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형준 '린덴바움페스티벌' 음악감독은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정치를 초월하는 지속적인 남북미 대화 창구가 '음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진은 원 감독이 취재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광화문=이선화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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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꿈꾸는 바이올리니스트, '남북미 청소년 오케스트라' 투어 구상
[더팩트ㅣ광화문=박재우 기자] "정치를 초월하는 본질적이고 지속적인 남북미 대화 창구가 필요한데, 인류 공통어인 '음악'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10월 5일)이 열리기 일주일 전인 지난 9월 22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두 번째 남·북 합동 클래식 공연을 연 소식이 뒤늦게 확인됐다. 바이올리니스트 원형준 '린덴바움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은 이번 합동 공연까지 수많은 난관을 겪으며 한 가지를 깨달았다고 한다. 바로 남북 음악 교류로 남북미 간의 평화를 지속할 수 있다는 점이다.
원형준 감독은 지난달 30일 서울 광화문 한 식당에서 진행한 <더팩트>와 단독 인터뷰에서 지난 9월 열린 스톡홀름 공연 사실을 처음 공개했다. 북한의 소프라노 김송미와 민요 '아리랑'(편곡 김인규)을 협연했다. '아리랑'을 선택한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아리랑' 음악 그 자체로 한민족의 비극이 대변되기 때문"이다.
이번 공연은 원 감독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설립한 '린덴바움페스티벌'이 우여곡절 끝에 거둔 결실이다. 그는 '남북협동 연주'라는 꿈은 이제 이뤄졌다. 앞으로는 어떻게 이를 지속 가능하게 할 수 있을지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가오는 12월 14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우리 '린덴바움페스티벌'과 미국 청소년 합창단이 함께 연주한다"며 "소프라노 김송미 측이나 북측 예술단이 참여해 남북미 합동 연주가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원 감독은 30일 서울 광화문 모처에서 <더팩트>와 만나 지난달 스톡홀롬에서 북한 소프라노 김송미와 합동공연한 사실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사진은 바이올리니스트 원형준이 바이올린을 켜는 모습. /이선화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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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베를린 장벽에 울려퍼진 '베토벤 9번 교향곡'
'린덴바움페스티벌'은 한반도 평화와 세계평화에 기여하고자 설립된 오케스트라다. 2009년 창단 이래 '제1회 린덴바움 뮤직 페스티벌'을 시작으로 2015년 '광복 70주년 독립문 평화콘서트', 2016년 'DMZ 국제다큐영화제 개막식 연주', 2017년 'DMZ 평화콘서트',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성화봉송 축하 연주' 등 활발한 활동을 해왔다. 독일어인 '린덴바움'은 우리말로 해석하면 보리수다. 원 감독은 "나무가 모여 숲을 이룰 수 있듯이 청년 음악도라는 나무가 숲을 이뤄 세계 평화에 도움을 주는 환경을 만들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창단하게 된 계기를 묻자 "1989년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 지휘 아래 무너진 베를린 장벽 앞에서 연주됐던 '베토벤 9번 교향곡'의 영향이 컸다"며 "당시 연주했던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은 서독과 동독뿐 아니라 영국, 프랑스, 미국, 소련(러시아) 국적으로 구성된 혼성팀이었다. 당시 어린 나이였는데 이 장면에 감명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이후, 1990년 레너드 번스타인은 임종 전 냉전 종식 노력을 위해 일본 삿포로에서 퍼시픽 뮤직 페스티벌(PMF)을 처음 열었다. 매년 열리는 이 페스티벌에 2008년 직접 참여했던 원 감독은 이를 참고해 2009년에 '린덴바움페스티벌'을 시작했다. 그는 포부를 갖고 '린덴바움페스티벌'을 창단했지만, 2010년 이명박 정부의 5.24조치(천안함 사건에 따라 모든 대북사업 중단)로 남북관계는 급격하게 경색됐다.
이런 악조건에서도 린덴바움페스티벌의 초대 지휘자 샤를 뒤투아(Charles Dutoit)는 2011년 남북 청소년 오케스트라인 '한반도 오케스트라' 제안을 위해 방북하기도 했다. 이후 페스티벌은 '한반도 오케스트라'를 2013년 중립국 스위스, 2014년 독일에서 성사시키려다 실패의 쓴맛을 봤다.
원 감독은 북측 소프라노 가수 김송미를 처음 만났을 때 무언가 '음악인'으로서 잘 통하는 점이 있었다고 했다. 취재진과 이야기를 나누는 원 감독의 모습. /이선화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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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대교 문턱에서 막힌 JSA 합동공연의 꿈
린뎀바움페스티벌'은 2015년 '광복 70주년'을 맞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북측 합창단과의 합동 공연을 기획했다. 통일부, 국방부, 유엔군사령부가 음악회를 허락했고, 북한 당국도 동의했다.
JSA 경계선에서 '아리랑'을 합동 연주하는 것이 이들의 목표였다. 하지만 무산됐다. 원 감독에 따르면 우리 정부는 8월 15일 당일 '북한 목함 지뢰 폭발사고'를 이유로 불허했다. 버스까지 빌려 이동 중에 통일대교에서 가로막혔다. 원 감독은 "그날 내가 왜 통일대교에 멈춰서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며 "두 시간 동안 실랑이를 벌이며 '저길 왜 못 건너갈까'라는 의문이 강하게 들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뒤늦게 의외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이날 북한 측 합창단이 관중들과 함께 판문점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원 감독은 "DMZ에서 공연을 기획한 이유는 북측과 음악을 통해 만나고 싶다는 진정성을 알리고 싶어서였다"며 "정치적인 변수로 함께 하지 못해 당시 우리가 갈 수 있던 최전방까지 올라가 연주했다. 그 아쉬움을 연주로 표현했다"라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원 감독은 이제 '남북협동 연주'라는 꿈은 이뤘다. 협연의 파트너, 북한 국적의 소프라노 김송미는 평양음악대학과 모스크바 국립음악원 출신이다. 현재 조선예술교류협회 대리인, 조선 장애자연맹 문화이사, 베이징 만수대미술관 관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중국을 무대로 활동 중이다.
원 감독은 이전에도 북한 국적 외교관을 만나본 적이 있다. 가수 김송미를 처음 만났을 때는 달랐다. '북한 사람'으로서가 아닌 '음악인'으로서 잘 통하는 점이 있었다. 원 감독은 린덴바움페스티벌 창단 9년 만에 북한 음악가를 마주했다. 남북정상이 판문점에서 첫 정상회담을 한 2018년 4월, 베이징에서 김송미 소프라노를 처음 만났다.
두 사람은 지난 5월 12일 중국 상하이에서 첫 합동공연을 성사시켰다. 온갖 악재 속에서도 2차 스톡홀름 합동공연도 극적으로 이뤄냈다. 하지만 앞으로 이를 지속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원 감독은 "남북예술교류가 정치 뒤에 올 게 아니라 정치 앞에 선행돼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지난 9월 22일 스웨덴 스톡홀롬에서 열린 남북합동공연 당시의 모습. /린덴바움페스티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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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정치를 초월하는 본질적 대화창구
남북 합동공연은 가시밭이 기다리는 고독한 길이다. 그런데도 왜 원 감독은 이 길을 걸어갈까. 세계적 거장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이 창단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청소년들이 함께하는 '서동시집 오케스트라'의 예도 있다. 그 역시 개성에 증조할머니의 묘소가 있는 이산가족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두 번의 남북합동 공연 성과를 이룬 뒤에는 더 큰 이유가 생겼다. 2020년 남북미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구성해 한반도를 포함한 미국 투어를 벌이는 꿈이 그것이다. 그는 "청소년 합동연주는 전쟁을 막을 수 있고 미래의 희망을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내년 2020년은 의미가 깊은 해다. 6.25전쟁 70주년, 베토벤 탄생 220주년, 그리고 통일 독일 30주년. 원 감독은 물론 교착상태에 놓인 한반도 평화에도 큰 이정표가 될 수 있다. 예술교류가 정치에 앞서야 하는 이유다. 그는 "남북이 만나는데 정치적인 문제는 있지만, 음악에는 정치색이 없다"며 "예술 교류는 현재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만드는 초석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분단 후 74년 동안 남북 사이 수많은 협정, 약속들이 있었지만 실패한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정치를 초월하는 본질적이고 지속적인 남북미 대화 창구가 필요하다. 원 감독은 "인류 공통어인 '음악'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원 감독은 열 살의 나이로 서울시향과 협연하면서 처음 이름을 알렸다. '음악 신동'으로 불리며 1990년 동서독 통일 주제로 열린 다보스 포럼에 초청돼 연주하기도 했다. 줄리아드 예비학교를 거쳐 줄리어드 음악대학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했다. 현재 하버드 대학 커크랜드 하우스 명예위원, 제주 평화섬 음악대사, 독일 시네마 포 피스 재단 국제위원회 위원, 여성신문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jaewoopark@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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