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16 (토)

이슈 물가와 GDP

한국경제 가물가물한 'V자의 추억'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우리 경제에 봄은 오는가. 그 봄은 여름으로 가는 길목일까, 더한 한파를 앞두고 찰나처럼 지나가는 것일까.

지난해 11월의 국내 생산·소비 지표가 1년 전보다 호전된 것으로 나오면서 우리 경제가 바닥을 다지고 곧 반등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9일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작년 4월부터 12월까지 9개월간 이어온 '경기 부진' 판정을 거두고 "경기 부진이 완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조심스러운 평가를 내놨다.

그러나 민간경제의 핵심축인 기업들의 투자가 여전히 부진하다는 점, 미·중 무역 분쟁과 이에 따른 각국의 투자 둔화로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이 당초 예상보다 낮아질 것으로 전망되는 점 등에 비춰볼 때 반등은 기대에 그칠 가능성이 높고, 올해보다 크게 나을 것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이다.

◇L자로 기어가는 한국 경제

이제까지 한국 경제는 경기침체를 겪은 후엔 곧바로 강하게 반등하는 'V자형' 회복세를 보였다. 1997년 말 닥친 외환 위기로 이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5.1%로 떨어졌지만, 불과 1년 만인 1999년 11.5%의 성장률로 급격히 회복했다. 글로벌 금융 위기로 2009년 성장률이 0.8%로 주저앉았다가 이듬해 곧바로 6.8%로 반등했다. '강한 복원력'은 국제 사회에서 한국 경제를 규정하는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그러나 지난 1년간 우리 경제가 지나온 모습을 돌아보면 'L자'에 가깝다. 현재 시점의 경기 가늠자인 동행지수 순환변동치가 2018년 12월부터 작년 11월까지 12개월 연속으로 기준점(100) 밑인 99를 맴돌고 있어서다. 이는 장기적인 경제성장 흐름이나 계절적인 변동 요인 등을 빼고 봤더니 경제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뒷걸음질했다는 뜻이다. 정부는 올 하반기부턴 이런 L자의 끝이 살짝 들고 올라가는 'U자형'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세계경제가 호전돼 수출이 살아나고, 특히 반도체 경기가 개선되는 덕을 보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조선비즈

그래픽=김성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최근 나온 몇 가지 지표도 희망적이다. 통계청은 지난 11월 소매판매액과 서비스업 생산 증가율이 10월보다 높아졌고 12월 소비재 수입도 두 자릿수 늘어나는 등 여러 소비지표가 개선되고 있다고 밝혔다. 6개월 이후 경기를 가늠할 선행지표 역할을 하는 기계 수주나 자본재 수입액도 11월치가 10월치보다 큰 폭으로 증가하는 등 여러 긍정적 신호가 등장했다.

반면 주택 부문을 중심으로 건설 투자가 계속 부진하고, 변동성이 큰 선박과 항공기를 제외한 설비 투자는 여전히 마이너스다. 무엇보다 8일(현지 시각) 세계은행이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을 작년 6월 전망치(2.7%)보다 0.2%포인트 낮은 2.5%로 수정한 점이 주목된다. "세계 각국의 무역과 투자가 생각보다 부진하다"는 게 하향 조정한 이유다. 정부가 올해 성장률을 지난해보다 높은 2.4%로 예상하면서 내세운 근거가 세계 경기 호조에 따른 수출 호전이었는데 핵심 전제가 흔들린 것이다. 게다가 이란 사태라는 돌발 변수까지 터지면서 수출에는 악재만 하나 더 늘었다.

◇ 반짝 반등 후 고꾸라지는 'W'자 될라

민간경제 주축인 기업들의 실적이 나아질 것 없다는 점도 비관론에 힘을 보탠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지난해 평가 대상 450개 기업 가운데 신용등급이 올라간 곳은 14개에 그친 반면, 신용등급이 하락한 기업은 22곳으로 1.5배 많았다. 올해는 더하다. 신용등급을 긍정적으로 전망한 기업은 16곳, 부정적인 전망이 붙은 기업은 30곳으로 2배 수준이다. 산업별로 봐도 28개 주요 산업 가운데 올해 신용등급 전망이 긍정적인 곳은 하나도 없었다. 24개 산업은 중립적, 4개 산업은 부정적일 것으로 내다봤다. 한기평 송태준 실장은 “국내 경기 부진과 미·중 성장률 하락, 양국 간 분쟁 등 비(非)우호적인 사업 환경이 펼쳐지면서 기업 실적이 크게 개선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L자가 U자, V자형이 되려면 결국 투자와 고용 증대, 이에 따른 소비 증가 사이클이 살아나야 하는데 국내 여건상 기업 투자와 고용 확대를 불러올 유인이 전혀 안 보인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특히 올해 반도체 경기 개선에 기댄 반짝 경기 회복에 취했다가는 반도체 경기가 다시 꺼지면 다시 속절없이 무너지는 W형 ‘더블딥’이 올 가능성도 있다. 2018년 한국경제 성장률은 2.7%였지만, 반도체 수출 실적이 절반을 차지해 이를 뺀 성장률은 1.4%에 불과했다는 KDI 분석도 있었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바닥을 쳤다는 희망적인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우리 경제가 일부 품목 수출 경기에 기대어 제대로 된 구조 개혁을 하지 않는다면 저점이 매우 길게 이어지는 유례없는 양상이 펼쳐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정 기자(ejkim@chosun.com);이기훈 기자

<저작권자 ⓒ Chosun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