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정상 간 회담 15개월만
일부 수출규제 완화, 청와대 "미흡한 수준" 평가…'화이트리스트 원상회복' 원칙 재확인
대화 성과 따라 일본 강제징용 배상 문제도 대화 테이블에 오를 듯
강제징용 문제 해결 등 근본적 관계 개선까지는 갈 길 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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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임철영 기자] 한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일본이 지난 7월부터 한국을 상대로 단행한 수출 규제를 일부 품목에 한해 완화하면서 경색됐던 양국 관계가 개선될 지 여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오는 24일 중국 쓰촨성(四川省) 청두(成都)에서 만난다.
정상간 회담이 약 15개월 만에 이뤄지는 만큼 단절된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일본의 전략적 의도로 풀이되지만 해결해야 과제 산적, 근본적 관계 개선까지는 갈 길이 먼 상황이다. 더욱이 일본이 전격 단행한 수출규제 완화 조치도 한국의 요구 수준에 턱없이 미달하는 탓에 회담 성과를 낙관하기 어렵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정상회담을 나흘 앞둔 20일 3가지 수출규제 품목 중 하나인 감광제(포토레지스트)를 ‘특정포괄허가’ 품목으로 지정했다. 일방적 수출규제 이후 3가지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중 하나인 ‘액체 불화수소’에 대해 지난달 15일 마지막으로 개별 수출 허가를 내준 이후 약 한 달 만에 나온 전격 조치다. 특정포괄허가는 일본 수출기업이 일정 기간 거래 상대방과 정상적인 거래 실적이 있으면 포괄적으로 수출허가를 내주는 제도로 4단계로 구성된 수출조치인 일반포괄허가~개별허가 중간 수준의 규제다.
한국 정부는 ‘미흡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청와대는 최근 진행된 실무자급 협상을 거쳐 나온 결과가 아닌 일본 정부 스스로 취한 조치로 근본적인 해결 방안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원칙을 바꾸지 않고 수출규제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등 문제에 대응해온 그간의 태도를 재차 강조한 것이다. 한국 정부는 일방적인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를 완전히 철회(화이트리스트 원상회복)해야 지소미아 연장 등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홍익표 민주당 수석대변인도 21일 논평을 통해 "일본 정부의 자발적 완화 조치로 대화 의지를 보였다는 점은 바람직하지만 근본적 해결방안으로는 여전히 미흡하다"면서 "부당한 수출규제 조치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소모적 갈등을 계속하는 것은 한국과 일본 어디에도 도움이 안 된다"고 평가했다.
◆조건부 종료 연장된 ‘지소미아’ 갈등, 진전 이룰까= 일각에서는 일본의 감광제 특정포괄허가 품목 지정 조치가 한일 정상회담에 임박해 나온 만큼 대화를 통한 관계 진전 의지를 드러낸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한국의 지소미아 종료 연기 이후 일본 총리관저를 중심으로 수출규제 3개 품목 중 일부의 규제를 완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아베 총리의 최대 관심사는 한국의 지소미아 연장 여부다. 화이트리스트 원상회복이라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한국 정부도 지난달 지소미아 종료를 조건부 연장하면서 한일간 대화의 창구를 연만큼 정상회담을 통한 진전을 기대하는 모양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일본의 수출규제 완화 조치 이후 “일부 진전으로 볼 수 있으나 근본적인 해결 방안으로는 미흡하다는 것이 우리의 평가”라며 여지를 남기기도 했다.
앞서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 역시 브리핑을 통해 “양국관계의 어려움에 비춰 개최 자체가 큰 의미가 있다”면서 “지난달 4일 태국에서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 정상 간 환담에 이어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대화의 동력을 유지하고 한일 관계 개선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언급했다. 정상끼리 만나면 항상 진전이 있기 마련이고 이번 일본의 수출규제 완화 조치가 긍정적 신호일 수 있다는 관측과 분석도 이어졌다. 김현아 자유한국당 원내대변인은 "지소미아를 파기하지 않은 것에 따른 긍정적인 결과"라며 "주변국과의 협력 방안이 개선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평가했다.
◆일본 강제징용 해법 논의 가능성= 지난해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두고 정상 간 대화가 이뤄질 지도 관심이다. 지소미아-수출규제-일본 강제징용 배상 판결로 이어지는 현안은 서로 떼어낼 수 없는 외교적 사안인 탓에 강제징용 관련 문제 역시 이번 정상 간 대화 진전 정도에 따라 다뤄질 가능성이 있다. 청와대는 “가장 중요한 것은 대법원 판결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일본의 의제로 삼을 가능성이 있는 만큼 일정한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다만 해결에 속도를 내기에는 어려움이 따를 전망이다. 청와대는 대법원 판결 존중이라는 원칙과 함께 문희상 국회의장이 내놓은 강제동원 해법 ‘1+1+α(알파)’안에 대해서도 ‘피해자 의견’이 우선이라는 기존 태도를 유지했다. 문 의장이 제안한 안은 한국과 일본의 기업과 국민들의 자발적 성금으로 기금을 조성해 피해자에게 위자료를 지급하자는 내용이 골자다.
문 의장이 제시한 안은 특히 시민단체의 반발을 사고 있다. 시민단체는 해당 안이 가해국인 일본에게 면죄부를 부여하는 안으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인정도 전제 돼있지 않다고 비판하고 있다. 강제동원공동행동, 정의기억연대 등 관련 시민사회단체는 지난달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를 방문해 문 의장에게 항의 서한을 전달하기도 했다.
일본 정부 역시 여전히 맞서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역시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상간 기탄없는 의견교환은 매우 중요하다”면서도 “정부의 방침은 1965년 일한 청구권 협정이 전부”라고 강조했다. 문 의장의 법안에 대한 직접적 언급을 피하면서 원칙 고수 입장을 밝힌 것이다.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한일 정상회담에서 일본 아베 정부는 역사 문제에 대한 진실한 태도와 함께 수출규제 원상회복 등 관계 회복을 위한 논의 과정에 진지하고 성실하게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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