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소미아' 종료 피하며 시간 두고 한일간 접점 찾기 위한 노력 지속하기로 합의…수출규제 해소 위한 대화 진행 조건으로 지소미아 종료 시행 미뤘다는 의미로 해석 / 日 정부도 대화 이어나가겠다는 입장 / 기본적인 대화의 장(場) 마련했지만 양국 입장차 크고 갈등의 골 깊어…쉽게 진전 이루긴 어려울 듯 / 美 지소미아 동맹 의지 가늠하는 척도로 여길 정도로 강경한 태도 견지…방위비 분담금 협상에도 영향 미칠 기세 / 주한미군 철수, 감축설까지 불거지는 등 일각에서 안보 불안감 조성되기도 / 대일 협상은 물론 미국에도 우리 입장 충분히 설명하고 설득하는 노력 지속해야
수출규제 해소를 위한 전향적인 대화 진행을 조건으로 지소미아 종료 시행을 미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일본 정부도 수출규제와 한국에 대한 백색국가(수출 절차 우대국) 제외 조치에 당장 변화는 없으나 대화는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수출 규제 관련 문제를 다루는 과장급 및 국장급 대화를 열겠다고도 했다. 양국이 일단 한 발짝씩 물러나 협상할 시간을 벌기로 한 것이다. 우리 정부의 전격 종료 연기 결정은 일본이 수출규제 조치를 발표한 지 144일, 한국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방침을 결정한 지 3개월 만이다.
이런 가운데 한일 정상회담이 내달 베이징 한중일 정상회의를 계기로 또는 그 전에 열릴 가능성도 거론된다. 근본적으로는 징용 배상 문제를 매듭지어야 하는 등 갈 길이 멀지만, 어렵게 이뤄진 이번 합의가 갈등 해소의 실마리가 되길 바란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물론 이번 타협으로 본격 대화의 틀을 마련하긴 했지만, 입장차가 여전히 크고 갈등의 골이 워낙 깊어 쉽게 진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은 지소미아를 동맹 의지를 가늠하는 척도로 여길 정도로 강경한 태도를 보였고, 이는 순조롭지 않은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도 영향을 미칠 기세였다. 심지어 주한미군 철수나 감축설까지 불거지는 등 일각에서 안보 불안감이 조성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한미일 3각 안보체제 아래 미국이 한일 갈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현실을 실감한 계기가 됐다며 대일 협상과 함께 미국에도 우리의 입장을 충분히 설명하고 설득하는 노력을 지속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전날(22일) 정부가 일본과의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유예하고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대한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절차를 정지시킨 것은 7월 수출규제 조치 시행 전으로 복귀를 전제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일 통상 당국은 지소미아와 수출규제 문제의 연관성이 없다고 부정해왔지만, 결국 지소미아가 일본의 수출규제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이끈 셈이라고 뉴스1은 전했다.
청와대는 지소미아 종료 시점을 불과 6시간 남긴 이날 오후 6시에 지소미아 종료 결정 유보와 함께 일본 수출규제에 대한 WTO 제소 절차를 '조건부'로 정지한다고 발표했다.
일본이 한국을 수출우대국가인 '백색국가'에 다시 포함시키는 것은 물론 일본이 수출규제 조치를 시작한 지난 7월1일 이전의 상황으로 복귀한다는 전제 하의 임시 조치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조건부'의 의미에 대해 "수출규제 조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의가 진행되는 동안 잠정적으로 지소미아 종료 효력을 정지한다는 의미이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한일 양국은 지소미아 종료 결정 유보와 WTO 제소 중단을 계기로 과장급 준비 회의를 거쳐 양국의 수출규제 조치 안건을 다룰 국장급 정책 대화를 열기로 했다.
일본 측 역시 우리 정부의 발표와 크게 엇나가지 않게 지소미아 연장을 조건으로 수출규제 조치 문제를 전향적으로 재검토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현안 해결에 기여할 수 있도록 과장급 준비회의를 거친 후 국장급 대화를 실시해 양국 수출관리를 상호 확인한다', '한일 간 건전한 수출실적의 축적 및 한국 측의 적정한 수출관리운용을 위해 (규제대상 품목)재검토가 가능해진다' 등의 일본 측 발표 내용이 이를 방증한다.
일본 경제산업성의 이이다 요이치 무역관리 부장은 청와대 발표와 같은 시간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국이 수출관리 개선에 의욕을 보이고 있는 만큼 정책대화를 재개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임시 타협안이지만 한일 갈등 다소 완화될 것이란 기대감 높아져
비록 임시 타협안이지만 이번 협의에 따라 통상 분야로 번진 한일 갈등이 다소 완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졌다. 특히 수출규제 대상인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부품 부문 업계의 우려도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일본이 수출규제 조치 완화 또는 철회를 위한 대화 절차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언제든 지소미아 종료 카드를 다시 꺼낼 수 있고, WTO 제소 절차 역시 재개할 수 있는 만큼 번복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
다만 국장급 회의가 열린다 해도 어디까지나 실무급 회의에 불과해 모든 조치가 해결될 것으로 보긴 이르다. 일본 경산성은 한국에 수출규제를 단행한 3개 품목에 대한 개별심사를 그대로 유지하며 백색국가 제외 조치도 변함이 없다고 강조한 것만 봐도 그렇다.
일각에선 수출규제 조치가 한국 대법원의 강제 징용 판결로 촉발이 된 만큼 이 문제가 해결이 돼야 조치 완화 또는 철회가 될 것이란 견해도 있고, 실무급이 아닌 내달 베이징에서 열린 예정인 한중일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 한일 정상회담 등을 통해 문제 해결을 시도할 것이란 관측도 높다.
◆지소미아 관련 불신, 한미관계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
미국은 한국이 지소미아 조건부 연장하는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 환영의 뜻을 표시하며 일단 급한 불을 껐다고 안도하는 분위기다.
지소미아 문제에 관한 한 미국 내 '연장' 강경론이 압도적이었음을 감안할 때 효력 상실 사태로 치달았을 경우 우려된 한미간 마찰을 피하며 신뢰를 다시금 확인하는 계기로 작용할 전망이다.
그러나 미국 입장에서 한국이 한일 갈등 때문에 미국의 안보이익과 직결된 지소미아까지 건드렸다는 불신은 향후 한미관계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한국과 일본이 어렵사리 갈등을 봉합한 데는 꺼져가는 지소미아 불씨를 되살리기 위해 양국을 향해 미국이 가한 막판 압박과 설득이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애초 미국은 지난 8월 한국이 종료 결정을 내리자 한국을 정면으로 겨냥해 지소미아 복원을 압박했다.
한일 갈등의 원인 제공자가 누구냐를 둘러싼 한일 간 논란에서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일단 지소미아 문제만큼은 한국이 미국의 이익에 배치되는 행동을 했다는 판단 때문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중재하지 않지만 관여는 한다는 입장을 밝혀온 미국은 한일 모두 예상외로 완강한 태도를 보이자 일본을 향한 압박에도 적극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고위급 인사들은 지난달 말부터 잇따라 한국과 일본을 방문했다.
데이비드 스틸웰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22~23일 일본 나고야 주요20개국(G20) 외교장관회의를 사흘이나 앞둔 19일 도쿄를 찾아 역할 모색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한미, 한일, 미일 간 각급 단위에서 타협점을 모색하는 줄다리기가 막판까지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21일 워싱턴에서 특파원들과 만나 "미국이 10여일 전부터 한국 측 입장 변화만을 요구하는 것을 넘어 일본에도 입장 변화를 이야기한 흔적이 있다"고 말했다.
미 고위 당국자는 지난 15일 "해군의 비유로 오랫동안 뱃머리가 내려가고 있었지만 올라오기 시작하고 있다"며 한일관계 기류 변화를 시사하는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오랫동안 뱃머리가 내려가고 있었지만 올라오기 시작하고 있다"
미국이 지소미아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이 문제를 단순한 한일 갈등 사안을 넘어 중국의 팽창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훼손시키는 안보 문제로 바라봤기 때문이다.
미국이 지난 8월 일본의 수출규제 보복조치 때 중간자적 입장을 취한 반면 한국의 뒤이은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크게 반발한 것은 지소미아가 인도·태평양 전략과 그 핵심 중 하나인 한미일 3각 안보축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미 행정부는 한일 갈등이 심화하는 와중에 조기에 개입하지 못한 채 손을 놓고 있다가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나서야 뒤늦게 관여해 한일관계 악화를 방치한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미 언론에서 제기되기도 했다.
한국의 이번 결정은 지소미아 문제가 불거진 후 미 조야에 형성된 한국을 향한 부정적 인식과 한미동맹 균열 우려를 어느 정도 해소하고 각종 현안을 좀더 나은 환경에서 대화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전망이다.
북미간 비핵화 협상이 교착상태를 맞고 있는 가운데 한미 공조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파열음을 내며 삐걱거리고 있는 방위비 분담금 협상은 한미의 시급한 현안으로 부상했다. 미 정부의 부인으로 일단 수면 아래로 내려갔지만 주한미군 감축 문제도 상황에 따라 불거질 수 있는 매우 휘발성 높은 소재다.
수입자동차에 대한 미국의 최대 25% 관세 부과 문제도 최종 결론이 나지 않았고, 인도·태평양 전략에 한국이 좀더 적극 동참하라는 미국의 요구도 이어지고 있다.
지소미아 문제에서 촉발된 한미 갈등과 균열을 말끔히 해소했다고 보긴 어렵다는 평가 역시 나온다.
한국이 미국의 안보이익과 직결된 문제를 한일 문제에 정치적으로 활용한다는 미국의 의구심이 생긴 것도 부담이 될 수 있다.
미 국무부가 이날 논평 요청에 한국의 조건부 연기 결정을 아예 '갱신'(renew)이라고 규정한 것이나, "미국은 한일관계의 다른 영역으로부터 국방 및 안보 사안이 계속 분리돼 있어야 한다고 강력히 믿는다"고 언급한 부분은 한국을 향한 뼈있는 메시지로도 볼 수 있다.
더욱이 한일 간 향후 후속 협의가 순탄치 않을 경우 지소미아 종료 문제가 다시금 불거질 수 있고, 이는 한미 관계의 또다른 마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된다.
◆후속 협의 원활하지 않을 시 지소미아 종료 문제 다시 부각될 수 있어
오늘(23일) 일본 나고야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회의를 계기로 한일외교장관 회담이 열린다.
외교부에 따르면 전날 G20 외교장관회의 참석을 위해 일본을 방문한 강경화 외교장관은 이날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무상과의 회담할 예정이다.
강 장관은 이번 방일은 우리 정부가 지소미아 협정 종료 통보의 효력을 정지시키기로 함에 따라 결정됐다.
강 장관은 G20 외교장관회의 계기에 일본 및 미국 측과 접촉하고 전날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를 거쳐 나온 지소미아 관련 한국 정부 입장을 설명할 예정이다.
이번 한일외교장관 회담에선 우리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조건부 연기' 결정을 계기로 연기의 조건인 일본의 수출규제 해소 방안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한일 갈등현안을 풀기 위한 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협의도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한일외교장관회담은 지난 9월 26일(현지시간) 뉴욕에서 제74차 유엔총회 참석 계기로 열린 이후 근 2개월 만이다.
강 장관은 이날 오후 G20 외교장관회의가 끝난 뒤 존 설리번 미 국무부 부장관과도 만날 예정이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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