각하시고 관심을 많이 가져주시면 좋겠습니다. 누구도 우리를 대신해주지 않잖아요,”

- 노동활동가 말고 ‘그냥 한상균’이라는 사람의 일상은 어떻습니까. 자녀분(딸과 아들)들의 입학식과 졸업식 사진을 한 번도 같이 찍은 적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네…아이들이 가장 예민할 때 곁에 있어주지 못했죠. 감옥에 있을 때 아이들이 봤으면 하는 책에 편지를 써서 보내주면서 이야기를 나누곤 했어요. 저는 사실 소소한 일상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한 1~2년은 평범한 일상을 누리면서, 가족들이 받은 상처를 함께 치유하고 싶기도 합니다.”

-다시 복직문제를 얘기해볼까요. 남은 46명의 복직은 잘 이뤄질 수 있을까요.

“옳지 않은 일들이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알고 있어요. 46명은 사회적 합의대로 반드시 회사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공장’이에요. 쌍용차 문제는 부당정리해고가 얼마나 참담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보여줬고, 또 한편으로는 따뜻한 사회적 연대의 힘이 얼마나 소중한가도 알려줬어요. 우리들(해고자들) 몸에 옹이가 참 많은데요…이번에 하나 더 생겨버렸네요. 46명이 다 복직한다고 우리가 승리했다고 보진 않아요. 저는 ‘승리’라는 표현은 못쓰겠습니다. 30명의 동지들이 떠났고…참 너무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그래도 꼭 마지막까지 잘 해결해서 동지들과 공장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평택 | 장은교 기자 ind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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