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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대룡시장…추억을 담고, 청년 시장으로 거듭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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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대룡시장…추억을 담고, 청년 시장으로 거듭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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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혁, 역대 최장 필리버스터 기록 경신…17시간 12분 돌파
강화도에서 서쪽으로 다리를 하나 더 건너가면 교동도가 나온다. 이 교동도 안에 자리한 대룡시장은 수십 년 시간이 이곳을 비켜 지나간 듯 1960년대의 모습과 감성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다. 중장년층에게는 추억을 되짚을 수 있는 장소로, 청년들에게는 경험해 보지 못한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하는 강화도 여행 명소가 되었다. 교동도 대룡시장을 소개한다.

시장 골목에 추억의 말타기 놀이를 생동감 있게 재현해 설치한 작품.

시장 골목에 추억의 말타기 놀이를 생동감 있게 재현해 설치한 작품.


교동도란 섬 이름이 요즘 자주 들려왔다. 지도를 찾아보니 강화도 서북쪽에 있는 작은 섬인데, 그동안 배를 타야 들어가고 군사 분계선이 가까워 검문을 거쳐야 해서 왕래가 드물던 곳이다. 몇 년 전 ‘교동대교’가 완공되면서 교동도가 ‘평화의 섬’, ‘시간이 멈춘 섬’으로 세간의 화제를 불러 모으고 있다. 자료를 찾아보니 교동도는 47㎢ 면적에 약 3000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작은 섬이다. 행정 구역상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이고, 대룡리와 읍내리를 비롯해 17개 리를 품고 있다. 고려 충렬왕 때 안향이 원나라에 다녀오면서 처음으로 공자 초상을 갖고 와 모셨다는 향교가 여전히 남아 있긴 하지만, 다른 지역처럼 향교가 있어 지명이 교동이 된 것은 아니다. ‘높을 교喬, 오동나무 동桐, 섬 도島’의 한자 이름으로, 신라 시대부터 이 지명이 내려왔다. 키 큰 오동나무가 많았나 보다 하고 짐작된다.

원래 강화도는 역사적으로 유배지나 피난지로 자주 거명된 곳이다. 고려 시대에는 몽골족의 공격에 도읍을 강화도로 옮기고 40여 년을 항쟁했고, 조선 시대에는 병자호란 때 조선 조정이 강화도로 피난을 도모하다가 청나라가 강화도로 가는 요로를 봉쇄하자 남한산성으로 급히 인조의 피난처를 옮기기도 했다. 서울과 가깝고 섬이라 접근이 어렵다는 점 등이 유사시에 강화도를 선택하는 이유였다.

‘어서 오시겨’라며 환영 인사를 크게 써 붙인 교동도 대룡시장 입구.

‘어서 오시겨’라며 환영 인사를 크게 써 붙인 교동도 대룡시장 입구.


강화도에서도 더 서쪽인 교동도 역시 그런 이유로 왕과 왕족의 유배지로서 역사가 깊다. 연산군과 광해군 등 많은 대군과 옹주가 이곳에 유배되었다. 특히 연산군이 중죄인에게 내리는 ‘위리안치圍籬安置’라는 형을 받아 탱자나무 담장 안에서만 지냈던 유배지로 가장 유명하다. 1950년 6.25전쟁 이후 북에서 월남한 1500여 실향민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군사 분계선이 멀지 않은 이곳에 잠시 짐을 풀었다가 결국 눌러앉으며 삶의 거처로 삼은 곳이기도 하다. 살면서 고향 황해도에 있던 연백시장처럼 시장도 하나 만들어 생필품을 거래했다.

서해의 거친 파도가 밀어닥치는 섬으로 자연 환경도 녹록지 않은데, 역사적으로도 파란만장한 시간을 겪어 온 곳이 바로 교동도다. 군사 분계선이 가까워 민간인 출입 통제 구역이었던 데다 강화도에서도 다시 배를 타고 물을 건너야 닿을 수 있어 특별한 일이 있는 이들이나 이곳을 드나들었다. 일반인 출입이 쉽지 않았고 타 지역과 교류가 많지 않아 다른 지역에 비해 발전도 더뎠다. 섬 사람들은 섬 안에서 조용히, 천천히 지냈다.

▶교동대교를 타고 시간을 비켜 간 대룡시장으로


원래의 좁은 골목을 넓히지 않고 그림과 시로 벽을 장식해 아기자기한 느낌을 유지했다.

원래의 좁은 골목을 넓히지 않고 그림과 시로 벽을 장식해 아기자기한 느낌을 유지했다.


2014년에 교동대교가 완공되면서 일반인들이 섬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자동차로 1시간이면 도착하는 곳에 교동도가 있다. 수십 년 세월이 비켜 간 듯한 섬의 모습에서 외지 사람들은 추억을 찾아냈다. 특히 실향민들이 하나둘 모여서 고향인 황해도 연백의 시장처럼 만든 대룡시장은 좁은 골목을 따라 미장원과 이발관, 정육점, 전파사, 신발 가게들이 오래 전 모습 그대로 어깨를 대고 있다.

연백에서 먹던 떡을 그대로 만들어 파는 떡집도 있고, 참기름 향이 문을 넘어 흘러나오는 떡 방앗간도 있다. 실향민 할아버지가 시작한 이발관의 표시등은 여전히 돌아가고, 오래된 교동극장의 ‘미워도 다시 한 번’ 영화 간판은 퇴색한 채 붙어 있다. 잡화상 같아 보이는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면 90세에 가까운 작은 체구의 할머니가 노란 고무줄, 옛날 상표가 붙은 속옷 등 물건이 가득한 가게 안에 그림처럼 앉아서 손님을 맞는다. 그냥 나오기 뭣해서 UN성냥 하나를 3000원에 사서 들고 나온다. 교동도의 쌀을 판매하는 교동은혜농장 벽에는 이승만 대통령부터 노무현 대통령까지 역대 대통령의 선거 포스터도 나란히 붙어 있다. 시계방이 있던 곳에 수리공 모형을 만들어 옛 흔적을 보존하는 방법도 눈에 띈다.

관광객들이 오기 시작하면서 강화군은 시장을 정비하며 골목마다 추억을 되살려 주는 벽화를 그렸다. 뻥튀기 장수 앞에서 귀 막고 있는 아이들 그림, 오줌을 싸서 키 쓰고 이웃집에 소금 꾸러 간 아이 그림, 배 아픈 아이의 배를 문질러 주는 엄마 그림 등 골목을 따라 그림과 이야기가 이어진다. 어르신들은 골목을 여기저기 구경하며 어린 시절의 추억에 빠져 목소리를 높이며 먼지 쌓인 기물들에 반가움을 표한다. 청춘들은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보던 물건과 촌스럽다고 생각했던 글씨체의 간판들이 신기하다며 그 앞에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역대 대통령 선거 포스터를 붙여 놓은 ‘교동은혜농장’의 벽.

역대 대통령 선거 포스터를 붙여 놓은 ‘교동은혜농장’의 벽.


교동대교가 열리고 대룡시장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알쓸신잡’과 ‘다큐 3일’ 같은 TV프로그램에 등장한 대룡시장을 찾아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SNS에는 #교동도대룡시장 #추억여행 #70년대감성 #교복여행 #이북식강아지떡 등의 해시태그를 달고 대룡시장의 ‘낡은’ 모습들이 올라왔다. 주말이면 관광객이 너무 많아 북새통이란 댓글도 많이 달렸다. 시장이 북적거리기 시작하면서 구석구석 새로운 가게도 하나둘 생겼다. 참신한 아이디어로 젊은 상인들이 시장에 들어온 것. 이들은 본래 시장의 정서를 반영해 노포들과 어우러지는 모습과 콘셉트로 가게 문을 열었다. 대룡시장을 지켜 온 어르신의 자제들이 그 자리에서 다른 가게를 시작하기도 하고, 1970년대 스타일을 고스란히 유지한 가게도 많다.

발아현미찐빵, 전과 막걸리, 뚱이호떡 등 추억을 불러 일으키는 음식들이 골목 곳곳에서 맛있는 냄새를 풍긴다.

발아현미찐빵, 전과 막걸리, 뚱이호떡 등 추억을 불러 일으키는 음식들이 골목 곳곳에서 맛있는 냄새를 풍긴다.


일단 입구부터 먹을 것 천지다. 발아현미로 만든 찐빵을 시작으로 교동도의 쌀과 현미로 만든 한식 과자인 과즐과 유과, 오란다를 파는 ‘아리곳간’, 모듬전에 막걸리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전과 막걸리’, 방송에 여러 번 등장한 추억의 먹거리인 호떡을 파는 ‘뚱이호떡’이 이어진다. 완도산 미역을 별 모양으로 담아 건조한 ‘스타미역’과 딱새우로 국물을 내는 ‘바다가재새우 다시팩’을 파는 ‘별별마켓’도 보인다. 1960년대 교복을 빌려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교동스튜디오’, 팝 아트 자화상 체험장이 된 ‘거북당’ 등 재미있는 콘셉트에 놀라 구경하느라 세 걸음을 옮기기가 어렵다. 2m도 못 가서 까르르, 5m도 못 가서 뭘 먹느라 냠냠 쩝쩝 소리로 골목 안이 가득하다. 중년들은 먹고 떠드느라, 주부들은 장볼 것 챙기느라, 청년들은 사진 찍느라, 주말이면 대룡시장 골목은 꽉꽉 미어터진다.

옛날 서체로 쓴 간판을 그대로 두어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교동이발관’

옛날 서체로 쓴 간판을 그대로 두어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교동이발관’


신생 카페지만 나무판에 손글씨로 메뉴를 쓰고 아날로그 감성으로 카페를 꾸며 대룡시장 노포들과 잘 어우러진다.

신생 카페지만 나무판에 손글씨로 메뉴를 쓰고 아날로그 감성으로 카페를 꾸며 대룡시장 노포들과 잘 어우러진다.


교동대교를 건너온 이들이 가장 먼저 들르는 곳은 고구저수지다. 사계절 낚시가 가능해 낚시꾼들이 참붕어나 잉어, 가물치를 잡으러 오고, 여름이면 저수지 가득 연꽃이 피어 지나다 사진을 찍으러 차를 멈추는 곳이기도 하다. 교동도 웰컴센터인 ‘교동제비집’에 들러 교동도에 대한 360도 VR영상 체험과 북한 황해도 풍경을 구경한 후 이곳에서 자전거를 빌려 교동도의 평화나들길 코스 투어를 해 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다. 보통 관광객들은 대룡시장으로 들어가 추억 여행을 시작한다. 시장에서 추억의 먹거리, 사진 찍기 등을 마치면 근처 조선 후기부터 사용해 왔다는 한증막을 구경한 후 역사 책이나 영화에 많이 나오는 연산군 유배지로 향한다.


희대의 폭군으로 유명한 연산군 유배지에서 서로 역사 지식 자랑을 하고 나면 근처의 교동향교로 향한다. 고려 충렬왕 때 안향 선생이 원나라에서 돌아오는 길에 최초로 공자상을 들여와 모신 곳으로 지금도 공자의 신주와 유학자들의 위패를 모시는 대성전, 유생들이 공부하던 명륜당, 기숙사, 제수용품을 보관하는 제기고 등이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28호로 잘 보존되어 있다. 바다 쪽으로 가서 교동읍성을 구경해도 좋다. 조선 인조 때 삼도수군통어영의 본진으로 경기수영을 설치하면서 3개의 성문을 만들고 성곽을 축조했으나 전쟁 통에 다 무너지고 현재는 개축한 남문과 성곽의 흔적만 남아 있다.

실향민 2, 3세대 가족이라면 교동도의 가장 서북쪽 율두포에 만든 망향대에 들러도 좋다. 남북 분단 이전에는 교동도와 황해도 연백군은 한나절 뱃길로 왕래했을 정도로 가깝다. 황해도에서 피난민들이 가장 빨리 도착한 남한이 교동도인 이유다. 지금도 날 좋으면 황해도 연백 땅이 손에 잡힐 듯 보이는 지척이라 실향민들은 해마다 명절이면 이곳에서 제사를 지낸다. 고향을 그리는 어르신들 모시고, 조부모님의 고향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들르면 좋겠다.

▶추억에서 미래를 꿈꾸는 곳

주말마다 많은 사람들이 찾던 교동도 대룡시장은, 지난 가을, 아프리카 돼지열병이 확산돼 외지인들의 강화군 방문 자제를 권고하는 기사가 나오면서 방문객의 발길이 뚝 끊어졌다. 강화군은 군내에 있는 돼지 3만여 마리를 모두 살처분하고 나서도 이후 한 달간 외지인 방문을 자제시켰다. 외지인 출입이 허용된 늦가을, 대룡시장은 예전보다 조용했다. 황해도식 강아지떡으로 유명한 ‘청춘부라보’ 앞에서 만난 90세의 최봉열 할아버지는 조용한 시장 분위기에 개의치 않고 지난 수십 년간 살면서 체득한 것처럼 씩씩하게 가게 앞에 서서 이북식 인절미인 ‘강아지떡’을 맛보라고 끝없이 권하신다. 죽을 각오로 월남해서 천막집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하루도 편한 날은 없었다며, 열심히 하면 다 괜찮아질 거라며, 다시 강아지떡 홍보에 목청을 높이신다.

90세 할아버지의 목소리에 힘을 얻는 곳, 아버지가 쇠를 녹이던 곳에서 원두를 갈아 부드러운 커피를 내리는 중년이 있는 곳, 어릴 적 말타기의 추억을 떠올리며 아이에게 말타기 놀이를 설명하는 젊은 아빠와 아이의 웃음소리가 있는 곳, 교동도의 대룡시장은 오래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오늘 가장 뜨거운 곳이다.

교동 시장 내 핫 플레이스

철물점이 변했어요, 커피콩이발소


시장 초입에 멀끔한 카페가 눈에 띈다. 추억 여행 하러 온 이들에게는 생경할 정도로 세련된 카페다. 1시간 남짓 달려온 이들이 커피 생각에 카페 문을 반갑게 연다. 중년의 인상 좋은 부부가 손님을 맞는다. 카페 벽에는 오래된 철제 도구들이 걸려 있다. 한쪽 벽 위에 뚫린 창문으로 보이는 사각 하늘 아래 ‘대룡철물’이란 철제 간판이 붙어 있다. 이 자리에서 50년간 철물점을 운영해 온 부모님의 간판이라고 사장님이 설명한다. 서울에서 회사원이던 사장님 부부가 제2의 인생을 시작하고자 고향으로 내려와 철물점을 물려받아 카페를 시작했다고.

바리스타 공부를 했고 반 년쯤 해 보니 카페 운영이 쉽지는 않지만 보람이 있다며 직접 내린 커피와 함께 옆 가게에서 파는 유과를 한 그릇 듬뿍 담아 주신다. 카페에는 교동도에서 수확한 햇땅콩, 옆 가게의 강정도 함께 진열해서 시식과 판매를 겸하고 있다. 대룡시장 상인들은 오랫동안 알고 지내는 사이라 함께 잘되자는 마음으로 서로 돕는다고 한다. 새 인생을 시작한 사장님이 내려 주는 커피 맛도 구수하지만, 대룡시장 인심이 더 구수한 것 같다.

-주소 인천 강화군 교동면 대룡안길54번길 43

-메뉴 아메리카노 3000원, 유자차 4000원, 딸기스무디 5500원

쌍화차 성지, 교동다방


대룡시장 안쪽 골목에 자리한 교동다방은 쌍화차로 유명하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지붕을 개량하던 그 시절처럼 하늘색 지붕에 주황색 테두리를 두른 신식 주택 모습의 다방은 옛날식 꽃집인가 싶게 담쟁이 식물과 작은 화분이 즐비하다. 벽에는 ‘들어오시겨’, ‘컴백 다방으로’, ‘에어컨 빵! 빵!’ 등 손으로 쓴 홍보 문구와 쌍화차에 관한 시가 붙어 있다. 쌍화차 맛집임이 분명하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잠시 실내 상황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다방에 왔던 이들이 A4 용지에 쓴 방명록이 주렁주렁 천장에 걸려 있다. 벽에도 겹겹이 붙여서 도배지가 필요 없을 정도다.

쌍화탕을 주문하고 십여 분 정도 지나 차가 나왔다. 몸에 좋다는 한약재를 여러 가지 넣고 직접 끓인 쌍화탕을 잔에 따르고 가평산 잣을 듬뿍 올린 뒤 한가운데 계란 노른자를 동그랗게 띄우면 끝. 약탕기 빛깔의 고동색 찻잔 받침에는 연잎 무늬가 그려져 있다. 아주 정성껏 차를 준비하는 느낌이다. 50년 전부터 자신만의 비법으로 쌍화차를 만든다는 사장님은 쌍화차가 유명해져 다방에 손님이 많으니 좋으시겠다고 하자 무슨 일이든 쉬운 게 없다며 계란 노른자를 가운데 동그랗게 띄우려고 별의별 방법을 다 써 보고 깨우쳤다고 자부심을 듬뿍 담아 자랑하셨다. 뜨거운 쌍화탕에 계란은 금세 반숙 상태가 되어 차를 마시면 부드럽게 목을 타고 넘어간다. 쌀쌀해지는 겨울, 시장 구경하다가 들러서 마시면 추위도 가시고 피로도 풀리겠다.

-주소 인천 강화군 교동면 대룡안길54번길 44-10 -메뉴 쌍화차 6000원

이북식 강아지떡집, 청춘부라보


교동도에 가면 꼭 먹어야 하는 게 있다. ‘이북식 강아지떡’이다. 일제 강점기에 곡창으로 유명한 황해도 연백평야에서 수확한 곡식을 군량미로 수탈 당하지 않으려고 일본인들 눈을 피해 만들기 시작한 떡이다. 찹쌀 반죽에 팥을 넣고 콩가루를 입혀 만든 인절미인데, 이름을 강아지떡이라 붙였다. 떡을 만들어 나란히 붙여 놓으면 갓 태어난 강아지들이 살을 맞대고 누워 있는 모양 같아 붙은 이름이라고.

실향민들 사이에서만 전해 내려오던 강아지떡을 2세 실향민들이 뜻을 모아 ‘청춘부라보’라는 사랑방을 만들면서 이곳에서 강아지떡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90세의 최봉열 할아버지를 비롯해 이미 80세가 넘은 실향민 1세대들은 이 사랑방에 모여 떡도 만들고 고향 이야기도 나누며 지낸다. 월남해서 가진 것 없이 교동도에 뿌리를 내리던 시절의 눈물겨운 이야기는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이곳에서 2세들을 중심으로 ‘북한 음식 만들기 체험’도 진행하고, 밀려드는 강아지떡 주문에 맞춰 모두가 힘을 모아 떡을 만들고 판매한다. 강아지떡 외에 교동도에서 수확한 들깨로 만든 강정도 인기 상품이다. 실향민들이 농사지은 농산물도 함께 판매한다. 관광객들은 여기서 산 강아지떡을 먹으며 대룡시장 구경을 하고, 집에 돌아갈 때는 또 여러 팩 사서 들고 가니 교동도에게 강아지떡은 진정한 효자 상품이다.

-주소 인천 강화군 교동면 대룡안길54번길 32 -메뉴 강아지떡(4개 1팩) 5000원

[글과 사진 신혜연(헤이컴 대표, 콘텐츠 기획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09호 (19.12.24)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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