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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블루오션’ 북한의 재발견…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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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미의 TV 톡톡]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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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로맨스 <사랑의 불시착>(티브이엔)이 화제다. 작가의 잇따른 표절 시비와 교착된 남북관계가 악재로 작용했지만, 배우들의 호연으로 인한 재미가 모든 논란을 묻어버렸다. 손예진, 현빈의 눈을 뗄 수 없는 매력과 김정란, 양경원 등 조연들의 빈틈없는 연기에 빠져 있다 보면, 지금 북한의 일상사가 입체적으로 체감되는 뜻밖의 수확을 얻는다.

윤세리(손예진)가 패러글라이딩을 타다 돌풍에 휘말려 군사분계선을 넘는다는 황당한 설정에 고개를 갸웃거린 사람도 있으리라. 나무에 매달린 윤세리가 북한 장교 리정혁(현빈)의 품에 뚝 떨어질 때만 해도 어디까지 가려는지 몰랐다. 하지만 북한 마을이 통째로 나오고 조연들의 배역이 심상치 않음을 보고서야, 북한 사회를 본격적으로 그리려는 드라마임을 알게 된다. 과연 드라마는 북한의 일상사를 대규모 세트와 면밀한 고증을 통해 생생히 재현한다. 하기야 남한에 탈북자가 3만명이 넘고, 이들이 종편과 유튜브를 통해 체험담을 쏟아내는 시대에 고증이 부족할 리는 없지 않은가.

지금껏 영화나 다큐멘터리로 북한의 모습을 접해왔지만, 로맨틱 코미디로 북한의 일상사를 보니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1989년 황석영의 북한 방문기처럼 “사람이 살고 있었네”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전방 군 사택 마을은 남한의 1980년대 농촌 같은 정겨움이 넘친다. 함께 모여 김장을 하고, 음식을 돌려 먹는다. 북한 장병이 몰래 남한 드라마를 보는가 하면, 장마당에서는 남한 소비재들이 은밀하게 거래된다. 평양 상류사회는 더 놀랍다. 최고급 백화점은 여느 자본주의 사회 못지않고, 대동강변의 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치킨과 맥주를 시켜 먹는 풍경도 남한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곳의 상류층도 유학을 간다. 하기야 김정은도 유럽 유학파가 아니던가.

혹자는 드라마가 북한 사회를 미화한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그리 볼 수 없다. 정전이 다반사고, 기차는 장시간 정차하기 일쑤다. ‘꽃제비’와 굶주리는 아이들도 있다. 빈곤보다 더 끔찍한 것은 지독한 감시사회라는 점이다. 도청이 생활화되어 있고, 가정집을 숙박 검열하며, 김일성 초상 표찰을 달지 않았다고 행인을 단속한다. 삼엄한 감시에도 불구하고 비리가 만연해 있다. 문화재를 도굴하거나 외국인 수배자에게 은신처를 제공하는 대가로 뒷돈을 챙기는 관료가 있고, 어선으로 탈북을 돕는 생계형 범법자도 있다.

그동안 이처럼 상세하게 북한 사회를 그린 남북 로맨스가 있었던가. 일단 남북 로맨스 자체가 많지 않다. 그보다는 <태풍> <공동경비구역 제이에스에이(JSA)> <의형제> <공조> <강철비> <공작> <백두산>에 이르기까지, 남북의 남성들이 국가를 대표하며 만나 서로 총을 겨누다 눈물겨운 형제애를 확인하는 영화가 많았다. 남북 로맨스를 다룬 콘텐츠로는 탈북자의 사랑 이야기를 제외하면 영화 <쉬리> <남남북녀> <기사선생>, 드라마 <더 킹 투 하츠> 정도가 있을 뿐이다. 이 중 북한이 주 무대인 작품은 개성공단을 배경으로 한 단편영화 <기사선생>뿐이다.

그런데 <사랑의 불시착>을 보니 북한 배경의 남북 로맨스야말로 ‘신의 한 수’가 아닐 수 없다. 일단 못 보던 광경이 풍물지적인 흥미를 유발하며, 멜로의 필수 요소인 ‘금기’가 무한 제공된다. 연애가 일종의 스펙이 된 시대에 어떤 사랑이 금기일 수 있으랴. 그동안 멜로물에서 재벌가, 출생의 비밀, 불치병 등이 무수히 재탕된 것은 좀처럼 찾기 힘든 금기를 끼워 넣기 위함이었다. 한데 여주인공을 북한에 떨어뜨려 놓으니, 강력한 금기와 스릴 넘치는 상황들이 저절로 만들어진다.

남한 여자와 북한 남자는 공존할 수 없는 두 집단의 구성원이란 점에서 흡사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처지다. 두 사람은 ‘해주 윤씨, 전주 이씨’로 대별되는 민족적 동질감에 ‘재벌 딸이자 사장, 총정치국장 아들이자 군관’으로 양 체제의 ‘금수저’라는 계급적 동류의식을 지니지만, 체제가 달라서 오는 문화적 이질감으로 흡사 ‘별에서 온 그대’를 보는 듯한 신기함을 느낀다. 즉 남자는 다른 세계에서 온 여자의 매력에 흠뻑 빠지고, 여자는 생존을 위해 남자에게 ‘필살 애교’를 구사하는 구도가 자연스레 만들어진다. 두 사람은 여자의 무사 귀환을 목표로 삼지만, 이별하면 다시는 못 볼 사이라 애틋함이 커진다. 그뿐인가. 여자의 정체가 발각되면 다 죽는 상황이라, 남자가 목숨 걸고 여자를 지켜야 하는 극한의 멜로가 펼쳐진다. 무심한 듯 곁을 지키던 남자가 급기야 총에 맞으니, 이보다 진한 멜로가 어디 있으랴. <태양의 후예>처럼 전쟁과 재난이 벌어진 가상의 외국을 굳이 설정하지 않아도, 북한이라는 공간이 열 일을 해낸다.

남북관계가 교착된 상태에서 <백두산>과 <사랑의 불시착>이 흥행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통일의 열망이 작동했다기보다는 거대자본과 톱스타가 빚어낸 ‘빅 재미’가 주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즉 북한은 자본이 찾아낸 콘텐츠의 블루오션인 셈이다. “아프리카도 가고, 남극도 가는데 당신은 참 하필 여기 사네요”라는 말처럼, 북한은 가깝고도 멀며 실재하지만 판타지 같은 세계다. 이제 남한에 북한을 선망할 사람은 없으니, 정치적으로 민감할 것도 없지 않은가. 자본이 북한을 실제로 개발하기 전에, 북한은 콘텐츠의 신천지로 먼저 개발되지 않을까 싶다. 극 중 ‘검은 머리 외국인’이자 투자가인 구승준(김정현)이 돈을 주고 북한에 도피해 있듯이,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자본의 욕망 앞에서 휴전선 따위는 금단의 경계가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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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미 ㅣ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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