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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국회와 패스트트랙

민주당 패스트트랙과 한국당 필리버스터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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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당, 법안 저지엔 성공… 여론전에선 민주당에 패배



12월 초 여야 국회의원실에서는 난데없이 ‘국회법’이 주요 연구대상이 됐다. 지난 11월 29일 자유한국당이 국회 본회의에 앞서 199건의 법안에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신청하면서부터다. 허를 찔린 민주당은 의원실마다 예산안·선거법·검찰개혁 관련 법안·유치원 3법·민생법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묘안을 국회법에서 찾았다. 한국당 역시 민주당이 다음 차례로 꺼낼 카드를 예상하며 국회법을 꺼내 대응방안을 찾았다.

11월 29일 199개 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 ‘묘수’를 꺼낸 한국당은 결과적으로는 민주당의 패스트트랙 법안 통과 노력을 일차적으로 저지했다. 유치원 3법을 상정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첫 승리를 거둔 것처럼 보였다. ‘민식이법(도로교통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못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정치권에 온갖 비판이 쏟아졌다. 비판의 대부분은 한국당으로 향했다. 민생법안을 볼모로 국회를 마비시켰다는 비판에 직면한 것이다.

이날 필리버스터에 걸린 199개 법안 중에는 지역 현안으로 한국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포항지진특별법과 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이 20대 국회 1호 법안으로 내세운 청년기본법도 포함돼 있었다. 민주당의 한 의원 측은 “여야가 합의해 통과시키기로 한 약속을 깬데다, 무엇보다 자신의 당에서 발의한 법안까지 무제한 반대 토론을 하겠다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국당의 한 의원 측은 “처음에는 본회의에 올라온 법 중 한국당의 입장에서 봤을 때 문제가 있는 법안만 필리버스터를 제안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면서 “그런데 나경원 원내대표의 지도부가 199개 법안에 모두 필리버스터를 신청했다고 해서 놀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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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의원들이 11월 29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의 보장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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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3법, 본회의 상정조차 못 해

패스트트랙 법안을 저지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었다는 것이 정치권의 일반적인 해석이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한국당이 유치원 3법을 통과시키지 못하게 함으로써 전투에서 승리했으나, 국민 여론이라는 전쟁에서는 패배했다”고 말했다. 여론조사에서도 여론은 한국당에 비판적이었다. <오마이뉴스>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12월 3일 하루 동안 전국 성인 남녀 501명(응답률 5.4%)을 대상으로 필리버스터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 국회 마비의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정당으로 한국당을 지목한 응답은 절반을 넘은 53.5%였다. 민주당에 책임 있다고 한 35.1%보다 18.4%포인트 더 높게 나타난 것이다. 시대정신연구소 엄경영 소장은 “필리버스터는 19대 국회에서 민주당의 테러방지법 통과 반대처럼 국민의 공감이 전제로 깔려 있어야 효과가 있다”면서 “한국당 필리버스터는 20대에서 40대에 이르는 젊은 층에게는 비판만 불러일으켰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12월 2일 의원총회를 열어 향후 대책을 모색했다. 국회법을 충분히 검토한 후 마련한 대책들이 거론됐다. 이날 의총은 다른 때와는 달리 공개 발언이 길었다. 이날 의총에 참석한 한 의원 측은 “민주당의 향후 계획을 국민에게 공개해 떳떳하게 패스트트랙 정국에 임하자는 전략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민주당은 예산안과 예산 부수 법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킨 직후 패스트트랙 선거법 개정안을 상정하는 방안을 거론했다. 예산안과 예산 부수 법안은 필리버스터를 할 수 없다. 민주당은 이후 임시회를 계속 소집해 패스트트랙 법안을 하나씩 처리해갈 계획이다. 임시회는 3일 전에 소집을 요구하면 열릴 수 있다. 민주당은 한국당이 필리버스터를 포기하지 않는 한, 한국당을 제외한 4+1협의체(민주당·바른미래당 당권파·민주평화당·정의당+대안신당)에서 패스트트랙 법안을 합의해 통과시킬 계획이다. 다만 한국당과의 협상 테이블은 계속 열어놓고 있는 상태다.

원내 지도부가 사실상 공백 상태인 한국당은 아직 뚜렷한 대응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12월 9일 원내대표 선거에 주력해야 할 상황이다. 한국당 내부에서는 민주당의 패스트트랙 법안 통과 전략에 맞서 수정안을 계속 내는 방안이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패스트트랙 법안이 본회의에 상정되면 한국당이 여러 개의 수정안을 냄으로써 본회의 통과를 지연시킨다는 것이다.

예산안은 국회 예결위에서 감액과 증액 규모를 정하지 못한 채 필리버스터 정국에서 여당이 먼저 손을 놓은 상태다. 예산안은 12월 1일 본회의에 자동 부의되면서 예결위의 손을 떠났다. 예산안의 조정은 각당 원내대표의 손으로 넘어갔다. 한국당의 한 의원은 “예산안을 더 이상 논의하지 않음으로써 여당이 국회를 내팽개쳐 버렸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한국당이 협상에 응하지 않는다면 4+1협의체에서 예산안을 합의할 예정이다. 한국당의 한 관계자는 “예산 관련 법안도 수정안을 낼 수 있지만 문제는 예산을 걸고넘어지는 것이 과연 여론전에서 이길 수 있을까 하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예산과 달리 선거법과 공수처법은 반대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수정안을 내는 방안이 모색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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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5일 국회에서 패스트트랙 법안과 예산안을 다룰 ‘4+1’협의체 회동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의당 윤소하, 대안신당 유성엽,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민주평화당 조배숙 , 바른미래당 김관영. 권호욱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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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식이법 통과 못 하자 비난 쏟아져

민주당의 패스트트랙과 한국당의 필리버스터가 맞대결을 펼치게 되면서 20대 국회의 마지막 승부는 알 수 없는 여론전으로 빠져들고 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전선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정치권에서는 검찰발 청와대 의혹 사건과 패스트트랙 법안 통과가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 검찰 개혁법안 통과를 앞두고, 검찰은 청와대와 경찰의 6·13 지방선거 개입 의혹,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의 청와대 감찰 중단을 수사하고 있다. 한국당 의원과 변혁(바른미래당 비당권파 모임) 소속 의원들은 12월 3일 이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했다. 민주당의 이 관계자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때와 비교하면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전체, 민주평화당, 대안신당 등이 함께 비판의 목소리를 내야 하는 국면인데, 199개 법안 필리버스터 신청으로 한국당과 손을 잡을 정당이 없어져 버렸다”면서 “오히려 민주당이 예산안과 패스트트랙 법안을 내세워 다른 야당과 손잡고 있다”고 말했다. 199개 법안의 필리버스터 신청이 오히려 한국당을 스스로 고립시켰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당에 대한 맞대응으로서의 민주당 강경책에 대해서는 반대 의견도 있다. 한길리서처 홍형식 소장은 “한국당은 지금 고정층에 어필할 뿐 잃을 것이 없는 형국”이라면서 “한국당이 강경투쟁으로 민주당과 맞부딪쳐 두 당이 같이 진흙탕에 빠진다면, 손해는 오히려 민주당이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홍 소장은 “한국당의 강경책에 민주당이 말려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패스트트랙 법안을 놓고 벌이는 민주당과 한국당의 신경전은 법안 통과라는 ‘전투’와 총선 승리라는 ‘전쟁’을 앞두고 있다. 누가 전투에서 승리하고, 전쟁에서 승리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홍형식 소장은 “역대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처리해온 선거법을 민주당이 한국당을 배제한 채 4+1협의체를 통해 통과시키고, 나머지 패스트트랙 법안을 통과시킨다면 전투에서 이길 수 있을지 모르나 총선이라는 전쟁에서 승리는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엄경영 소장은 “한국당의 단식과 강경 투쟁은 지지율 상승보다 지지층 또는 내부 결집에만 효과가 있었다”면서 “민심과 관련해서는 한국당이 불리한 구조가 됐다”고 말했다.

윤호우 선임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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