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식민시대 거치며 거의 일본화 / “한국에 전통 한지는 없다” 확인 / 김호석 화백 등 분야별 전문가 4인 / 신라~조선 이어온 한지 원형 탐구 / “전통기법 복원 급선무” 문제 제기
김호석·임현아·정재민·박후근/선/2만원 |
한국의 전통한지/김호석·임현아·정재민·박후근/선/2만원
한지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통문화 유산 중 하나다. 한지는 닥나무 껍질인 인피섬유를 원료로 제조한 우리 고용의 종이를 말한다. 일반종이의 원료인 목재펄프에 비해 조직 자체의 강도가 뛰어나고 섬유와 결합도 강해 질긴 종이를 만들 수 있다. 한지라면 어릴 적에 부모님이 깨끗한 새 한지로 방문과 창문을 바르던 창호지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또 옛날부터 아기를 낳으면 처마 밑에 새끼줄로 금줄을 치고, 금줄에 한지 조작을 끼워놓았다. 한지가 길지라고 부르는 옛 믿음에 기인한다. 그만큼 쓰임이 많았다.
하나 언제부터인가 한지에 대한 일반의 관심은 싸늘하다. 오죽하면 국내 유일의 국가무형문화재 한지장이 “인간문화재는 영광이지만 한지를 한 장도 안 사가서 서운하다”고 토로할 정도다.
‘전통한지’ 제조기법의 근원을 찾아낸 저자들. 왼쪽부터 정재민 산림청 국립수목원 박사, 임현아 한지산업지원센터 연구개발실장, 수묵화가 김호석 화백, 박후근 국가기록원 행정지원과장. |
‘한국의 전통한지’는 잊혀가고 있는 전통한지 원형에 대한 연구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성철스님, 법정스님, 노무현 전 대통령 인물화로 유명한 수묵화가 김호석 화백이 분야별 한지 전문가들과 출간한 노작이다. 김 화백은 40여년간 수묵화의 재료인 전통한지를 연구했으며 한국 고유의 한지를 사용하여 작품을 하는 몇 안 되는 화가 중 한 명이다. 그는 특히 조선시대 후기부터 1910년 사이에 사라진 것으로 확인된 한지 표면처리 방법을 가진 세계 유일한 전문가이다.
공동저자 임현아는 한지 전문 연구기관인 전주 한국전통문화전당 한지산업지원센터 연구개발실장, 정재민은 나무 연구 분야 국내 최고 전문가로 산림청 국립수목원 박사, 박후근은 공공정책 분야에서 한지정책을 연구하는 국가기록원 행정지원과장이다. 이들은 ‘기록용 한지 연구모임’을 만들어 4년여 기간 동안 문헌연구와 더불어 현장답사 및 장인 인터뷰 등을 통해 철저하게 고증을 거쳐 이 책을 펴냈다. 신라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면면히 이어 내려온 전통문화의 원형을 찾아내고, 현대적 감각을 덧붙여 ‘19가지 도침 과정’을 처음 공개했다.
저자들에 따르면 ‘한국에는 한국 고유의 전통한지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한지를 만드는 재료와 기법이 한국 고유의 것과 관계가 멀었다. 대부분이 일본 식민지 시대에 일본화된 것이었다. 특히 현재 국가 중요 무형문화재가 만든 종이와 조선시대에 만든 종이를 비교해보니 현대에 만든 한지의 품질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한지 종사자가 한지의 표면처리기법인 도침을 하고 있다. 도침은 먹물이 균질하게 흡수되어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기에 적합하도록 하는 과정이다. 선 제공 |
이에 따라 이들은 전통적인 기법을 복원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 전통 한지 원형을 정립하고 이를 토대로 산업화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여겼다. 일제강점기에 훼손된 기법으로 산업화한다는 것은 뿌리도 근거도 없는 것이며 일본화한 한지 제작 방식과 품질 등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데 연구의 필요성을 느꼈고 전통한지의 원형을 찾아서 가능한 방법을 최대한 찾는 데 주력했다.
책은 그간의 발간된 시중의 한지 관련 책자와 다른 특징이 있다. 첫째, 닥나무의 원형을 찾았다. 닥나무는 우리나라의 특산수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중국에는 분포하지 않으며, 일본에서는 자생지가 확인되지 않고 재배됐다. 닥나무가 꾸지나무와 애기닥나무의 자연교잡에 의한 잡종이라는 사실을 형태적 및 분자유전학적 연구를 통해 확인했다.
둘째, 한지 제조방법을 정확하게 서술해 어디까지가 한국적인 요소인지를 연구의 출발점으로 설정했다. 셋째, 인쇄 가능한 전통한지 표면처리(도침) 기술을 국내 최초로 공개했다. 넷째, 한지를 살리기 위해 국가가 어떻게 행정적으로 배려해야 하는지를 종전 사례를 들면서 향후 적용할 지침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한지 종사자가 전통 한지를 햇볕에 말리고 있다. 선 제공 |
책을 통해 이들은 위기에 직면한 한국의 전통한지 산업의 아픈 현실을 가감 없이 지적하고 있다. 경복궁·창덕궁·덕수궁·창경궁 4대궁궐 창호지의 한지 사용 여부를 확인한 결과 대부분이 수입닥 또는 펄프를 혼합했다는 것이다. 1996년 64곳이던 전통한지 업체 수가 2019년 9월 말 현재 21곳에 불과하다. 그동안 매년 2곳 정도가 폐업했다고 볼 수 있다. 또 중국 선지는 2009년에, 일본 화지는 2014년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했지만 한지는 등재를 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한지로 만들어진 문화재의 수리·복원에 전통한지를 사용해야 한다는 의무 규정이 없다.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는 전통한지를 구매·사용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지적한다.
저자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무슨 전통한지가 필요한가를 묻는 이들도 있으나 전통한지 품질이 우수하다. 보전성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다. 현존하는 세계 최초의 목판 인쇄본 ‘무구정광다라니경’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본 ‘직지심체요절’이 입증해준다. 외교문서 영구기록보전물 등 국가 중요 문서나 그림, 서예 등에 예술품에 한지를 사용하면 품질과 품격이 높아진다”며 “전국 226개 기초자치단체마다 한 곳 이상에 한지 업체가 유지되고 향토문화의 중심지로 한국의 문화관광자원으로 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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