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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총선 이모저모

文청와대 70명 총선 앞으로...MB의 靑참모들은 왜 전멸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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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사무처가 공개한 20대 국회의원 배지.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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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는 민심을 사야 이긴다. 선거 마케팅이란 말도 그래서 생겼다. 최근 정치권에선 ‘청와대 마케팅’이 주목받는다. 문재인 청와대 꼬리표를 단 전·현직 청와대 참모진 70여 명이 21대 총선에 대거 출사표를 던지면서다.

청와대 출마자 러쉬 뒤에는 정권 출범 3년을 거의 채우고 치러지는 이번 총선이 ’친문 간판‘을 활용할 적기라는 판단이 깔려있다. 과거엔 어땠을까. 최근 총선에서의 청와대 마케팅 성적을 살펴봤다.



‘친박’ 참패 속 자존심 지킨 ‘박심’



20대 총선은 박근혜 전 대통령 임기 4년 차인 2016년 4월 치러졌다. 결과는 여소야대. 지역구 선거에서 당시 제1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110석)에 5석 밀린 여당(새누리당)이 과반 사수에 실패했다. 그만큼 청와대 출신 당선자 수도 많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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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총선 개표 종료 직후 당시 김무성새누리당 대표(왼쪽)와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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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구와 비례대표를 포함한 전체 새누리당 당선자(122명) 중 7명(지역구 6명·비례대표 1명)이 박 전 대통령의 참모 출신이었다. 민정수석이었던 곽상도 의원과 정무비서관 등을 지낸 김선동·주광덕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정무수석·홍보수석을 거치며 친박 핵심이었던 이정현 의원은 ‘박근혜 청와대’ 마케팅의 대표적 성공 사례다. 2015년 보수의 난공불락인 전남 순천-곡성에서 재보궐로 입성한 뒤, 이듬해 20대 총선까지 재선에 성공했다. 그 밖에 민경욱(대변인), 유민봉(국정기획수석), 이양수(대통령비서실 행정관) 의원 등도 ‘박심’을 등에 업고 국회에 입성한 케이스로 평가된다.

국무조정실장을 지낸 추경호 의원 등 내각 출신까지 합하면 박근혜 정부에서 나온 당선자는 19명이다. 한국당 초선 의원은 8일 ”당시 ‘진박 감별사’까지 등장시키며 대통령 마케팅에 맹목적으로 의존했던 게 패착이었다”며 “그래도 청와대·내각 출신은 선전한 편”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청와대에서 공직기강비서관을 지낸 조응천 의원은 민주당으로 영입돼 금배지를 다는 이례적 기록을 남겼다.



‘MB맨’ 씨 말랐던 19대 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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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이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었던 2012년 4월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19대 총선 당선인대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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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청와대 참모 출신 전멸.’ 2012년 3월 6일 중앙일보(4면) 기사 제목이다. 당시 새누리당 공천에서 이명박계가 무더기로 탈락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MB 청와대 타이틀을 달고 총선 레이스에 도전장을 냈던 이동관 전 홍보수석, 이상휘 전 홍보기획비서관, 김형준 전 춘추관장 등은 아예 출정 기회마저 갖지 못하고 고배를 마셨다. 백운현 전 행정자치비서관, 이성권 전 시민사회비서관, 김연광 전 정무비서관 등은 이후 당내 경선에서 탈락했다. 경선 탈락 후 무소속으로 출마한 박형준 전 정무수석은 본선에서 졌다.

이명박 전 대통령 임기 종료를 10개월 앞두고 치러진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출사표를 던진 청와대 참모 수가 지금만큼 많지 않았다. 선거판에도 ‘레임덕’이 반영된 셈이다. 당내 경선과 본선을 거쳐 결국 윤진식 전 정책실장, 김희정 전 대변인, 정문헌 전 통일비서관 등 3명만이 MB 청와대 출신으로 19대 국회에 입성했다. 전체 새누리당 확보 의석(152석)의 2%도 되지 않았다.



‘탄돌이’ 4년 뒤의 악몽



민주당에 아픈 기억은 2008년 4월 18대 총선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퇴임(2008년 2월 24일) 직후였던 당시, 노무현 청와대 참모 출신 후보들은 약속이나 한 듯 본인 약력에서 청와대 경력을 삭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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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8년 3월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4.9총선을 역대 가장 공정한 총선으로 치룰 수 있도록 하라고 내각에 지시하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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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중진 의원은 “정권 교체와 맞물려 자칫 심판 대상으로 분류되는 걸 피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회상했다. 당시 통합민주당은 81석으로 한나라당(현 한국당) 의석수(153석)의 절반 수준에 머물렀다.

반면 2004년 17대 총선 때는 정반대였다. 당시 노 전 대통령 탄핵을 주도한 한나라당이 역풍을 맞아 ‘탄돌이’라고 불리는 열린우리당(현 민주당) 초선의원 108명이 대거 당선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17대 총선에서 노무현 청와대 출신 출마자는 모두 13명이었다. 정권 출범 1년을 갓 넘겨 내각을 박차고 나오기가 상대적으로 쉽지 않은 시기였지만, 문희상 국회의장과 유인태 국회 사무총장이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과 정무수석 꼬리표를 달고 선거에 나서 당선됐다. 그 밖에 이광재·김현미·권선택·문학진·서갑원·백원우 등 총 8명이 선거에서 승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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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당시 문희상 전 대통령 비서실장(왼쪽)과 유인태 전 정무수석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총선 출마 기자간담회를 하던 도중 물을 마시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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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율 명지대 교수는 “청와대 출신의 총선 성적표는 허니문 시기냐, 레임덕 때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면서 “이번에는 정권 중반기를 막 넘기는 시점인 만큼 청와대 마케팅이 먹힐지는 가늠하기 쉽지 않다. 청와대 출신 출마자들이 지역구에서 스스로 경쟁력을 입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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