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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슬기나 기자]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도랑에 빠졌고, 브렉시트(Brexitㆍ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합의안은 수용소(limbo)에 갇혔다."
새 브렉시트 합의안을 들고 의회에 선 존슨 총리가 22일(현지시간) 연이은 두 차례의 표결에서 승기를 잡자마자 다시 무릎 꿇었다. 총리의 합의안을 원칙적으로 지지하기로 의결한 하원은 불과 20분 후 치러진 또 다른 표결에서 3일 내 법안처리를 마무리하도록 한 그의 계획안은 저지했다. 사실상 브렉시트 연기가 확정된 가운데 조기총선 개최 가능성도 한층 커졌다.
공영 BBC방송 등에 따르면 22일(현지시간) 영국 하원은 새 합의안을 토대로 한 EU 탈퇴협정 법안을 3일 내 처리하는 내용의 계획안(programme motion)을 찬성 308표, 반대 322표로 부결시켰다. 존슨 총리의 최측근인 제이컵 리스-모그 하원 원내대표(보수당)가 전날 발의한 이 계획안은 24일까지 법안을 통과시킨 후 상원, 여왕 재가 절차를 거쳐 오는 31일자로 브렉시트를 마무리짓기 위한 일종의 패스트트랙이다.
하지만 야권을 비롯한 다수 하원의원들은 115페이지의 법안을 살펴보는 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며 '졸속 처리'에 반발했다. 앞서 제정된 EU탈퇴법의 경우 의회 논의에만 273시간 이상 소요됐었다. 패스트트랙이 의회에 막히며 "죽기 살기로(do or die)" 이달까지 브렉시트를 이행하겠다던 존슨 총리의 계획도 사실상 좌절됐다. 존슨 총리는 즉각 "노 딜(No Deal)에 대비하라"고 경고했다. 앞서 의회가 제정한 노 딜 방지법에 따라 EU에 공식 연기서한을 발송하는 과정에서 자필 서명도 거부했던 그는 EU의 결정 전까지 법안상정 절차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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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계획안 표결 전까지만 해도 존슨 총리의 브렉시트 전망은 다소 밝아지는 듯했다. 하원은 새 합의안을 다음 심의단계로 이송할 수 있도록 하는 첫 안건(제2독회)을 찬성 329표, 반대 299표로 가결했다. 제1야당인 노동당에서조차 19명이 찬성으로 돌아섰다고 BBC방송은 전했다. 지난 7월 취임 후 하원의 주요 표결에서 줄줄이 패했던 존슨 총리가 첫 승기를 잡았던 '짧은 순간'이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존슨 총리의 승리는 순간에 그쳤다"며 "몇십 분 후 하원이 그의 계획안을 거부하며 브렉시트는 재차 카오스 상태"라고 보도했다.
다만 존슨 총리는 엇갈린 두 차례의 표결에 대해 "하원이 내 합의안은 받아들인 것"이라고 자평했다. 이어 "노동당이 브렉시트를 또 연기시켰다"고 야권에 책임을 돌렸다. 그러나 강경 EU탈퇴파인 나이절 패라지 브렉시트당 대표는 "죽기 살기로는 끝났다"며 "도랑에 빠져 죽게 됐다"고 꼬집었다. 과거 존슨 총리가 EU에 브렉시트 연기를 요청하느니 "차라리 도랑에 빠져 죽겠다"는 발언을 비꼰 것이다.
이미 영국 정부가 공식 연기 서한을 발송한 만큼 EU 역시 브렉시트 시한을 늦추는 데 동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며칠, 몇 주, 몇 달이 될지는 불확실하다. 도날트 투스크 EU정상회의 상임의장은 "노 딜을 피하기 위해 브렉시트 연기를 제안한다"고 밝혔지만 프랑스 등 일부 국가는 "정당성이 없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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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조기총선 가능성은 한층 커졌다. 존슨 내각의 한 관계자는 이날 표결 직후 "브렉시트 연기는 곧 총선 개최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EU가 내년 1월31일까지 연기에 동의한다면, 우리는 법안을 철회하고 크리스마스 전에 총선을 치를 것"이라고 언급했다.
관건은 제1야당인 노동당이다. 현재 집권 보수당의 의석수(의결권 보유 기준)는 287석으로 과반(320석)에 못 미친다. 하지만 노 딜 위험만 사라진다면 조기총선에 동의하겠다고 밝혀온 노동당으로선 브렉시트 연기가 확정될 경우 조기총선 카드를 거부할 이유가 없다. 존 버커우 하원의장은 "브렉시트 합의안이 수용소에 갇혔다"고 말했다.
이날 부결 소식이 전해진 후 달러 대비 파운드화 가치는 하락했다. 표결 전 파운드당 1.30달러선에 육박했으나 앞서 기록한 약 5개월래 최고치 대비 0.40% 낮은 1.281달러선까지 떨어졌다.
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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