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년 만에 평양에서 열린 남북 남자축구 국가대표팀의 공식 경기가 중계도, 취재진도, 응원단도, 골도 없는 ‘4무(無)’ 경기로 끝났다. 남북관계 역사에 기록될 의미 있는 경기가 비정상적으로 치러져 많은 국민들이 아쉬움을 표시하고 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15일 오후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북한팀과 2022년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H조 3차전을 치렀다. 5만석 규모의 경기장은 텅텅 비었고 선수들은 외부와 차단된 상태에서 뛰어야 했다.
정부는 북측과의 협의에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였으나 결과적으로 성사가 안 돼 아쉽다는 입장이다. 특히 이번 시합은 남북간 합의가 아닌, 월드컵 조 추첨을 통해 우연히 성사된 만큼 정부가 직접 개입할 사안은 아니라는데 강조점을 뒀다.
정부는 이번 경기가 소강상태에 빠진 남북관계와 연계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북한의 소극적 태도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굳이 무위(無爲)에 그칠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는 현실적 판단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연히 성사된 시합’이라며 책임을 회피하려는 정부의 태도를 놓고 ‘궁색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일차적인 책임이 북한에 있는 것은 명백하지만, 정부가 북한의 태도에 항의하거나 국제축구연맹(FIFA)을 통한 항의에 저자세를 보인 것도 문제라는 얘기다.
북한의 일방적 행태는 남북관계 역사에서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번 ‘4무 축구’ 사례도 그런 연장선상으로 보고 넘어갈 수 있다. 문제는 그냥 넘어갔을 경우 앞으로 정부가 지게 될 부담감이 더욱 커진다는데 있다.
남북은 내년 도쿄올림픽 단일팀 구성과 개막식 공동입장에 합의했다. 정부는 2032년 하계올림픽의 남북 공동개최도 추진하고 있다. 긴밀한 협의가 필요한 사안들이다. 축구 경기 한 게임에도 몽니를 부리는 북한과 과연 협력이 가능할까.
스포츠를 넘어 외교안보 사안에서도 북한에 휘둘리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한반도 최대 현안인 비핵화-평화체제 구축 논의가 북미 중심, 특히 북한의 ‘계산법’ 대로 흐를 가능성에 대해 정부가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는지 의구심이 커진다.
최태범 기자 bum_t@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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