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민생법안' 고리로 일단 국회 정상화…선거법·공수처 입장차 '여전'
예산안 놓고 신경전…"합의 불발시 4+1案 처리" vs "합의돼야 필리버스터 철회"
손잡은 국회의장과 3당 원내대표 |
(서울=연합뉴스) 홍정규 김동호 기자 = 내년도 정부 예산안과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오른 선거법 개정안·검찰개혁 법안을 둘러싸고 극한 대립으로 치닫던 여야는 정기국회 종료 하루 전인 9일 예산안과 민생법안 처리에 합의하며 정면충돌을 가까스로 피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을 빼고 예산안과 쟁점 법안의 일방처리를 강행하는 데에 부담을 느껴온 데다, 한국당도 마찬가지로 협의 테이블에서 완전히 배제되는 것은 실익이 없다고 판단한 결과로 보인다.
여야가 급한 불은 껐지만, 정기국회 이후로 상정을 보류한 선거법과 검찰개혁 법안에 대한 논의가 순탄히 이어지기는 어렵다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민주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신설에 동의만 한다면 한국당과의 유연한 협상에 나설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한국당은 이들 법안을 '2대 악법'으로 규정하고 총력 저지한다는 방침에서 물러서지 않는 등 커다란 간극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예산안과 민생법안 처리를 고리로 시간을 번 한국당이 패스트트랙 법안에는 강경 태세로 나설 가능성이 점쳐지는 가운데, 민주당은 언제든 '4+1'(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협의체의 수정안으로 표결에 나설 수 있다는 방침이어서 대치 정국은 쉽게 해소되지 않을 전망이다.
당장 민주당과 한국당은 합의 4시간여만에 예산안 처리와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철회를 놓고서 첨예한 신경전을 벌였다.
한국당이 오후 의원총회에서 교섭단체 간사간 합의가 필리버스터 철회의 선결 조건이라고 방침을 정하자, 민주당은 이에 '심각한 유감'을 표하면서 합의 불발시 4+1 수정안을 표결하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발언하는 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 |
민주당은 이날 한국당 심재철 신임 원내대표의 필리버스터 철회 방침으로 일단 협상 국면이 열렸다고 평가하는 분위기다.
제1야당을 완전히 배제하고 예산안과 선거법을 통과시킨 전례 자체가 드문 데다, 일방처리를 밀어붙였을 때 여론의 역풍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해왔기 때문이다.
그간 4+1 협의체를 가동하면서도 한국당의 테이블 복귀를 요구해온 것 역시 이런 차원에서다.
하지만 패스트트랙 법안은 근본적인 견해차로 인해 협상이 쉽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날 민주당은 한국당이 개혁법안 법안 논의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문희상 국회의장이 주재한 여야 3당 교섭단체 원내대표 회동 후 기자들과 만나 선거법과 공수처법 등 처리와 관련해 "내일까지의 정치 일정만 정리된 것"이라면서 "4+1 테이블도 여전히 작동한다"고 강조했다.
법정 처리시한(12월 2일)을 넘긴 예산안은 한국당과 함께 정기국회 내에 먼저 처리하되, 내년 총선 예비후보자 등록이 시작되는 오는 17일을 선거법 등 처리의 '마지노선'으로 삼고 협상한다는 방침이다.
군소 야당과의 공조를 통해 본회의 의결정족수(148명)를 확보해둔 만큼, 한국당이 '시간 끌기' 전략으로 나온다면 4+1 차원의 수정안을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당 원내 관계자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임시국회에 선거법이 상정된 상태에서 한국당이 필리버스터를 시도할 수도 있다"면서 "만일의 경우 4+1 협의체에서 가능한 모든 것을 정리해 표결을 시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원내대표 회동에서 합의한 예산안의 처리가 불발될 경우에도 4+1 수정안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이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에서 "합의가 안 돼 내일 예산안을 처리할 수 없을 것 같으면 (4+1) 수정안으로 처리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심재철, 한국당 새 원내대표 |
한국당은 심 원내대표의 결단에 따라 일단 예산안 논의부터 여야 협상 테이블에 복귀해 실익을 취하는 전략으로 방향을 튼 모양새다.
필리버스터 철회 문제는 오후 의총에서 의원들의 거센 반발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예산안 합의를 전제로 일단 보류했지만, 아예 이날 합의 자체를 파기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각 지역구 의원들의 사업 예산 반영 등 필요가 상존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 현실적 선택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더욱이 원내 세력 구도에 비춰봐도 패스트트랙 법안 등 협상 참여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한국당 의석은 재적(295석)의 절반에 한참 못 미치는 108석이며, 문희상 국회의장도 민주당 출신이다. 법안 상정도 표결도 한국당 단독으로는 저지가 불가능하다.
나경원 전 원내대표 체제에서 시도했던 필리버스터 전술 역시 민주당이 '쪼개기 임시국회' 소집으로 얼마든지 무력화할 수 있는 것으로 판명이 났다.
심 원내대표가 오전 원내대표 선거 투표 직전 "우리는 소수다. 민주당이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현실 앞에서 협상을 외면할 수만은 없다"며 "투쟁하되, 협상을 하게 되면 이기는 협상을 하겠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다만 한국당은 이날도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및 공수처 설치에 대한 총력 저지 의지를 다졌다.
황교안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신임 원내대표단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2대 악법을 저지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심 원내대표도 의총에서 "공수처법과 연동형비례제 선거법은 악법"이라고 밝혔다.
한국당은 심 원내대표의 '이기는 협상' 방침에 따라 현재 패스트트랙 협상의 중심축인 4+1 협의체의 힘을 빼는 데에 먼저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선거법 등을 둘러싼 민주당과 군소 야당들의 셈법이 제각각이라는 점에서 이 틈을 벌리고 들어가 협상에서 주도권을 잡으려고 시도할 것으로 관측된다.
d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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