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 무료 주택 제공은 '기부행위' 지적…교육청, 계획 수정 지시
화순 아산초등학교 |
(화순=연합뉴스) 천정인 기자 = 전학을 오는 학생 가족에게 집을 제공한다는 소식에 큰 호응을 얻었던 전남 작은 시골 학교의 계획이 행정 기관의 경직된 법 해석으로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화순교육지원청은 최근 화순 아산초등학교에 '전학생 가족에게 무료로 집을 제공하려는 계획을 취소하라'는 지침을 내렸다고 9일 밝혔다.
언론 보도를 통해 아산초의 소식을 접한 화순군 선거관리위원회가 "공직선거법상 기부행위에 해당한다"고 지적한 데에 따른 것이다.
사실상 공짜와 다름없이 집을 제공하면 선거법에서 금지하는 기부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선거법상 단체장은 선거구민이나 연고가 있는 사람에게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지 못하도록 규정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화순교육지원청은 학교 주택 부지를 화순군에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군은 매입에 난색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화순교육지원청은 제공 주택의 건물 가액 등을 고려해 학부모에게 월 60만원의 사용료를 받을 것을 학교 측에 지시했다.
이를 두고 학교와 학부모 측은 "비싼 월세를 받는다면 누구도 전학을 오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 학부모는 "월세 60만원을 내면서까지 누가 시골로 이사 오려고 하겠느냐"며 "전학을 오지 말라고 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법 조항을 유연하게 해석하면 계획을 추진할 수 있는데도 기계적으로 원칙만 따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선거법에서는 '긴급한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자체 사업계획과 예산을 사용할 경우' 예외적으로 기부행위를 허용하고 있다.
실제 구례군 청천초등학교는 아산초와 비슷하게 6가구 주택을 지어 사실상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구례교육지원청 관계자는 "농촌 인구 유입은 자치단체의 긴급한 현안"이라며 "처음부터 학생 가족에게 제공하기 위해 지은 주택이어서 문제없이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산초도 마찬가지지만 화순교육지원청은 단호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아직 관련 조례나 규정이 만들어져 있지 않아 선거법 예외 조항을 적용하기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공익을 위해 적극적인 행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호균 전남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공익과 공공의 가치를 높이는데 기여를 한다면 법규를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적극 행정이 필요하다"며 "인구 절벽, 인구 소멸 위기에 처해있는 농촌의 사정을 고려하면 사후에 지침이나 규정을 만들더라도 당장 못하게 할 이유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법규는 영원불변하는 가치가 아니기 때문에 공동체를 위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제·개정할 수 있는 것"이라며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적극적인 법 해석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화순 아산초등학교 전경 |
앞서 아산초는 사용하지 않은 관사를 허물고 전학생 가족에게 사실상 무료로 집을 제공한다는 계획으로 2가구 주택을 짓고 있다.
전교생이 26명에 불과해 통폐합 위기에 놓인 아산초가 마련한 자구책이었다.
자연을 벗 삼아 교육할 수 있는 시골 학교로 전학을 희망하면서도 정작 지낼 곳이 마땅치 않아 전학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다.
실제 학교에서 집을 제공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인접한 광주는 물론 경기와 서울, 캐나다 등에서 전학을 원하는 학부모들의 문의가 빗발쳤다.
i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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