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신년사 대체한 보고에서 대남메시지 생략
'18년 평창올림픽·19년 금강산' 언급과 온도차
대신 "미국 추종하는 적대세력에게 계속 심대 타격"
지난해 6월 진행된 남북미 판문점 회동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문재인 대통령(가운데),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 김정은 위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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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새해가 밝았지만 지난해 2월 이후 급경색된 남북관계의 어둠은 쉽사리 걷히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1일 신년사를 갈음한 당 전원회의 보고에서 남북관계에 대한 언급을 사실상 생략했다. 대신 남한을 겨냥한 듯 '미국 추종세력에게 심대한 타격을 가할 것'이라며 순탄치 못한 남북관계의 앞날을 예고했다.
1일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전날 노동당 7기 5차 전원회의 마지막 날 대내외 정책 전반에 대한 평가와 신년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1만8000자가량 되는 회의 결과 보도에서 '북남(남북)관계'라는 단어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첨단전쟁장비들을 남조선에 반입하여…'라며 미국을 비난하는 과정에서 남측을 한 차례 언급하는 데 그쳤을 뿐이다.
지난해 발표한 신년사에서 '북남관계'가 10번 언급된 것과 대조적이다. 지난해 그는 '급속히 진전된' 남북관계를 예로 들며 북·미대화에 거는 기대감을 나타내는가 하면, 남북협력·교류의 전면적 확대를 강조하며 '전제조건 없는 금강산 관광·개성공단 가동 재개' 의사를 내비친 바 있다.
그보다 앞선 2018년 신년사에서는 평창올림픽 참가와 남북대화를 언급하며, '화염과 분노'로 대변되는 2017년 최악의 한반도 정세를 일시에 반전시키기도 했다.
이번에 김 위원장은 남북관계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는 대신 "우리 당은 꿋꿋이 뻗치고 서서 미국과 그에 추종하는 적대세력들에게 계속 심대한 타격을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사실상 남한을 겨냥한 메시지로 풀이된다.
지난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난 이후, 북한은 남한을 향해 외세의존과 사대주의를 버리라고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북한 대외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지난달 27일 '송년의 언덕에서 되새겨보는 진리'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2019년을 '실망과 분노'로 규정하고 "올해에 북남관계가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지난해 민족을 위한 좋은 합의를 해놓고도 외세의 눈치만 살피며 제 할바도 못하는 남조선당국의 그릇된 외세의존정책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31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제7기 제5차 전원회의를 지도했다고 1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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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이번 보고에서) 대남정책 논의가 없는 것은 남북관계를 현 정세의 주요 변수로 보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올해 북·미관계-남북관계의 탈동조화 현상이 더욱 가시화할 것이라는 점은 우려를 더욱 키운다. 북·미관계가 설사 잘 풀린다하더라도 남북관계가 자연스럽게 풀릴 가능성은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관세 경남대극동문제연구소장은 "2020년 북·미 관계가 어떠한 방향으로 진행된다고 해도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낙관하기는 어렵다"면서 "북·미관계와 남북관계가 동일한 방향으로 연동되어 움직일 것이라는 근거 없는 희망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북·미관계 진전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남북관계 수립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소장은 "북·미대화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이제 우리의 남북관계, 우리 스스로 한반도 평화를 만들어 갈 용기와 구체적인 실천력을 가져야 한다"며 "지금까지 북·미관계에 연동되어 있고 자율적이지 못한 남북관계가 아닌 새로운 남북관계 새판짜기가 필요한 때"라고 했다.
그는 "(남한이) 우리만의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지 않으면 그 어느 해보다 어려운 상황이 될 수 있다"며 "외교전선의 다변화를 통한 남북문제 해결을 위한 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에만 의존해서 문제를 풀 것이 아니고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한 접근·해결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한의 권력서열 3위인 박봉주 노동당 부위원장(붉은 원)이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주재한 당 중앙위원회 제7기 5차 전원회의 4일 차 회의에 참석한 것으로 확인됐다. 1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전체 참가자들의 기념사진에서 박 부위원장이 휠체어를 타고 김 위원장 옆에 앉아있는 모습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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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북한이 다른 형식으로 별도의 대남 메시지를 내놓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이번에) 대남관계와 관련한 언급이 없는 것은 당 전원회의라는 특성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북한이 조만간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담화를 통해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략연구원도 "(대남메시지 생략이) 통미봉남 기조의 확정이라기보다는, 향후 대미·대중관계 변화에 따라 대남정책 조정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김동표 기자 letme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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