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산에서 만나는 ‘토종 과실’ 얼마나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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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면 가지마다 대롱대롱 매달려 익어가는 다래는 단면 모양이나 맛은 키위와 흡사하지만, 털이 없어 껍질째 먹을 수 있다. 당도나 영양가도 키위보다 월등한 우리 토종 과실이다. |
가을 산에는 먹을 것이 많습니다. 나무는 다가올 봄을 준비하느라 씨를 맺고 열매를 만듭니다. 열매는 동물과 인간들에게 맛있는 먹거리가 됩니다. 청설모는 잣나무 꼭대기에 달린 잣송이 하나를 힘겹게 따와서는 이빨로 잣을 훑어냅니다. 까치는 감나무에 매달린 감의 말랑한 속살을 쪼아 먹고요. 사람도 먹을 것이 많습니다. 달랑거리는 귀걸이처럼 가지에 매달린 새콤달달한 다래, 살짝 깨물면 시큼한 속살이 입안으로 쏙 들어오는 머루와 하얀 과육을 흠뻑 빨아먹고 까만 씨들을 훅 날리는 재미가 있는 으름 등이 있습니다. 이런 토종 과실들은 고려가요 ‘청산별곡’에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애 살어리랏다 멀위랑 다래랑 먹고 청산애 살어리랏다’라고 나올 만큼 식용한 지 오래된 산과일들이지만, 요즘 세대들은 이런 토종 과실들을 잘 모릅니다. 저 역시도 연구를 하기 전까지는 이런 과일들을 몰랐으니까요. 최근 건강과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는 로하스(LOHAS)가 인기를 끌면서 우리가 가진 토종 식물자원을 먹거리로 이용하는 것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산림청 소속의 국립산림과학원에서는 1974년 유실수과를 신설하여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먹거리 수종들을 육성하고 있습니다. 가을 산에서 만날 수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토종 과실들을 소개하고, 이것들을 대상으로 어떤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지 간략하게 알려드리려 합니다.
■속살은 키위를 닮은 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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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의 계곡부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다른 나무를 감고 오르는 덩굴성 식물 중 다래를 볼 수 있습니다. 다래는 끝이 뾰족한 넓은 타원형이나 달걀 모양의 잎을 가지고 있고 잎 아랫부분은 둥글거나 심장형의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다래는 5~6월 사이에 하얀색의 꽃이 피는데 암꽃과 수꽃이 따로 핍니다. 가지와 잎이 붙어 있는 잎겨드랑이에 하나씩 피어 있고 곧은 암술대가 보이는 것은 암꽃이고, 꽃자루가 세 갈래로 나뉘어 꽃이 세 개씩 모여 피고 검은 꽃밥이 발달한 것이 수꽃입니다. 수꽃은 암술이 퇴화되어 있지만 암꽃은 수술이 발달되어 있는데 수분 능력은 없어서 위(僞)수술이라고 합니다. 이런 식물을 좀 어려운 말로 ‘아리송한 암수딴그루(cryptic dioecy)’라고 부른답니다.
다래나뭇과에 속한 다른 수종으로는 개다래, 쥐다래 그리고 섬다래가 있습니다. 산의 상층부에는 쥐다래가, 아래쪽에는 개다래가 분포합니다. 섬다래는 제주도 및 남쪽 도서지방에서 자랍니다. 개다래나 쥐다래는 꽃이 피면 곤충들을 유인하기 위해 잎 색깔이 하얀색(개다래)이나 붉은빛을 띠는 흰색(쥐다래)으로 바뀌어서 멀리서도 눈에 잘 띕니다. 봄과 여름 사이 잎이 흰색으로 변한 덩굴식물이 있다면 개다래나 쥐다래일 확률이 높습니다.
9~10월이 되면 다래에는 타원형이나 장타원형 모양의 열매가 익어서 꽃자루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지요. 다래 열매의 단면 모양이나 맛은 키위와 흡사합니다. 하지만 다래 열매는 다 성숙되어도 녹색을 띠고, 키위와 달리 털이 없기 때문에 껍질째 먹을 수 있습니다. 당도나 영양가도 키위보다 훨씬 높고요. 가지에 매달려 말랑해진 열매를 따먹는 것이 가장 맛있기는 하지만, 열매가 딱딱할 때 따서 실온에 두었다가 먹어도 맛있습니다. 잘 익은 다래 열매는 신맛과 단맛이 적절히 어우러지고 부드러워 먹기가 좋습니다. 다래는 식이섬유가 풍부해 변비 예방에 효과가 있고, 다래에 들어있는 기능성 성분이 면역과민반응 개선에 도움을 주어 최근에는 다래를 활용한 다양한 건강기능식품이 나오고 있습니다. 열매뿐만 아니라 초봄의 새순은 나물로 먹고, 수액도 이용하는 등 쓰임새가 많은 나무입니다.
산림과학원에서는 1987년부터 다래 연구를 시작하여 수확량이 많고 맛이 좋은 신품종을 육성·보급하고 있습니다. 신품종으로 개발된 토종 다래들은 일반 다래보다 당도가 높고 과실 무게도 3배 이상입니다. 다래를 재배할 때에는 물빠짐이 좋은 땅에 덕(지주대)을 설치하여 덩굴을 유인해 주고, 암꽃과 수꽃이 서로 다른 나무에서 피기 때문에 암나무와 수나무를 함께 심어야 합니다.
■가을 산의 바나나 으름
나무를 타고 오르는 또 다른 덩굴성 식물로는 으름덩굴이 있습니다. 으름덩굴의 오래된 가지에서는 작은 잎이 5~7개씩 손바닥 모양으로 모여 나서 다래와 구분할 수 있습니다. 암꽃과 수꽃이 같은 나무에서 피는 암수한그루로 4월 말에서 5월 중순에 보라색의 꽃이 피는데 향기가 매우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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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는 10월에 갈색으로 익습니다. 과육이 달고 모양이 바나나와 비슷해서 ‘가을 산의 바나나’로 불리는 으름은 열매가 다 익으면 껍질에 난 선을 따라서 열매가 터지고 그 안에 바나나 모양의 과육이 나옵니다. 단맛이 도는 젤리처럼 생긴 하얀색의 과육에는 까만색의 씨가 많아 입안에서 골라내기가 힘들지만 몽글한 느낌과 달콤한 맛이 좋아서 자꾸만 먹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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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름덩굴은 쓰임새가 많은 나무입니다. 예전에는 으름 새순과 어린 줄기는 나물로 먹었고 향이 좋은 꽃은 말려두었다가 향낭에 넣어 향수 대신 사용했다고 합니다. 약용으로도 요긴하게 사용했는데 한방에서는 줄기를 통초라 하여 소염성 이뇨제 또는 요도염 약재로 사용했고, 뿌리껍질은 목통이라 하여 배뇨장애를 치료하는 데 이용했습니다. 열매는 연복자(燕覆子)라 하여 이뇨제와 중풍, 관절염을 치료하는 데 이용했습니다. 으름덩굴의 과피에는 안토시아닌과 식이섬유가 풍부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임신 중인 태아를 유산시킬 수 있고 많은 양을 복용할 경우 생리를 그치게 하는 부작용이 있다고 하니 주의해야 합니다. 으름 열매 생과는 유통이 어려워 온라인 구매 등으로 소량 이용할 수 있고, 열매가 벌어지기 전 수확하여 통째로 썰어서 말린 으름 등도 인터넷에서 구매할 수 있습니다.
■토종 블루베리 정금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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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토종 블루베리도 있습니다. 바로 ‘정금나무’ 열매입니다. 우리나라의 자생 블루베리인 정금나무는 높이 1~4m의 키가 작은 식물로 계룡산 이남에 주로 분포하지만 서해안을 따라 안면도까지 분포합니다. 가을이면 붉게 물드는 단풍도 아름답고, 작은 꽃과 열매는 쉽게 눈에 띄지 않지만 소박한 매력을 지닌 나무이기도 합니다. 정금나무와 가까운 나무들 중에는 붉은색 열매가 달리는 산앵두나무나 전남의 도서지방과 제주도에 자생하는 모새나무, 북한에 자생하는 들쭉나무 등이 있는데 모두 열매를 식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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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금나무는 5~7월 사이에 흰색이나 붉은색을 띠는 은방울꽃 모양의 꽃이 피고 열매는 9월에 검은색으로 익습니다. 정금나무 열매는 블루베리와 모양도 맛도 비슷합니다. 눈에 좋다고 알려진 안토시아닌이 풍부하게 들어있고 최근에는 항당뇨 및 항암효과를 증명하기 위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예전에도 한방에서는 열매에 방부, 수렴, 이뇨 등의 효능이 있다고 하여 방광염이나 임질 등의 치료에 사용했습니다. 산림과학원에서는 열매 특성이 우수한 정금나무를 수집하여 증식하고 있습니다. 최근 연구에서는 우리나라의 자생 정금나무와 북미산 블루베리를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의 자생 정금나무가 유용성분 및 항산화 활성이 북미산 블루베리보다 높게 나타나 단기소득 임산물의 육종 소재로서 이용 가능성이 높은 수종 중 하나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박나래도 반한 비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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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소개된 적 있는 비파는 악기 비파의 모양과 닮았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산과일입니다. 비파는 제주도 및 전남 지방 등 따뜻한 지역에서 주로 자라는 상록 활엽수입니다. 잎은 타원상의 긴 달걀 모양으로 어긋나기를 하고 뒷면은 연갈색의 짧고 부드러운 털로 덮여 있습니다. 하얀색의 꽃은 10~11월에 가지 끝에 원뿔 모양으로 모여서 핍니다. 열매는 이듬해 6월 즈음에 황색으로 익는데, 잘 숙성시킨 열매는 당분이 많고 유기산이 적게 함유되어 타 과실류에 비해 단맛이 강한 것이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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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파도 쓰임새가 많은 나무입니다. 열매뿐만 아니라 잎, 뿌리, 나무껍질 등도 한방약재로 쓰입니다. 비파 열매의 과육에는 등황색 색소인 카로테노이드류가 많이 함유되어 있고, 카테킨 성분도 풍부하게 함유되어 혈액 속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고 고혈압, 고지혈증과 같은 성인병 예방에 효과적입니다. 비파 잎과 종자에는 아미그달린 성분이 함유되어 있어 혈액순환에 도움을 주고 적당량을 복용하면 진통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살구씨와 같이 독성도 있으므로 과량 복용하지 않아야 합니다. 남부지방의 주요 산림소득 자원으로서의 가능성을 높이 보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가을 산에서는 다양한 토종 과실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가을에 숲에 가시면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고, 가지 끝에 혹은 나뭇잎 아래에 보석처럼 숨어 있는 나무 열매들을 찾아보세요. 나무의 일 년이 그 안에 들어 있습니다.
신한나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소득자원연구과 임업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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