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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울산, 한준 기자] 6년 전 그날보다 더 처참한 패배였다. 그때는 팽팽하던 0-0 상황에, 추가 시간의 '우당탕탕 골'로 실점해 불운했다는 말이라도 할 수 있었다. 2019년 12월 1일 울산종합운동장에서 울산 현대가 포항 스틸러스에 1-4로 패배한 하나원큐 K리그1 2019 38라운드는 전술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울산이 변명의 여지없는 완패를 당하며 우승컵을 놓쳤다.
앞서 11월 23일 전북 현대와 37라운드 경기에 이어 포항과 시즌 최종전에 울산이 보여준 경기력은 K리그 챔피언의 왕좌를 차지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설사 이날 전북이 강원을 꺾지 못해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더라도 칭찬받기 어려운 경기를 했다.
◆ 믹스없으니 빌드업 안 되고, 김태환없으니 돌파 안 되네
김도훈 울산 감독은 공격적인 경기를 하겠다고 했고, 부임 당시부터 줄곧 뒤에서부터 세밀한 빌드업을 하는 축구를 지향한다고 말했다. 포항과 경기에는 그 말에 부합하는 플레이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울산은 2019시즌 내내 선두 경쟁을 벌이는 데 전술적 열쇠가 됐던 중앙 미드필더 믹스 디스커루드와 라이트백 김태환이 경고 누적으로 출전하지 못하자 이빨 빠진 호랑이였다.
믹스가 없으니 중원에서 빌드업이 이뤄지지 못했고, 김태환이 없으니 측면에서 돌파가 안됐다. 울산 축구가 잘 될 때는 박용우가 후방 빌드업 기점 역할을 하고 믹스가 공을 운반한 뒤 김보경이 공격 작업을 마무리하는 키패스와 슈팅을 뿌리는 중앙 공격 루트가 견고했다. 이 중앙 공격은 좌측 윙어 김인성, 우측 풀백 김태환이 상대 수비 간격을 좌우로 벌려 놓고, 주니오가 문전에서 날렵한 결정력을 뽐내 시너지 효과를 냈다.
시즌 말미에 이르러 선수들이 체력적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나, 포항과 경기에서 울산은 중앙 지역으로 제대로 패스를 연결한 플레이가 거의 나오지 못했다. 포항이 2-1로 리드한 뒤 체력 소모를 겪고 전방 압박의 강도를 낮추고 나서야 전방으로 공 투입이 됐다. 그 전까지는 박용우가 포항 전방 압박 그물에 갇혀 공을 받지 못하면서 수비 라인에서 무의미한 롱패스를 전방에 보냈다가 차단되고 포항의 공격을 당하는 패턴이 반복됐다.
울산은 이날 이명재, 불투이스, 윤영선, 정동호를 포백으로 세우고 박주호와 박용우를 허리에, 원톱 주니오 뒤에 김인성, 박정인, 김보경을 배치한 4-2-3-1 포메이션으로 경기했다. 포항은 일류첸코 원톱에 송민규, 팔로세비치, 완델손을 2선에 배치하고 최영준과 정재용이 수비형 미드필더로 포백 심상민, 김광석, 전민광, 김용환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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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방 압박으로 주도권 잡은 포항, 라인 내리고 뻥축구한 울산
똑같은 4-2-3-1 포메이션이었으나 자세는 판이하게 달랐다. 송민규는 "경기 시작 전부터 김기동 감독님께서 우리는 무조건 앞에서 한다. 공격적으로 한다고 하셨다"며 이날 경기 전략을 설명했다. 실제로 원톱 일류첸코가 울산 센터백 라인을 누르고, 그 뒤에서 송민규와 팔로세비치, 심지어 완델손까지 울산의 풀백과 센터백, 그리고 박용우를 괴롭히며 패스 전개가 이뤄지지 못하게 압박했다.
이 네 명의 공격수들이 압박하면 좌우 풀백 심상민과 김용환이 함께 따라 올라와 중앙이 막히면 측면으로 공을 빼려 할 울산의 패스 전개를 앞에서 차단했다. 이 둘의 전진은 최영준과 정재용이 두 센터백을 보호하며 배후 안정성을 확보했다. 두 센터백 중 한 명이 상황에 따라 전진 수비를 해도 이 둘이 적절히 커버했고, 때론 둘 중 한 명이 측면 압박을 지원하기도 했다.
포항은 압박 구조가 촘촘했고, 울산은 후반 중반까지 포항의 압박을 흔들지 못했다. 전반 36분 김보경의 스루 패스에 이은 주니오의 득점 과정이 포항 중원 수비를 통과했는데, 김광석이 수비로 전환하다 미끄러지는 실책이 발생하며 내준 기회였다.
울산은 전반 27분 선제 실점할 때까지 포항의 전방압박에 철저히 고전했다. 포항의 전방압박은 결국 팔로세비치가 패스할 곳을 찾지 못해 당황한 수비수 윤영선의 공을 빼앗은 뒤 송민규에게 패스, 송민규의 슈팅이 불투이스를 맞고 문전 오른쪽으로 진입한 완델손에게 배달되어 선제골이라는 성과로 이어졌다.
선제 실점 이후 울산의 후방 빌드업은 더욱 위축됐다. 포항과 달리 울산은 수비 라인을 내린 채 경기했다. 공 소유권이 없을 때 하프라인 부근에서 수비했다. 주니오는 간헐적으로 전방 수비를 펼치고자 뛰었으나 일류첸코를 기점으로 타이트하게 압박 그물을 형성한 포항과 달리 김인성, 박주호, 박정인, 김보경이 하프라인을 전후로 진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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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측면 1대1 싸움도 포항이 완승, 몸이 무거워 보였던 울산
포항의 수비 라인은 견제 없이 공을 주고 받으며 자신감을 쌓았다. 사이드로 전환됐을 때, 측면에서 1대1 대결도 포항이 이겼다. 김인성과 김보경의 뒤는 쉽게 통과됐고, 정동호와 이명재는 송민규, 완델손과 경합 상황에서 여러번 졌다.
박용우가 공을 거의 지키지 못한 반면, 최영준과 정재용은 공을 지키고 뿌리는 데 있어서도 더 능숙하게 경기했다. 울산의 전방 수비가 낮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두 선수가 워낙 노련하고 자신있게 경기했다. 이 점은 경기 결과에 대한 부담이 없는 포항 선수들이 가진 심리적 우위 때문일 수도 있다.
울산은 수비 라인을 내리는 대신 포항 선수들의 전진을 유도해 속도에 장점이 있는 공격진을 활용한 역습 공격을 준비했다. 그래서 거듭 롱패스를 통해 공격했는데 정확성이 현저히 떨어진 것은 물론 세컨드볼 확보 경쟁에서도 완패했다. 제한된 인원만 전방으로 보내니 포백에 두 명의 견고한 수비형 미드필더를 배치한 포항과 공 다툼에서 경쟁력을 보이지 못했다.
포항은 세트피스 상황에서도 울산보다 날카로웠다. 일류첸코의 공격자 파울로 무효화된 전반 39분 완델손의 프리킥 크로스에 이은 공격 상황도 골에 가까웠다. 후반 10분 다시 포항이 앞서간 득점은 팔로세비치의 코너킥을 정재용이 헤더로 연결해 골 포스트를 때리며 발생했다. 이후 전민광의 슈팅은 김승규가 선방했으나 일류첸코가 기어코 재차 슈팅으로 득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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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체 카드도 포항이 승리, 개인기 밖에 없었던 울산
울산은 전반 42분 박정인을 빼고 투입한 황일수가 개인 돌파 능력과 슈팅을 통해 몇 차례 공격 상황을 만들었으나 포항 수비를 구조적으로 흔들지 못했다. 슈팅이 아까워보이긴 했지만 포항이 제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후반 14분 미드필더 박주호를 빼고 공격수 주민규를 투입한 울산은 투톱으로 전환했으나 여전히 둘을 향한 롱패스는 유효한 공격으로 전개되지 못했다.
롱패스는 본래 정확성이 떨어지는데, 이날 울산의 패스는 여느 때보다 훨씬 부정확한 데다 공 주변의 선수가 늘 포항보다 부족했기 때문이다. 주니오와 주민규는 확실히 공을 키핑하지도 못했고, 공을 잡았을 때 혼자 힘으로 포항 수비를 벗길 날렵함도 없었다. 후반 30분 김보경이 좁은 공간에서 기지를 발휘해 올린 크로스를 박용우가 헤더로 마무리한 장면은 그나마 위협적이었으나 크로스바를 넘겼다.
전방 선수들의 체력이 소진된 포항은 후반 16분 송민규를 빼고 심동운을 투입했는데, 이 시점 이후 전방 압박의 강도를 낮추고 자기 진영에서 수비하며 굳히기에 들어갔다. 울산은 후반 30분 윙어 김인성을 빼고 미드필더 김성준을 마지막 교체 카드로 투입했다. 중원 지역의 패스 공급을 강화하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원하는 효과를 얻지 못했다.
반대로 후반 34분 포항이 정재용을 빼고 투입한 이수빈은 안정적으로 중원에서 공을 콘트롤한 것은 물론, 후반 45분 날카로운 슈팅으로 울산 골대를 때리는 등 효과를 봤다. 포항은 후반 42분 일류첸코를 빼고 허용준을 투입했는데, 울산 골키퍼 김승규가 급한 마음에 직접 스로인을 하러 나섰다가 실수로 허용준에게 공을 내줘 실점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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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도훈 3년 차, 3주의 휴식기…울산은 무엇을 만들었나
포항은 팀의 유기성이 빛난 축구를 했다. 일류첸코는 전방 압박 기점은 물론 최전방의 해결사 역할을 했고, 팔로세비치는 부지런히 2선 지역에서 압박하는 것은 물론 적재적소의 위치를 점유하며 송민규와 완델손이 공을 잡았을 때 울산 수비를 분산시켰다. 송민규와 완델손은 1대1에서 강했고, 포백과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는 타이트한 간격을 유지하며 커버 플레이가 원활했다.
반면 울산은 누가 공을 잡아도 주변의 도움을 받지 못해 고립됐고, 1대1 대결 상황에서도 완력을 보이지 못했다. 포항의 수비 그물에 쉽게 빠졌다. 우승을 위해 최소한 승점 1점, 최소한 3득점이 필요했던 울산의 무리한 전진이 경기 종료를 앞두고 수비 균형이 흐트러지는 상황을 야기했지만, 포항의 결정력이 조금 더 뛰어났거나, 김승규의 선방이 아니었다면 포항은 이날 더 일찍, 더 많은 골을 넣을 수도 있었다.
포항은 4-1로 이길 만한 경기를 했고, 울산은 37라운드까지 선두를 지킨 팀이라는 사실을 믿기 어려울 정도로 실망스러운 경기를 했다. 전력의 중심이 되는 몇몇 선수의 부재를 커버하지 못한 점, 3주 간의 휴식기가 존재했음에도 선수단의 컨디션을 유지하지 못하고, 전술적으로 팀의 밀도를 높이지 못한 점은 울산이 스스로 우승의 기회를 차버린 결정적 패인이다.
누구에게나 불운한 사정은 있다. 그 불운을 이겨낼 수 있어야 챔피언이다. 장기 집권한 최강희 감독이 떠나고, 득점 선두 경쟁을 벌이던 공격수 김신욱이 여름 이적 시장에 떠나고, 야심차게 영입한 몇몇 선수들이 자리를 잡지 못한데다, 여름 이적 시장에 영입한 외국인 공격수 호사까지 부상으로 빠지고, 맞대결 경기에는 MVP 후보인 문선민이 경고 누적으로 결장한 상황은, 전북에게도 충분히 변명이 될 수 있었다.
더블 스쿼드를 구축한 울산은 FA컵 32강, AFC 챔피언스리그 16강 조기 탈락에도 보유한 선수들의 장점을 조합하고, 선수단의 컨디션을 균일하게 유지하지 못했다. 이근호, 박주호, 신진호, 김창수 등 베테랑 선수들은 불운한 부상도 따랐지만 이름에 걸맞은 시즌을 보내지 못했다. 윤영선과 불투이스가 부상 중일 때 출전해 구심점 역할로 팀을 지지했던 강민수는 시즌 중 가장 중요한 전북전과 포항전에 그라운드 위에서 아무런 역할도 얻지 못했다.
김도훈 감독은 부임 3년 차다. 그럼에도 팀 단위 집중력은 김기동 감독이 시즌 중 부임하고, 올 시즌, 혹은 올 여름 합류한 선수로 베스트11이 구축된 포항이 더 높았다. 울산은 이번 우승 실패를 불운이나 징크스로 설명할 수 없다. 철저한 운영의 실패다. 전북전과 포항전의 울산은 2019시즌 우승팀이 될 자격을 보여주지 못했다.
스포티비뉴스=울산, 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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