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쇄신·보수통합 요구 쑥 들어가
‘밥그릇 싸움’ 비판 넘어 지지 여론 업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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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대표의 ‘승부수’가 통했나. ‘뜬금포’ ‘쇄신 면피용’ 비판을 받았던 황교안 대표의 단식이 8일만에 종료되었지만, 당 내에선 황 대표의 초강수가 어느 정도 효과를 거뒀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황 대표의 단식이 여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야당으로선 “다른 방법이 없다”는 절박함을 국민들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 “리더십 ‘절체절명’의 위기 탈출”
황 대표 개인으로서는 리더십 논란을 불식시키고 국면 전환에 성공했다. 지난 20일 황 대표의 단식이 시작되기 직전까지도 당에서는 황 대표의 리더십으로 총선을 치를 수 있을지 의구심을 표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패스트트랙 표창장’ 사태 진화 과정이나 박찬주 예비역 육군대장 영입 논란, 물밑 사전 교섭 없이 발표된 보수통합 선언 등에서 “정치 초년생의 한계가 드러났다”는 비판이었다. “총선은 다른 사람이 지휘하게 될 것”이라는 말까지 의원들 사이에서 공공연히 나돌았다.
황 대표가 단식이라는 ‘강경책’을 꺼내들면서 한국당 내에서는 일단 ‘연동형 비례제 저지’라는 당면 과제에 당력을 집중시키는 효과가 있었다고 평가한다. 황 대표의 요구사항은 △지소미아 파기 철회 △연동형 비례제 저지 △공수처법 철회 3가지였지만, 황 대표는 미국에서 돌아온 나경원 원내대표에게 “사실 (단식의) 시작은 선거법 개정안 때문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다만 패스트트랙이라는 국회법상 절차를 밟고 있고 한국당은 사실상 협상을 외면해 온 상황에서 대표가 ‘단식’으로 청와대를 겨냥한 것이 다소 생뚱맞다는 지적도 나왔지만, 어쨌든 당 내에서 들끓던 위기감을 외부로 돌려내는 데는 성공했다.
■ 단식 ‘블랙홀’…쑥 들어간 보수통합·인적 쇄신 논란
당 내 결속도 강화하는 효과를 거뒀다. 보수통합의 방향을 놓고 몸살이 일며 계파 간 갈등 양상으로 전개되던 중 황 대표의 단식은 ‘블랙홀’처럼 이슈를 빨아들였다. 황 대표의 단식 와중에 당 총선기획단이 현역 3분의1 컷오프를 포함해 ‘50% 물갈이’ 원칙을 공표하면서 인적 쇄신 요구에서 시선을 돌리고 있다는 비판도 수그러들었다. 이전이었다면 인적 쇄신을 공언하는 즉시 어느 방향으로든 현역 의원들의 반발이 터져나왔을 법 했다. 하지만 물갈이 대상으로 꾸준히 지목받아 온 친박(근혜)계는 한숨 돌리고 있고, 비박계도 일단 좀 더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한 비박계 중진 의원은 “어차피 연동형 비례제가 통과된다면 보수통합은 물 건너가고, 총선 전략도 전부 다시 새로 짜야 한다”며 “12월3일까지는 인적 쇄신 작업도 무엇도 불가능한 상황에서 황 대표로선 (단식이라는) 돌파구를 택할 수 밖에 없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사전 예열 작업이 없었던데다 국민들이 기성 정치인의 단식을 이제는 ‘목숨 걸고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아 초반에 ‘국면전환용’이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황 대표가 나름의 진정성을 보여주면서 수그러들었다”고 덧붙였다.
민주당에겐 황 대표의 단식이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했다. 3일 이후 선거제·공수처 관련 패스트트랙 법안이 차례로 본회의 표결에 부쳐질 것이 유력한 상황에서, 적어도 황 대표의 단식으로 시끄러운 이상 민주당이 표결 처리로 직행하기는 어려운 상황이 됐다. 한국당으로서는 협상할 시간과 투쟁의 동력을 동시에 번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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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론 주목·협상 시간 벌었지만…‘포스트 단식’ 전략이 없다
그럼에도 황 대표의 단식이 종료된 이후의 전략이 없다는 점은 한국당의 가장 큰 고민거리다. 당 내에서 연동형 비례제에 대한 거부감이 워낙 큰데다, 석패율제 등 선거제 관련 이해관계가 지역구별로 크게 엇갈리면서 좀처럼 통일된 당론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는 단식 7일째였던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황 대표에게만 모든 짐을 떠넘기지 말고 당 의원들은 해결책을 찾으라”며 “무대책 행보는 탄핵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무방비로 방치해 비극을 초래한 것과 같은 모습”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황 대표의 단식이 지지층 결집 효과는 거둘 수 있지만 크게는 국민 여론을 오판하고, 협상보다는 ‘원안 부결’을 기대하는 ‘낙관론’에 기대게 할 것이라는 걱정도 있다. 당초 지역구 225석 비례 75석의 선거법 개정안대로라면 민주당 내에서도 지역구 의석 감소를 반기지 않는 이탈표가 나올 수 있다는 막연한 낙관론만으로 협상의 문을 닫아걸어선 안된다는 것이다. 실제 27일 열린 비공개 의원총회에선 일부 의원들이 민주당과의 본격적인 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비례대표의 수를 줄이고 연동률을 낮추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 관건은 ‘국민 여론’… 중도층 외연 확대는 미지수
그러나 “제1야당 대표가 목숨을 내걸고” 전면 철회를 요구하다 쓰러진 상황에서, ‘협상론’이 당 내에서 공개적인 힘을 받긴 어려워 보인다. 정미경 최고위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미 민주당과 정의당은 표 계산을 끝냈다. 민주당의 말은 이미 결론이 나 있으면서 (한국당에게) 협상하자는 수사에 불과한 것”이라며 “(연동형 비례제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국민들이 전부 여의도를 에워싸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외의 힘을 빌려 여론으로 민주당을 압박하겠다는 것이다. 우리공화당도 25일부터 여의도에서 ‘공수처법과 연동형 비례제 저지’ 천막을 치고 한국당과 공조 투쟁을 벌이고 있다. 단식 과정에서 황 대표가 기독교 극우 보수단체를 이끄는 전광훈 목사와의 연결점을 넓힌 것도 중도층으로 외연 확대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공수처법의 국회 부의로 격돌이 예상되는 12월3일을 일주일 앞둔 27일 병원으로 이송된 것도 시기가 다소 일렀다. 당 내에선 황 대표가 주말까지 버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으나, 한겨울 단식 농성에다 소금과 물 등의 섭취도 원활하지 않은 상태에서 급격히 체력이 저하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경원 원내대표의 역할이 중요해졌지만, 원내대표 임기 만료를 앞두고 유임을 노리는 나경원 원내대표도 상대적으로 당 내 장악력이 흔들리고 있다. 리더십 ‘공백’이 생길 수 있다는 이야기다. 민의를 반영한 선거제 개혁이라는 대의에 어긋나고, 협상 자체를 거부하는 한국당의 모습이 국민들에게 ‘밥그릇 지키기’로 비칠 수 있다는 점도 걱정거리다.
한 의원은 “점점 예측 불가 상황으로 가고 있다”면서도 “황 대표로선 결국 국민적인 지지에 기대는 수 밖에 없다. 황 대표가 취임 직후, 또 삭발 투쟁으로 지지율을 끌어올리며 당을 끌어간 것처럼 관건은 여론의 향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운이 감도는 한국당은 비장한 분위기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28일 당 대표를 대신해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며 “황교안 대표의 단식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 모두가 황교안이다”라고 선언했다.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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