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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대법 "이승만·박정희 역사다큐 '백년전쟁'에 방통위 제재 부당"(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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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성·균형성 및 사자 명예존중 의무 위반 아냐"…1·2심 깨고 파기환송

대법관 13명 중 6명은 소수의견…"최소한의 균형성 못 지켰다"

연합뉴스

'백년전쟁' 다큐멘터리 [민족문제연구소 홈페이지 캡처]



(서울=연합뉴스) 고동욱 기자 =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판적으로 다룬 역사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에 대해 방송통신위원회가 제재한 것은 부당하다고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판단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1일 '백년전쟁'을 방송한 시민방송 RTV가 방송통신위원회를 상대로 "제재 명령을 취소해달라"고 낸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 방송된 백년전쟁은 이 전 대통령과 박 전 대통령에 대해 비판적인 내용을 담아 진보·보수세력 간의 '역사 전쟁'을 촉발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백년전쟁은 이 전 대통령 편인 '두 얼굴의 이승만'과 박 전 대통령 편인 '프레이저 보고서 제1부' 등 두 편으로 이뤄졌다.

각각 이 전 대통령이 친일파로 사적 권력을 채우려 독립운동을 했다는 내용과, 박 전 대통령이 친일·공산주의자이며 미국에 굴종하고 한국 경제성장의 업적을 자신의 것으로 가로챘다는 내용이 담겼다.

RTV는 위성방송 등을 통해 2013년 1∼3월 두 편을 모두 55차례 방영했다.

방통위는 이 다큐멘터리에 대해 "사회적 쟁점이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한 사안을 공정성과 균형성을 유지하지 못한 채 다뤘다"며 프로그램 관계자를 징계·경고하고 이를 방송으로 알리라고 명령했다.

RTV가 불복해 낸 소송에서 1·2심은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희화했을 뿐 아니라 인물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혹 제기에 그치지 않고 특정 입장에 유리한 방향으로 편집·재구성해 사실을 오인하도록 적극적으로 조장했다"며 방통위의 제재가 적법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방송이 공정성·객관성·균형성 유지의무 및 사자 명예존중 의무를 위반하였다고 볼 수 없다"며 이를 뒤집었다.

김명수 대법원장을 포함해 다수의견을 낸 7명의 대법관은 방송 내용의 공정성·공공성을 판단할 때에는 매체와 채널, 프로그램의 특성 등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백년전쟁은 유료의 비지상파 방송매체 등을 통해 방영됐고, 시청자가 제작한 프로그램이므로 심사 기준을 완화해서 적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런 기준에 따라 백년전쟁의 내용을 살펴본 재판부는 "주류적인 지위의 역사적 사실과 해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것으로, 그 자체로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전제하고 있다"며 공정성을 해칠 정도로 편향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제작자와 다른 관점을 가진 당사자 의견을 모두 반영한 역사 다큐멘터리만 방송해야 한다면 주류적 통념에 의문을 제기하는 다큐멘터리를 방송에서 다루기 힘들고, 자칫 역사적 관점에 대한 단순한 나열에 그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균형성 논란과 관해서도 "백년전쟁이 시청자 제작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다른 의견을 가진 시청자가 접근 가능한 방송의 제작 기회가 보장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역사 다큐멘터리의 경우 방송의 균형성을 선거방송이나 보도방송과 같이 다양한 관점에 동등한 기회를 기계적으로 제공하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백년전쟁이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사자(死者) 명예존중 의무를 어겼다고도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표현 방식이 다소 거칠고, 세부적으로 진실과 차이가 있거나 과장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방송 전체의 취지를 살펴볼 때 중요한 부분이 객관적 사실과 합치되므로 명예훼손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아울러 "이 방송은 역사적 사실과 인물에 대한 논쟁과 재평가를 목적으로 하고 있으므로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제작진이)진실이라고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인다"고 설명했다.

다만 조희대·권순일·박상옥·이기택·안철상·이동원 등 6명의 대법관은 방통위의 제재가 적법했다는 소수의견을 냈다.

소수의견은 "이 방송은 방대한 자료 중 제작 의도에 부합하는 자료만 선별했고, 사용된 표현도 저속하고 모욕적이다"라며 "방송에 요구되는 최소한의 객관성·공정성·균형성을 갖추지 못했고, 사자 명예존중 의무를 준수하지도 못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다수의견을 따른다면 편향된 일부 자료만을 근거로 역사적 인물을 모욕하고 조롱하는 내용의 방송을 하더라도 '역사 다큐멘터리'라는 형식만 취하면 제재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고 비판했다.

대법원에 따르면 이 판결은 방통위 출범 이후 방송 심의 기준상 객관성·공정성·균형성 등 쟁점에 관해 나온 최초의 대법원 판결이다. 이에 따라 향후 비슷한 쟁점의 사안에 대한 해석 지침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sncwoo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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