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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2019 의인열전] 불난 목욕탕서 극강투혼 발휘한 이재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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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의실서 휴식 중 거센 불길에도 끝까지 남아 이용객 구조

천장 무너지고 전기 끊긴 순간도…연기 과다흡입 치료받아

(대구=연합뉴스) 김현태 기자 = "일단 살려야죠. 사람이 먼저지요."

만약 다시 화재 현장에서 어려움에 빠진 이를 본다면 어떡하겠느냐는 물음에 이재만(66) 씨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이씨는 "다른 사람 생명을 구했다는 뿌듯함보다 더 잘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을 이었다.

연합뉴스

목욕탕 화재서 타인 구한 의인 이재만 씨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 2월 19일 오전 7시께 대구시 중구 포정동 한 목욕탕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7층 건물 4층에서 난 불로 3명이 숨지는 등 사상자 수가 87명에 달했다.

사고 당일 오전 6시께 목욕탕을 찾은 이씨는 간단하게 몸을 씻고 탈의실 평상에 앉아 카운터 직원(77)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갑자기 타는 냄새가 나며 남탕 입구 쪽에서 목욕탕 업주가 황급히 뛰어 들어오다가 넘어졌고, 그 뒤로 시꺼먼 연기와 함께 거센 불길이 눈에 들어왔다.

위급 상황을 직감한 그는 곧바로 휴게실로 달려가 "불이야"라고 외쳤다.

휴게실에 누워 자는 손님 10여명을 깨우고는 헬스장과 탕 안을 오가며 화재 사실을 알리고 대피를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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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로 타버린 목욕탕
[연합뉴스 자료사진]



"당시 기억이 아직 생생해요. 화재를 인식 못 한 손님들이 저를 이상한 사람 보듯 하더라고요"라며 이씨는 아찔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1초가 아쉬운 상황, 그는 혹시 사람이 더 남아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욕실 안 습식·건식사우나로 향했다.

사람이 없음을 확인하고 욕실 밖으로 나오려는 순간 갑자기 천장이 무너졌다.

그는 욕실 밖으로 대피하던 다른 손님 1명과 함께 갇혀 버렸다.

곧이어 전기 공급이 끊겨 욕실 안은 순식간에 암흑으로 변했다.

"죽을 때는 이렇겠구나 싶고 자식들 생각이 나더라고요. 짧은 순간이지만 말 한마디 못하고 간다는 생각에 답답했습니다"라고 이씨는 당시 심정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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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 화재서 타인 구한 의인 이재만 씨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씨는 연기가 차오르며 숨이 가빠지자 타올에 물을 묻혀 얼굴을 감싼 채 바닥에 엎드렸다가 눕기를 반복했다.

겨우 힘을 낸 그는 욕실 바깥 탈의실 상황을 살피다 불길이 보이지 않자 뛰쳐나와 남탕 입구를 통해 간신히 대피했다.

이씨는 연기를 많이 흡입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함께 갇힌 손님이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다가 크게 다친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경찰 관계자는 "자칫 수십명이 목숨을 잃을 뻔했지만, 이씨의 헌신으로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사고 조사 결과 불은 남탕 입구 구둣방 안 콘센트의 전기적 요인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화재 진압 후 부상자와 목격자 등 진술을 통해 이씨의 의로운 행동이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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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 화재서 타인 구한 이재만 씨
[연합뉴스 자료사진]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다"고 했지만, 보건복지부는 지난 6월 그를 의상자로 인정했다.

의상자는 직무 외 행위로 다른 사람 생명 또는 신체를 구하기 위해 생명과 신체 위험을 무릅쓰고 구조행위를 하다가 다친 사람을 말한다.

경찰청도 '용감한 시민상'으로 표창하며 고마움을 전했다.

"좋은 일을 하다가 오해를 살수도 있어요. 그래도 사람이 먼저입니다.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지기에 어려움에 부닥친 사람은 우선 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씨는 위기상황에서 누구나 망설이겠지만, 타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중요하다는 소신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기를 바랐다.

mtkh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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