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간 남북 큰 진전 못 이뤄 아쉬워"…북미 상황만 지켜볼 수 없다는 인식
남북 관계 바퀴 삼아 북미 관계 추동한다는 구상…北 화답할지는 미지수
"무력 과시, 누구에게도 도움 안 돼"…北 추가도발 막고 대화테이블 마련 주력
접경지 협력·체육교류·DMZ 세계문화유산 등재 등 '낮은 단계' 협력도 강구
문 대통령, 2020년 신년사 |
(서울=연합뉴스) 박경준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교착상태에 빠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재가동을 위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남한 답방이라는 카드를 다시금 꺼내 들었다.
이는 북미간 교착국면에서 탈피해 남북관계를 앞세워 한반도 상황을 전향적으로 풀어나가보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여전히 한반도 문제의 핵심이 북한 비핵화이고 이는 기본적으로 북미 간 대화로 해결해야 할 사안이지만, 더이상 북미에만 상황을 맡겨놓을 수 없다는 인식이 작동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남북'을 앞세워 다시금 한반도 평화의 운전자 역할을 하겠다는 뜻을 비친 것으로 보인다.
북미 대화가 진전되지 못하면서 남북 대화도 경색된 경향을 나타낸 만큼 다시 한번 적극적으로 남북 관계부터 풀어내 비핵화와 북미관계의 진전을 추동하겠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7일 오전 청와대에서 발표한 신년사에서 "평화통일의 의지를 다지는 공동행사를 비롯해 김 위원장의 답방을 위한 여건이 하루빨리 갖춰지도록 남북이 함께 노력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남한 답방은 문 대통령의 평양 방문 이후 청와대가 야심 차게 준비했던 시나리오였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9월 19일 오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평양공동선언문에 서명한 후 합의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
9·19 평양공동선언 제6항에는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의 초청에 따라 가까운 시일 내 서울을 방문하기로 했다고 명시돼 있다.
문 대통령은 이를 두고 2018년 9월 20일 평양에서 돌아온 직후 대국민보고를 통해 "가급적 올해 안에 김 위원장이 방문하기로 뜻을 모았다"고 설명한 바 있다.
김 위원장의 연내 답방 여부는 초미의 관심사가 됐으나 비핵화의 구체적 방법론을 둘러싼 북미협상 난항과 경호·안전상의 문제로 이는 결국 무산됐다.
'하노이 노딜' 이후 좀처럼 거론되지 않던 '김 위원장 답방' 카드를 문 대통령이 다시 꺼내든 배경에는 무엇보다 북미 양측의 대화로만 비핵화의 진전을 이루기는 어렵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읽힌다.
2018년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한 차례의 북미정상회담 등으로 비핵화를 진전시킬 여건이 조성됐을 때 그 분위기를 밀어붙이지 못한 것도 현 교착 상태의 원인이 아니냐는 것이다.
신년사 발표하는 문 대통령 |
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지난 1년간 남북 협력에서 더 큰 진전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며 "북미 대화가 본격화하면서 남과 북 모두 북미대화를 앞세웠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결국 문 대통령으로서는 북미 대화의 동력을 이어가는 동시에 이를 추동하는 역할을 기대할 수 있는 남북관계의 개선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것에서 답을 찾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북미 대화의 교착 속에 남북 관계의 후퇴까지 염려되는 지금 북미대화의 성공을 위해 노력해 나가는 것과 함께 남북 협력을 더욱 증진시켜 나갈 현실적 방안을 모색할 필요성이 절실해졌다"고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문 대통령의 이런 제안에 북한이 얼마나 호응하느냐다.
북한의 대외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문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기고 전문 매체인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에 기고한 한반도 평화구상을 겨냥해 '궤변'이라고 비난했다.
특히 문 대통령을 '남조선 청와대의 현 당국자'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이렇듯 '하노이 노딜' 후 우리 정부의 역할에 불신을 나타냈다는 평가를 받는 북한의 태도를 바꾸기 위해 문 대통령은 낮은 단계의 남북 협력, 즉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히 해보자'는 어조로 진정성 있는 제안을 내놨다.
문 대통령은 당장 "무력의 과시와 위협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미국의 인내심을 자극할 수 있는 무력도발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러면서 첫 번째 관계 개선의 분야로 접경지 협력을 제안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노르웨이 방문 당시 오슬로대 연설에서 남북을 '생명공동체'로 지칭하며 접경지역의 화재, 홍수, 산사태, 병충해 등의 문제를 해결하자고 제안했는데, 이날 신년사에서도 같은 내용을 언급한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31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제7기 제5차 전원회의를 지도했다고 1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No Redistribution] photo@yna.co.kr |
김 위원장이 지난달 개최한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생태환경 보호와 자연재해방지대책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등 이와 일맥상통하는 발언을 한 만큼 문 대통령으로서는 이 대목에서 새로운 협력 가능성을 발견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2032년 올림픽 남북 공동개최를 비롯해 올여름 도쿄 올림픽 공동입장과 단일팀 구성을 위한 협의, 올해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동아시아 역도선수권대회와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북한 선수단의 참가 등을 요청했다.
올림픽 공동개최 등은 남북을 잇는 도로·철도 등 교통 인프라와도 결부된 문제인 만큼 체육 분야의 협력을 논의하면서 이와 관련한 대북제재 완화와 같은 이슈도 협의해볼 수 있는 여지를 둔 것으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유엔총회에서 제안한 비무장지대의 국제평화지대화에서 한발 더 나아가 비무장지대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공동등재도 제안했다.
남북은 지난 2018년 씨름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공동등재한 경험이 있는 만큼 이 역시 남북이 비교적 이견 없이 즉각적으로 협력을 시작할 수 있는 사안으로 본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러한 협력을 바탕으로 남북 간 접점을 늘려가면서 북한이 미국과의 견해차를 좁히는 데 주력할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면서 관계의 진전을 통한 궁극적 목표인 평화경제의 토대를 단단히 하고자 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나는 거듭 만나고 끊임없이 대화할 용의가 있다"며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재개를 위한 노력도 계속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평화를 통해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은 궁극적으로 평화경제"라며 "분단이 더 이상 평화와 번영에 장애가 되지 않는 시대를 만들어 남북 모두가 주변 국가와 함께 번영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kj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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